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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랑 Sep 27. 2023

하루하루를 보낸다는 것

좌충우돌 정신과 입원기(5)

입원 8일차

벌써 입원한 지 일주일이나 지났다. 다른 사람들이 잘 지내냐 물어보면 잘 지낸다고 하지만 진짜 잘 지내는 건지는 모르겠다. 아니 애당초 잘 지낸다의 기준이 뭔데. 일단 안 죽고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잘 지내는 건 맞지 않나.

월요일은 대회진이 있는 날이다. 전공의 분들이랑 교수님 한 분이랑 학생들까지 다 우르르 몰려와 면담 아닌 면담을 하는데, 굉장히 부담스럽다.

친구와 이야기하다 문득 엄마가 한 말이 생각났다. 주치의 선생님, 상담 선생님, 엄마까지 다 내가 죽을까 무서워한다고. 그게 재밌냐고. 그래서 친구한테 내가 죽을까 무섭냐고 물어봤다. 친구는 당연하다는 듯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문자 그대로 심장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내가 또 피해를 끼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 내 잘못이라는 생각에 자책을 많이 했다.


입원 9일차

어젯밤에 친구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또 자책이 시작되었다. 그때 난 도대체 뭘 하고 있었는지. 친구는 내가 힘들 때 곁에 있어줬는데 난 왜 같이 있어주지 못했는지. 그리고 나 때문도 있는 거 같다. 내가 죽는다 그래서… 그거 계속 걱정하고 그러던데. 내가 너무 밉다. 소중한 사람에게 피해만 끼치고.

생각이 많아지는데 쓸 기운이 없다. 머릿속에서 단어와 문장들이 음절 단위로 끊어져 돌아다니는 느낌이다.

병실에 있으면 자꾸 눕고 싶어 오락실로 나왔는데 TV 소리 때문에 또 집중이 안된다. 전공의 선생님 면담에서 자책하는 건 그럴 수 있다고 하지만 그럴 필요 없다는 이야길 했다. 아무리 그런 말을 들어도 죄책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같이 있어줬다면 스트레스 덜 받지 않았을까. 내가 죽는다고 안 했으면 낫지 않았을까. 사실 후자는 진짜 친구한테 스트레스를 줬을 거라 너무 미안하다.

교수님과 면담에서도 같은 이야길 들었다. 자책하는 걸 좀 줄여야 한다고. 그 자책이 타당한지 생각해 보면 항상 그렇지는 않을 거라는 말씀을 하셨다.


입원 10일차

머리가 또 아프다. 생각이 너무 많아서 그런가 보다. 오늘은, 디게 우울했다. 공부 때문에. 검정고시 공부를 약간 했는데, 하나도 기억이 안 났다. 그래서 기분이 제대로 떨어졌다. 면담 때 전공의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9개월이나 공부를 쉬었으니 당연한 거라고 하셨다.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쩌다 이 말이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지키기 위해 만들었던 기준들이 지금 나를 괴롭히고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길 하셨다. 나를 지키기 위해 단기적으론 효과 있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론 나를 더 옥죄는 그런 기준들을 만들었다는 거겠지.

친구랑 걷다가 같이 교수님을 만났는데 우리 보고 “같이 죽자!!” 이런 거 하지 말라고 하셨다. 상황과 감정을 풀어서 대화하라고. 어렵지만 중요한 일인 거 같다.


입원 11일차

*주의* 가정 폭력에 대한 묘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내가 만난 사람들은 이상하거나 모자라거나 뒤처지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각자의 아픔을 가지고도 최선을 다하는 그 어떤 사람들보다 강한 사람들이었다. 전교권의 성적을 가져도, 검정고시 만점을 받아도 반드시 행복하고 아프지 않은 건 아닌 거 같다. 그렇다면 나는 어디에 가치를 두고 살아가야 하나.

전공의 선생님과 Case Fomulation이란 걸 적어봤다. 정확히 말하면 쌤이 가져오신걸 같이 봤지. 정서적 취약성, 자기 비수인, 외현상 유능 뭐 이런 어려운 말이 적혀 있는 자료였는데 내가 가장 도움 받았던 자료이기도 했다. 나의 환경을 종합적으로 분석해서 이런 이유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왔고 그 결과가 어떤 행동을 초래했다 요런 식으로 정리되어 있는 자료였다. 이걸 보면서 같이 대화를 했는데 선생님은 나에게 감정 표출이 좀 필요하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집중관찰실 들어가서 소리 질러보라고도 하셨다.

유년 시절부터 되짚어가며 이야길 하다 보니까 고등학교 2학년 당시 있었던 일에 대해서도 말하게 됐다. 성적으로 시작된 말싸움이 폭력으로까지 이어졌던 일, 동생의 반항이 내 탓이 되고 결국 칼부림까지 났던 일. 모두 이야기하고 나니 전공의 선생님 표정이 너무 심각해서 난 오히려 웃었다.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했지만 면담이 끝나고 나니 헤집어진 기억들이 너무 괴로웠다. 연쇄 반응처럼 줄줄이 더 기억나는 사건들. 5살 때쯤 있었던 동반자살시도. 6살 때쯤 있었던 엄마의 가출. 20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는 아빠의 폭언. 중학교 1학년 엄마의 자살 시도. 고등학교 1, 2학년 양쪽 부모님의 폭언과 폭행. 핸드폰이 부서지고 단발을 했다는 이유로 맞고, 목을 조르고, 자기를 죽이라고 협박하고. 그 끝에는 나의 사과와 부모님의 사과 아닌 사과 그리고 나를 향한 원망이 있었다. “너가 그렇게 안 했으면 이런 일 없었을 거야.” 모든 건 내가 살아 있어서 문제였다.

노이즈 캔슬링을 켜고 음악을 틀면 나 홀로 남겨진 기분이 든다. 외로움보단 안정감. 역시 세상은 홀로 살아가는 게 맞다는 생각. 왜 나는 그 생각을 지울 수 없을까. 결국엔, 나 혼자 남겨질 거란 거. 근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생각이 맞다는 감이 든다. 어차피 내가 살아야 할 세상은 같이보단 홀로 지내야 하는 시간이 기니까.

난생처음 이렇게 부모와 떨어져 긴 시간을 보내다 보니 그제서야 느껴진다. 내가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시간들을 살아왔는지. 아직은 그런 내가 가엾다기보단 좀 더 잘 버텨내지 못한 것 같아 자책을 하게 된다. 그래도 약간의 자각은 생겼다. 남들이 보기에 그 일들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일이었는지에 대한. 이 시간이 귀하게 느껴진다. 여전히 힘들지만 아이러니하게 이만큼 안정감 있는 시간이 내 인생에서 다시는 없을 것 같다. 기분이 괜찮을 땐 내가 있는 미래가 얼마든지 그려진다. 이성을 되찾고 가만히 생각하다 보면 역시나 나는 사라져야 하는 사람이다. 그 사실이 슬프면서 나를 안정되게 한다. 그래. 그런 일을 다시는 겪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 때문인 거 같다. 나는 내가 아는 것보다 훨씬 힘들고 괴로웠나 보다. 세상을 바꿀 수 없어도 세상을 보는 관점을 바꿀 순 있다고. 모르겠다.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재생된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난 필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이전 주치의에게는 해 본 적 없는 이야기였다.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했지만 뒷북치듯 이제 와서 힘들다.

이제서야 기억났는데 그때 칼을 들고 수십 번을 그었다. 나를 벌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소리 없는 비명을 내질렀고 숨이 멎을 것처럼 울었다. 다른 한 번은 벌벌 떨었다. 공포감이 온몸을 덮쳐 아무런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나를 탓하는 엄마의 말에 미안하다고 답했다. 그리고 웃었다.


입원 12일차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기분이 별로다. 딱 눈을 떴을 때 죽고 싶단 생각이 먼저 들었다.

엄마는 항상 자기 목숨을 가지고 협박했다. 술을 가득 따라놓고 먹고 죽어야지 이러거나 불을 지르겠다고 하거나 창문을 열고 난간에 서 있거나. 그런 식으로 협박 또는 복수를 했는데 그래서 내가 죽겠다고 하는 걸 복수라고 말하나 보다.

온몸에 힘이 없다. 집중은 당연히 안 되고.

교수님이 반쯤 자려고 하는데 오셨다. 내 일기를 읽으시곤… 한참을 정말 한참 말없이 나를 관찰하셨다. 난 그 시간이 너무 어색해서 계속 웃었다. 눈물이 날 것 같다고 하셨고 내가 살아있고 버텨낸 게 기적이라고 하셨다. 아니 정말 그 정도냐고. 뉴스에 날 일이라고 하셨고 많이 무서웠겠다고 많이 힘들었겠다고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그게.. 많이 위로가 됐다. 울어도 되고 화를 내도 된다고 말씀해 주셨다. ​오늘은 전공의 선생님이 학회 가셔서 없으셨다. 그래서 하루종일 심심했다. 많이 우울하기도 했다. 생각하면 할수록 나오는 기억들이 많아졌다. 마치 까도 까도 나오는 양파처럼… 기억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추가됐다.

매일을 살려고 발버둥 치는데도 자꾸만 죽고 싶어 진다. 그저 울고 또 울고 싶다. 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니 적어도 내 숨이 멎을 때까지. 마음껏 울고 소리치고 그러다 찬란하게 부서지고 싶다.
잠에서 깨면 또다시 하루가 반복된다는 게 너무나 싫어서 영원히 깨어나지 않기를 바라게 된다.
갇혀서 나오지 못한 울음들은 나의 폐를 짓누르고 숨 막히게 한다. 눈앞에서 아른거리기만 하는 눈물이 시야를 흐리게 만든다. 그리고 가만히 눈을 감으면 소리 없이 한 두 방울 흘러내린다.


입원 13일차

친한 언니가 퇴원했다. 부디 죽지 않고 잘 살기를… 그리고 여건이 된다면 또 만날 수 있길. 그땐 병원이 아닌 다른 공간에서. 정들어 버렸다. 언니가 없는 병원은 허전하다. 하지만 또 익숙해져야지. 씩씩하게 각자의 시간을 살아가야겠지.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일부가 되었을까. 내가 그 사람의 한 조각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얼마나 많을까. 그걸 알면서도 사라지려 하는 나는 얼마나 못됐고 얼마나 이기적인 걸까.

조금씩 이 서러운 세상에서 나를 지우다가 내가 살았다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싶은 밤.

어제 교수님 보여드렸던 일기 똑같이 전공의 선생님께 보여드렸다. 생각이 많아진듯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셨다. 지난번 교수님이랑 잠깐 같이 했던 그라운딩이라는 기술을 상세하게 배웠다. 간단히 말하자면 현재에 집중하는 기법을 연습하는 거다. 실제로 하다 보면 조금 현타가 온다. 그런 의미에서는 효과가 있는 듯.


입원 14일차

어젯밤에 조용한 난리를 쳤다. 그리고 친구가 옆에서 안아주고 다 괜찮다고 말해줬다. 난 거의 반쯤 정신줄을 놓은 상태였는데 친구 아니었음 또 격리실에 끌려갔을 거다. 그래도 그러곤 약 기운이 돌아선 지 잘 잤다.

어지럽고 숨 막히고. 또 어제처럼 충동이 올라온다. 여기 있는 게 다행이면서도 불행이란 생각이 든다. 열심히 대체 요법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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