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정신과 입원기(7)
면담실에서 책상에 머리를 박았다. 그대로 격리실 행. 하룻밤 자고 나왔다. 이제 내 처분이 궁금해지는데. 이번이 두 번째니까. 아 근데 머리 박은 것도 자해로 치나. 대체 어떤 기준에서 자해인지 아닌지가 결정되는 건지. 억울하다. 근데 난 왜 머리를 박았을까. 이해가 가지 않는다. 분명 이번이 마지막 기회란 걸 알았을 텐데 말이야. 알 수가 없다. 폐쇄 가고 싶지 않은데. 그냥 좀 울고 싶었고 내가 너무 미웠다. 그래서 죽었음 했고. 지금으로서는 당시 어떤 기분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상당히 비참했던 거 같다. 죽고 싶지만 죽을 수 없다는 것이. 나에게 해를 가할 수 없다는 것이. 나름 울려고도 해 봤는데 울 수가 있어야지. 어쨌든 아침을 먹자마자 나를 만나러 오신 전공의 선생님께 애원도 해봤지만 규칙에 예외는 없었고 처음 입원하면서 작성한 서약서에 분명 머리를 박는 행위도 자해라고 명시가 되어 있었다. 아직까지도 왜 그게 자해란 건지 이해할 수 없지만 머리를 박는 나 같은 환자가 종종 존재하는구나 싶었다. 그치만 나는 너무 멀쩡했는걸. 어지럽지도 않았고 멍이 든 것도 아니었다고.
내 억울함과는 별개로 이실은 빠르게 진행되었고 10시쯤인가 보호사님이 카트를 주며 짐 정리를 하라 하셨다. 동시에 핸드폰도 빼앗겼다. 난 9시에 핸드폰을 받자마자 블로그에 내 처분에 관한 글을 올리고 친구들과 목사님께 간단한 문자를 남겼다. 하지만 차마 엄마에게 연락할 용기는 나지 않아 전공의 선생님께 넘겨버렸다.
새로운 사람들. 또 나를 설명해야 하고 누군가에게 맞춰야 한다는데 진절머리가 난다. 솔직히 말해 더 스트레스받는다. 보호에 넘어온 지 두 시간이 채 안 됐는데 벌써부터 앞길이 막막하다. 다시 개방 가고 싶다. 친구도 보고 싶고.
일주일간 자해 없으면 다시 개방으로 이실. 그리고 모든 사람들과 꼭 맞을 필요는 없다. 전공의 선생님과 면담.
보호병동은 개방보다 확실히 난이도가 높았다. 하루종일 중얼거리시는 할머니 환자분, 문마다 다 열려고 하시는 할아버지 환자분. 그 외에도 보호병동은 핸드폰 사용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개방병동보다 사람들끼리 가까운 분위기였다. 좋게 말하면 친밀한 거고 나쁘게 말하면 귀찮은 거였다.
보호병동에 오신 교수님은 나를 제일 마지막에 보러 오셨다. 그리곤 보자마자 “너 왜 여기 있어!! 하긴 내가 보낸 거긴 하지만” 그러셨다. 거기에다 난 냅다 “교수님 나빠요.” 그랬다. 어떤 상황이었고 어떤 기분이었는지 물어보셨고 간략하게 쓴 ‘상생느욕행결’을 보여드리자 좀 더 자세하게 써 보라고 하셨다.
상황: 내가 죽었을 때 주변 사람들이 상처받을 걸 알면서도 죽으려는 나. 걸으며 생각을 했다.
생각: 일단 내가 정말 못됐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미워졌고 잡다한 생각이 많아졌다.
느낌: 우울하다. 자책된다. 답답하다.
욕구: 울고 싶단 마음이 제일 컸다. 그러지 못해 답답했고 부정적인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죽고 싶단 생각까지 들었다.
행동: 머리 박기, 소리 지르기
결과: 격리실 2시간, 폐쇄 행
면담 끝나자마자 휘리릭 썼다. 확실히 이렇게 정리를 하면 내 기분과 행동에는 인과가 있구나를 알아차리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뭔가 달라지지는 않는 거 같다.
역사 공부 엄청 열심히 했다. 내 딴에는. 글쎄. 그거라도 안 하면 정말 외로워 죽을지도. 하지만 하나도 외워지질 않는다. 정리까지 했는데. 이건 정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때로는 어떤 게 진짜 내 생각인지 모르겠다. 지금 드는 생각은 역시 혼자가 편하다는 거. 근데 또 깊게 생각해 보면 모순인 게, 친구랑 있을 때 난 불편했나? 아니잖아. 왜 뜬금없이 혼자가 낫다 이러고 있는 거야? 외롭다며. 이상하지 않아? 맞아 너무 외로워. 하루종일 같이 시간을 보내던 친구도 없고 건너다볼 수 있었던 전공의 선생님도 없고. 그래서 이렇게 공부에, 글쓰기에 몰두하는 건가.
참 긴 하루다. 어김없이 꾸역꾸역 하루를 살아가는 기분이다. 문자 그대로 꾸역, 꾸역. 소화도 안되는데 음식을 삼키는 것처럼 억지로 그렇게. 그래 교수님 면담 중에 그런 이야길 했다. 내 마음 주머니가 가득 차서 터질 수도 있다고. 맞는 말인 거 같다. 난 지금 딱 터지기 직전의 상태다. 근데 그 상태가 나도 감당하기 힘들어서 자꾸만 주변 사람들에게 티 내는 거고. 그냥, 팡 터지면 좋겠다.
내가 싫어하는 금요일. 내일이 주말이기 때문. 주말이 평온했던 적은 거의 없었으니까. 여기 들어오기 전에는 흡사 시체처럼 지냈지.
아무것도 할 상태가 아니다. 면담록도 생각나는 게 없어서 못 썼다. 전공의 선생님과 면담을 두 번 했는데(왜지?) 두 번째 면담에서 좀 복잡한 이야길 했다. 죽고 싶은 사람에게 마냥 죽지 말라고 애원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그렇군요’ 할 수도 없는 의료진의 입장. 그러게 나라면 어떨까. 말리기엔 미안하고. 근데 분명한 건 죽고 싶어 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아니 적어도 죽고 싶다고 털어놓는 사람들은 상대방이 어떤 말이라도 해주길 원할 거 같다. 무슨 말을 듣고 싶은지는 사바사겠지만. 하긴 그래서 어려운 거겠지. 생각은 많은데 정리가 잘 되지 않는다.
아무것도 한 게 없어서 끄적여 본다. 정말이지 만화책에도 글쓰기에도 집중이 안 되는 날이다. 친구랑 통화를 했고 내일 퇴원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퇴원하는데 배웅도 못해주고… 이게 뭐람.
옛날에는 쿠에타핀 25로도 잘 잤는데 요샌 50으로도 한참 걸린다. 그렇다고 용량 더 늘려달라고 하고 싶진 않다. 그럼 낮에 멍해지는 게 심해지거든… 어쩌겠어. 내가 버텨야지.
오전 내내 잤다. 꿈을 많이 꿨고 꿈속 세계가 있다는 건 퍽 기꺼운 일이다.
혼자 복도를 걸었다. 친구도, 전공의 선생님도 없는 복도. 심지어 노래도 못 듣는다. 심심해 죽을 뻔했다. 그래도 꾹 참고 걷다가 결국은 병실로 돌아왔다.
결국엔, 이 상황들에도 적응이 되겠지.
가끔, 아니 자주. 나쁜 소식을 듣게 되는 상상을 하게 된다. 누군가의 부고를 듣거나… 대체로는 누가 죽는 상상들이다. 왜 그런 생각들이 드는지는 고민 안 하기로 했다. 팝업창 뜨듯이 떠오르는 생각들을 어찌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다만 조금 외로워진다. 이런 생각들을 나눌 대상이 없다는 게.
보호병동에 있으며 신박한 자해 방법을 많이 배웠다. 정신과 입원의 단점이라면 가장 큰 단점인 거 같다. 비슷한 사람들이 모이면서 누가 더 불행한지 비교하거나 자극적인 이야기를 공유하는 것. 이런 것들에 민감하다면 정신과 입원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걸 추천한다.
조금 후회가 됐다. 자퇴한 게. 좀 더 버틸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땐 분명 충분히 버텼다 생각했었는데 이제 와서 조금 스치듯 후회가 된다. 잊어버렸기 때문일까.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얼마나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었는지. 하지만 그건 내 주관적 생각이잖아? 근데 후회한다고 뭐가 바뀌나? 아니지.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는 걸. 그래도… 후회라는 감정은 잔상이 오래 남는다.
결국 불안시약 먹었다. 위기생존프로토콜이고 뭐고 다 건너뛰고 맨 마지막부터 하기. 모르겠다. 걷는 것도 수다 떠는 것도 다 친구가 있어서 가능했던 건데. 공부도 안된다. 내가 신석기 구석기는 구분할 수 있을란지 모르겠다. 그래도 수능 역사는 항상 거의 만점이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네. 무슨 다 모르겠대.
그래. 다 모르겠다. 이전에는 역사를 참 좋아했었는데 이젠 그것도 모르겠고 한때는 물리에 꽂혔었는데 그것도 모르겠고 사회 전교 1등 할 정도로 열심히 하고 좋아했었는데 그것도 모르겠다. 그냥 다 다 다 정말 죄다 모르겠다.
어쩌면 그때가 그리운 걸지도. 아팠지만 내가 잘하는 게 있었던 때가. 뭘 위해 뛰는지도 몰랐지만 어쨌든 뛸 수 있었던 때가. 근데 그때는 내가 잘하지도, 제대로 뛰고 있는지도 몰랐다. 아니 무슨 죄다 몰랐다, 몰랐다야. 어쩌겠어 내 인생이 그런 걸. 왜 사립 자사고에 갔는지도, 왜 사회를 좋아하고 잘하는데 이과에 간 건지도, 왜 고2 때 친구를 만들지 않았는지도 하나도 아는 게 없으니. 손때가 가득 묻은 역사 교과서를 보자니 고1 때가 그리워진다. 아무 이유 없이 많이 웃었지 그때. 그저 눈 마주치는 게 웃겨서 밥도 못 먹을 정도로. 그렇게 웃고 동시에 그렇게 무너졌다.
잠을 설쳤더니 커피 마시고도 정신이 안 차려져서 러닝머신 15분 걸었다. 친구랑은 두 시간씩도 걸었는데 겨우 15분 걸었다고 지치더라. 함께라는 조건이 얼마나 큰 지.
뭐 당연하게 공부는 안된다. 노트 필기고 뭐고 옛날엔 다 어떻게 한 건지 모르겠다. 답답하다.
시간이 안 간다. 글을 써도, 공부를 해도, 멍을 때려도 시간이 안 간다. 힘들다. 집에 있을 때로 되돌아간 것 같다. 하루종일 자다가 일어나서 글 좀 쓰고, 그거 영상 찍고 편집해서 올리고. 하긴 그땐 영상 편집이라도 했지 지금은 뭐… 끄적이는 일 밖에 안 한다. 어쨌든 그때도 시간 보내는 게 너무 힘들어서 필요시약인 로라반이나 쿠에타핀 먹고 맨날 잤는데. 지금 필요시약인 자나팜은 먹어도 잠 안 온다.
또다시 비가 추적추적. 기분이… 심연으로 가라앉은 느낌? 피곤하지만 잠은 오지 않고 누군가에게 미움받는다는 게 익숙하면서도 무섭고. 비가 이렇게 많이 오는 날이면 꼭 죽고 싶어 진다. 안개 낀 흰 하늘이 너무 예뻐서.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가 듣기 좋아서. 예쁘고 아름다운 세상에 나라는 부작용이 존재한다는 게 싫어서.
엄마랑 통화를 하다가 엄마가 교수님이랑 면담했던 이야기가 나왔는데 교수님이 내가 항상 웃고 밝아서 여기 있을 아이가 아닌 것 같다고 하셨다고 한다. 엄마는 이 이야길 하면서 자기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했고. 내가 퇴원하길 바라는 거겠지. 여전히 엄마는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암튼… 내가 좀 많이 웃긴 했지. 근데 그게 내가 의도적으로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습관이다. 나도 모르게 웃고 있어. 그리고 압축 프레서는 친구 덕분에 많이 열렸다가 지금 다시 닫히고 있는 중이다. 게다가 이제 전공의 선생님까지 안 계시면… 안에서 공기 한 분자도 안 남기고 압축해 버린 해맑은 인형이 될지도 모른다.
전공의 선생님께 편지를 썼다. 심심하기도 했고, 감사하단 말을 전하고 싶기도 했고. 근데 항상 느끼는 거지만 편지 한 장은 하고픈 말을 담기에 너무 작다. 선생님이 마음 편히 휴가 다녀오시면 좋겠단 생각이 문득 들어서 적기 시작했는데 내 진심의 반의 반도 못 담은 거 같다. 막상 편지지 앞에 서면 하려던 말을 죄다 까먹어 버려서. 난 내 마음을 전하는 일에 서툰 것 같다.
하루가 되게 길게 느껴진다. 역사도 두 장 정도 공부했고, 편지도 썼고, 다꾸도 했고, 만화책이지만 책도 읽었다. 그리고 글도 엄청나게 쓰는 중이다. (일기장 기준으로 이 날만 4장을 썼다!) 문제는 오늘 한 일이 어제 한 일 같고 어제 한 일은 아예 기억이 안 난다. 머리가 많이 제정신이 아닌 듯. 일기를 안 썼으면 정말 분간 못 했을 수도 있다.
손톱을 바짝 깎고 들어왔는데 많이 자랐다. 아직 깎을 정도는 아니지만 시간의 경과를 느끼기엔 충분히 많이 자랐다. 삼주가 정말 훌쩍 지났어.
여기 있으며 제일 좋은 건 일단 아빠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 가식적인 태도, 말투, 표정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 또 나를 받쳐줄 교수님과 전공의 선생님이 계시다는 거. 그리고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 모르겠지만 죽을 수 없다는 거. 안 좋은 건 더 이상 친구가 없다는 거. 어쩌면 조금 불편한 사람들과 함께 지내야 한다는 거. 그런데 있지 난 차라리 여기가 훨씬 자유로운 것 같아. 물론 개방일 경우. 아이러니하게도 밖이라고 여기보다 더 낫거나 덜 답답하거나 그러지 않거든. 그래서 내가 퇴원하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드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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