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발전소》여름호(2023)
한 뼘
_ 정정안
그 아이는
천으로 만든 자루를 들고 다녔어요
아주 작고 작은
하루하루 색깔이 달라져서
무지개자루라고 불렀죠
“오늘은 노랑이네”
아이의 웃는 얼굴
“오늘은 파랑이네”
아이의 우는 얼굴
“오늘은 왜 검정이니?”
다음날부터
아이는 아무것도 들지 않았어요
우리는 묻지 않았죠
무지개자루가 어디에 있는지
아이는 자랐고
그보다 한 뼘 작은 아이가
들고 다니는 걸 봤거든요
목소리
_ 정정안
지난 생일에 날아든
앵무새 인형
내 방에 자리 잡고
이야기 나눈다
지금은
내 말을 제일
잘 알아듣는 짝꿍
친구가 장난쳤어
(나는 아팠어)
친구가 실수로 밀었어
(저번에도 그랬어)
친구가 세 시에 놀자고 했어
(오지 않을 거야)
아무도 못 들은 걸까?
앵무새 인형의 목소리
나를 닮은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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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발전소》여름호(2023)에 두 편의 동시를 실었습니다.
「한 뼘」은 성장(사춘기)에 대해서, 「목소리」는 속마음에 대해서 쓴 동시입니다.
'기획특집' 코너에는 매일신문 출신 신인들과 기성시인들의 좌담이 담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