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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마나 Oct 26. 2020

마지막화. 어쩌면 1년 4개월 8일 후

 토요일 이른 아침부터 전화가 울린다. 보영이다.

 “응, 무슨 일 있어?”

 “자고 있었어? 우리 오늘 조금 일찍 볼래? 좀 멀리 다녀오자.”

 “멀리? 가고 싶은데 있어?”

 “차 타고 가도 되고, 기차 타고 가도 되고. 어디든.”

 그녀의 목소리 뒤로 버스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보영이 이른 시간에 밖에 있다. 잠이 달아났다.

 “밖이구나. 어디야?”

 그녀는 말이 없었다.

 “날도 추운데. 금방 챙겨입고 나갈게. 꾀죄죄하다고 뭐라고 하지 말고. 어디야?”

 “너네 아파트 입구.”

 “뭐? 기다려. 지금 나간다.”

 서둘러 집밖으로 나섰다. 자던 옷차림에서 바지만 트레이닝복으로 바꿔입고 외투만 걸쳐 양말도 신지 않은 채였다. 눈곱을 떼어내며 종종 걸음으로 복도를 뛰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동안 머리 위에 얹어진 까치집을 손바닥으로 꾹꾹 누르고 외투 지퍼를 올려 매무새를 가다듬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가 열리자마자 아파트 입구를 향해 튀어나갔다.    겨울 아침의 여린 볕이 텅빈 놀이터를 비추고 있었다. 그곳에는 코트 주머니에 손을 찔러놓고 고개를 푹 숙인 채 벤치와 벤치 사이를 느린 걸음으로 오가는 고보영이 있었다.

 “어여쁜 라일락 씨.”

 내가 웃으며 다가서자 그녀가 나를 돌아보았다. 활짝 웃는 얼굴 위로 덕지덕지 걱정과 근심이 묻어있다.

 “나오면서 연락하지, 날도 추운데.”

 내 말에 그녀가 손가락으로 아파트 지상주차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차 가져왔어. 추우니까 차로 가자.”

 우리는 함께 손을 잡고 차로 향했다. 그녀의 손은 얼음처럼 차가웠고 뺨도 발갛게 얼어있었지만 표정을 보자니 그것이 꼭 추위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아 나는 손 안에 든 그녀의 손을 가만히 어루만져주었다.

 차에 올라타자 그녀가 시동을 켜고 히터를 틀며 말했다.

 “우리 언니, 이혼했대.”

 얼마나 참아왔던 말이었는지 그녀는 뜸들일 틈조차 없이 말을 뱉었다. 나는 무어라 대꾸해야할지 몰라 가만히 있었다. 그녀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언니가 이혼해서 속상한 건 아니야. 그럴 수도 있잖아.”

 나는 그녀의 생각과 감정을 놓치지 않기 위해 온 신경을 곤두세워가며 그녀의 말은 물론, 입술모양, 손의 움직임, 눈빛, 숨소리까지 모두 집중했다.

 “언니가 집 구할 때까지만 집에 내려와 있겠다는데 아빠가 안된대. 남의 집 숟가락 개수까지 다 아는 동네에서 남부끄럽다고 안된대.”

 그녀는 왈칵 눈물을 터뜨렸고 쓰러지듯 내게 기대는 그녀를 나는 고이 받아 안았다. 내게 지혜가 더 있다면, 그녀의 마음을 쓰다듬을만한 말을 몇 가지라도 알고 있다면 좋을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말없이 곁에서 그녀의 어깨를, 등을, 머리를 쓰다듬는 것 뿐이었다. 울음이 잦아들었고 그녀가 몸을 일으켜 얼굴 위로 어지러이 엉킨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지런히 정리하며 말했다.

 “덕구야, 나는 어젯밤에 언니가 아빠한테 전화해서 집에 내려오겠다는 말에 아빠, 엄마가 그렇게 나올 줄 몰랐어. 언니랑 대판하는 걸 방에서 다 들으면서 너무 아프더라. 형부가 우리집에 처음 발을 들이던 모습, 날 처제라고 불러주던 얼굴, 언니가 내가 본 것 중에 제일 행복하게 웃던 모습, 언니가 결혼식에서 부케 던지던 모습까지, 사람들 웃음소리, 신혼여행에서 돌아와서 언니가 수다스럽게 뭐는 재미있었고 뭐는 엉망이었고, 막 이런 말들 하고 있을 때 형부가 내 선물이라면서 줬던 모빌. 그 모빌은 아직 내 방에 걸려있어. 그런데 둘이 이혼했다잖아. 나는, 그냥 처제인데도 그런 기억들을 떠올리니까 숨도 잘 안 쉬어지고 너무 힘든데, 언니는 오죽하겠어? 그런데 엄마 아빠는 무슨 언니가 죽을 죄를 지은 것처럼 집에도 못 오게 하고 한숨이나 푹푹 쉬고, 꼭 그랬어야 하느냐고 묻고. 그냥, 잘했다. 사람이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는거라고 하면 되잖아. 그 말이 맞지 않아? 얼마나 어렵게 내린 결정이겠어. 사랑하다가 헤어질 수도 있는 거잖아. 그게 무슨 죄라고 동네에 창피하고 부끄럽냐고. 언니가 안쓰러워서 미치겠어. 혼자 속앓이하면서 가족한테 말도 못하고 지금도 끙끙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너무 속상해.”

 “서울 갈까?”

 무심코 그렇게 말이 나왔다. 고보영이 미처 못한 말을 꿀꺽 삼키고는 멀뚱멀뚱 나를 바라보았다.

 “아니, 나는 그냥 너 서울 올라가는 거 동무해 주고. 언니는 둘이 만나. 나는 오랜만에 서울에서 사진이나 찍으면서 돌아다니지 뭐. 충분히 시간 보내. 자고 와도 돼. 나도 근처 어디 모텔같은 데서 자도 되고. 언니한테 물어봐.”

 그녀가 내 목을 와락 끌어안았다. 짭쪼름한 눈물냄새, 달콤한 꽃냄새, 따뜻한 마음냄새가 들숨을 타고 훅 달겨들었다.

 “고마워, 덕구야. …사랑해.”

 그녀가 울먹이며 단어 하나하나를 내어놓을 때마다, 아니 훨씬 이전부터 나는 마음 속으로 쉼없이 사랑한다고 되뇌었지만 굳이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대신 나를 끌어안은 그녀를 더욱 꼭 끌어안아주었다. 그녀가 팔을 풀고 천천히 몸을 빼 내며 핸드폰을 들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녀가 전화를 걸었다.

 “언니, 나. 응. 어디야? 응. 언니, 나 서울 갈건데 가면 언니 볼 수 있어? 언니 이야기 듣고, 내 이야기도 하고. 그래, 좋다. 그럼 나 한밤 잘까? 그래. 언니, 난 언니 편이야. 엄마 아빠는 너무 올드해서 그래. 응, 가서 이야기해. 그래? 다행이다. 차 타고 올라갈건데 지금 가면 별로 안 밀리지 않을까? 점심쯤 도착하겠다. 알았어. 응, 응.”

 고보영이 한결 경쾌해진 표정으로 전화를 끊었다.

 “언니가 와 주면 좋대. 호텔 잡는다고 자고 가래.”

 “그래, 기분 제대로 내고 서로 이야기하면 좋겠다. 원래 힘들다는 말을 하고 나면 좀 괜찮아지는 것도 있잖아. 그럼 나 옷 좀 다시 입고 카메라 좀 들고 올게. 잠깐만 기다려.”

 “그럼 나 기름 넣고 올테니까 여유있게 준비하고 와. 엄마한테도 말씀드리고.”

 “걱정 마. 그럼 기름 넣고 와. 나 준비하고 올게.”


 현관문을 열자 잔뜩 부스스한 모습으로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안방에서 나오던 엄마와 밖에서 들어오던 내가 정면으로 마주쳤다. 엄마는 하품도 마저 못하고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 시간에 어딜 다녀와? 언제 일어났어?”

 “아, 산책 좀 했어. 잠이 안 와서. 엄마, 나 서울에 좀 갔다가 내일 올게.”

 “뭐? 무슨 일 있어?”

 잔뜩 걱정스러운 얼굴로 묻는 엄마에게 나는 웃으며 답했다.

 “잠깐, 아니야. 순미 씨. 제발. 아니야. 오랜만에 기분전환하려고. 서울에 가서 사진이나 좀 찍고 오게. 걱정 말고. 나 지금 준비해서 나가.”

 “아침도 안 먹고?”

 “지금 가야 길에서 고생 안해.”

 “응? 기차 타고 가는 거 아냐?”

 하마터면 들킬 뻔 했다.

 “아, 그게 렌트해서 다녀올까 싶기도 하고. 거기에서 돌아다니려면 차가 있는 게 나을 것 같기도 하고. 일단 나가보고 기차 시간도 보고, 렌트 가능한지도 좀 보고. 여튼 걱정하지 말고."

 나는 웃는 얼굴로 엄마를 안심시키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씻고 나오니 엄마는 다시 안방으로 들어갔는지 거실이 조용했다. 나는 머리를 대충 수건으로 털어 말리고 방으로 들어가 옷가지를 챙기기 시작했다. 하루를 묵어야 하니 편하게 입을 옷, 잠옷, 세면도구까지 챙겨야했다. 짊어지고 다니던 배낭을 오랜만에 비우고 여행짐을 싸고 있으려니 어딘가로 떠나본 것이 참으로 오랜만이라는 생각에 기분이 설렜다. 아니 오가는 길이 홀로였다면 이런 기분이 아니었으리라. 모든 좋은 감정들은 오로지 고보영 덕이었다. 옷짐을 싸고 카메라를 꺼내기 위해 몸을 일으켜 책장으로 향했다. 3칸 짜리 좁다란 책장에 윗칸에서부터 차례로 원래 가지고 있던 나의 카메라 가방, 박춘수가 주고 간 단단한 크라프트 상자 그리고 카메라 청소도구함이 차례로 놓여있었다. 어느 카메라를 골라야 할지 망설이는 건 생경한 감정이었다. 나는 늘 그랬듯 내 카메라 가방을 집어들어 배낭 곁에 두었다. 그리고 한참동안 박춘수가 주었던 상자를 바라보다 상자도 두손으로 들어 내 카메라 가방 옆에 나란히 내려두었다. 바닥에 앉아 상자를 조심스레 열었다. 톡톡한 붉은색 캔버스천으로 바닥을 푹신하게 돋운 상자 안에는 라이카 상자, 쪽지 하나, 콜라 한 캔이 나란히 늘어서 있다. 나는 콜라를 꺼내어 유통기한을 확인했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년 4개월 8일 뒤였다. 나는 라이카를 꺼냈다. 그리고 내 카메라 가방에서 나의 첫 카메라를 꺼내어 그 상자 안에 넣었다. 다행히 상자가 제법 깊고 넓은 덕에 카메라는 무리없이 들어갔다. 나는 가방에서 펜을 꺼내어 박춘수가 건네 준 쪽지 뒤에 이렇게 썼다.   

   

 ‘악기하는 사람들 보면 가장 아끼는 제자에게 자기가 쓰던 악기를 물려주더라고요. 물려줄게요. 제 첫 카메라예요.’


 나는 잠시 망설이다 한 문장을 덧붙였다.  

     

 ‘형, 같이 사진 찍으러 가자 – 덕구’

     

 나는 쪽지를 접어 상자에 도로 넣은 뒤 뚜껑을 닫았다. 그리고 라이카와 배낭을 챙겨 밖으로 나섰다.        


   


 덕구,     


 네가 이 천을 들춰볼 정도로 치밀한 녀석은 아니지만 상자를 통째로 버릴만큼 생각없는 녀석 또한 아니니, 언젠가는 이 편지를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혹시 모르니까 이 편지를 발견하신 분은 매일홍영 이덕구 씨에게 전달바랍니다라고 써야 할까. 하하.

 내가 홍영으로 내려왔을 때즈음 나는 원망이 너무 많았다. 서울에 있을 때는 자꾸 회사 사람들 얼굴이 떠올라서 힘들었다. 한 팀에서 지내며 후배라고 믿고 나름 아껴줬던 녀석이 내 뒷통수를 쳤다는 사실, 믿었던 동료들이 내 뒤에서 근거없이 불리한 증언들을 쏟아냈다는 사실, 뻔히 내가 처한 상황이 억울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 하나 징계해서 불편한 상황을 털어버리려는 임원의 그 공정함을 가장한 오만한 얼굴이 생각나서 많이 힘들었었다. 배신감이라는 것이 그렇게 독하고 깊고 역한 것인 줄 그때서야 알았다. 하지만 구태여 빠져나오려고 애를 쓰진 않았다. 왜냐하면 구분이 가질 않았다. 내가 지쳐서 포기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들을 정말 용서한 것인지. 그래서 나는 그 고통을 매일매일 더 날카롭게 다듬으며 살았다. 그리고 어느 날 생각했다. 모든 일이 시작된 홍영으로 내려가야겠다고. 그곳에서 어떻게 해서든 날 이토록 더러운 고통으로 밀어놓은 놈들에게 복수할 방법을 찾아내야겠다고 말이야. 맞아. 내 머릿 속에는 온통 그 생각 뿐이었다. 복수가 용서라고 말이야.

 난 지금도 그 순간이 생생하다. 행복군민위원회 발족식이었는데 네가 카메라를 매고 이리저리 부지런히 사진을 찍고 있었다. 놀라운 건 너는 사진을 찍으려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갈 때 앉아있는 이들의 시야를 가리지 않으려고 굳이 돌아가고, 굳이 숙이고, 굳이 쪼그리더라. 군수나 맨 앞줄에 앉아있는 사람들만 찍는 것이 아니라 뒷자리에 서 있는 사람들 위원회에 위촉되는 한 사람, 한 사람, 건네받는 손과 건네주는 손을 찍더라. 나는 그게 너무 좋았다. 사려깊은 네 온기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 같아 아주 오랜만에 친구를 사귀고 싶어졌다. 그렇게 쉼없이 믿어왔던 사람들로부터 배신을 당한 뒤였지만 나는 그 순간, 비록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모든 일들을 깨끗하게 잊을 수 있었다. 그때의 나는 몰랐겠지만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홍영에서 살고 싶어진 것이,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이용선 씨가 내게 아이디와 비번을 건넸을 때, 은옥 아주머니의 죽음을 둘러싼 석연치 않은 점들을 발견했을 때, BH개발이 결국 입찰을 따내었을 때 이미 모든 것은 분명했다. 저들은 여전히 인정하지 않을테지만 결국 내가 결백하다는 사실을 나 스스로 확인했고, 그들은 나를 버리는데 거리낌 없는, 내게는 딱 그만큼의 사람들이라는 것도 확인했다. 그렇게 하고 나니 나는 원망하는 일을 그만두고 싶어졌다. 더 정확히 말하면 너와 친하게 지내는 시간이 잦아지고 너를 통해 고보영이라는 새로운 벗도 사귀게 되고, 비록 부족하고 어설펐지만 무언가를 해 주고 싶을만큼 어느 순간 내게도 소중해진 운곡시장 사람들 덕분에 나는 미워하는 일을 그만하고 싶어졌다.

 언제가 될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지만 홍영에 다시 찾아오마. 누구에게나 어느 날 갑자기 불행은 찾아올 수 있음을 부정하지 않겠다. 슬퍼하되 머물러 있지는 않겠다. 그리하여 다시 돌아올 때는 생기를 가득 안고 밝게 찾아오마. 그때까지 너는 딱 한 가지만 제대로 하고 있으면 된다. 고 주임하고 연애해라. 너도 고보영도 서로 참 많이 좋아한다. 그거면 된다. 그때까지 그럼 안녕이다. 안녕.       /끝/




지난 6개월 남짓 소설 '보통사람 박춘수'와 함께 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빠짐없이 댓글로 함께 주셨던 꿈꾸는ㅅ 님과 짹짹 , 황영순  감사합니다. 라이킷으로 함께  주신 분들 한발짝 뒤에서  글을 함께  주셨던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저는 오는 금요일, 소설 '보통사람 박춘수' 에필로그로 찾아뵐게요. 이대로 안녕하면, 너무 아쉬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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