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의 노래, <빈녀탄>
빈녀탄(貧女歎)
김규(金圭)
君不見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東家處女貧不嫁
동쪽 집 처녀는 가난해서 결혼을 하지 못하여
年年傭作新婦衣
해마다 품을 팔아 신부의 옷을 만드는 것을.
裁紈剪綺自少事
비단을 다듬고 자르는 것은 어려서부터 한 일이라
針才神妙天下稀
바느질하는 재주는 신묘하기만 하네.
長大美好二十時
성장하여 아름다운 스무 살에 이르러
垂髮委地顏如花
머리카락은 땅에 닿을 정도로 길었고 얼굴은 꽃과 같네.
衣裳破裂補靑紫
옷과 치마는 헤어져서 푸르고 붉은 천으로 기워 입었고
一生不識紅粉華
한평생 붉은 화장을 하는 호사를 경험하지 못했다네.
朝不食夕不食
아침도 거르고 저녁도 먹지 못한 채
調針亂絲殊未綴
엉클어진 실을 바늘에 이어 꿰매려 하지만 그리하지 못하네.
夏之日冬之夜
여름날과 겨울밤
當牕織錦思惙惙
마땅히 창가에서 비단을 짜니 생각이 안정 되지를 않네.
須臾製褘服 反手成五紋
잠깐 사이에 위복을 짓는데 손을 뒤집는 것처럼 쉽게 다섯 무늬 수놓네.
敏捷苟如此 聞者驚且欣
민첩하기가 이와 같으니 이 소문을 듣는 이들은 놀라며 기뻐하네.
十日一梳頭 插鬂赤銅釵
10일에 한 번 머리에 빗질하니 귀밑머리에 붉은 구리 비녀 꽂았고
三月一照鏡 衣衫著綠紗
3개월에 한 번 거울에 비춰보니 옷과 적삼에 푸른 깁이 붙어있네.
忽見堂前春草色
홀연히 당 앞에 봄의 풀빛이 보이니
停針無語坐長嗟
바늘 놓고 말없이 앉아 길게 한숨만 쉬네.
父母俱沒大兄亡
부모님은 모두 계시지 않고 큰 오빠도 죽어
一門無人兄嫂在
한 가문에 사람은 없이 오빠의 아내(올케)만 있다네.
嫂病三年委床席
올케가 병든 지 3년째라 병석에 시든 채 누워 있으니
鷄鳴狗吠身應對
닭이 울고 개가 짖어도 이 몸으로 이 일을 감당해야 하네.
弊廬日長問何有
낡은 초가집에 날마다 자라는 건 묻노니 무엇인가?
蕭條窮巷餘衰柳
고요하고 쓸쓸한 곤궁한 거리에 남은 쇠잔한 버드나무뿐이구나.
事事漸艱難 辛苦知奈何
일마다 점점 어려우니 힘겹고 괴로움을 어이알 수 있겠는가?
古來貧家有處女
예로부터 가난한 집에 처녀가 있으면
每令年貌易蹉跎
나이와 외모는 어긋나기 쉽다 하더이다.
『風謠續選』 卷4
<빈녀탄>라는 김규의 시에는 바느질로 살아가는 가난한 여성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부모도 없이 곤궁하게 자란 여성에게는 오빠가 있는데, 그 오빠의 아내가 깊은 병에 누워있습니다. 밤낮으로 옷을 지어 생계를 이어가느라 정작 자신은 낡은 옷과 헝클어진 모습으로 지낼 수밖에 없습니다.
여성의 탄식과 그 처지를 생생하게 전하는 이 한시에는 너무 가난하여 결혼도 할 수 없는 여성, 집안의 생계를 유지하면서 나라에 내야 할 세금을 내고 살기에 급급한 여성의 삶이 그대로 나타나 있습니다. 아침을 거르고 저녁도 먹지 못한 채 바느질을 하고 있는 여성은 밤낮으로 베를 짜고 바느질을 하지만 그 가난으로부터 벗어날 길 없습니다.
빈녀의 삶은 오늘날 노동자로 살아가는 우리들 삶에도 그대로 이어집니다. 하루하루 생계를 위해 일터로 향하는 이들은 자신을 돌볼 시간을 갖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삶의 여유를 꿈꾸기조차 어려운 현실을 살아야 하는 이들은 차고 넘칩니다. 가난한 여성이 붉은 구리 비녀 하나로 머리를 단출하게 정리하고, 세 달에 한 번 거울을 보는 것처럼, 대한민국의 노동자들 역시 스스로를 돌볼 여유조차 없는 삶에 지쳐갑니다. 낮에는 노동에 시달리고, 밤에는 또 다른 걱정과 책임에 눌려 잠 못 이루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여전히 비정규직, 일용직 노동자들은 삶은 벼랑 끝에 내몰려 있습니다. 계약의 불안정함과 열악한 근로환경 속에서 살아갑니다. 자영업자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가족의 생계와 미래를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여전히 삶은 불안정합니다. 최근 정치적 불안은 그들은 절망의 끝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인공지능과 첨단 기술이 발전한 놀라운 세상이 되었다고들 떠들지만, 빈녀의 바늘 끝에 걸린 절박한 생계와 탄식처럼 지금 오늘을 사는 우리는 탄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절망은 사람의 존엄과 꿈마저도 갉아먹는 질병과도 같습니다. 가난한 여성이 손을 멈추지 않고 수를 놓아가듯, 오늘의 우리도 포기하지 않고 내일을 위해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것이 희망인지, 체념인지 알 수 없지만, 여전히 우리는 이 시대의 빈녀로서 삶의 옷자락을 꿰매고 있습니다.
君不見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東國蒼生困且寒
이 나라 백성들, 가난하고 춥고 지친 것을
年年稅苦物價昻
해마다 세금은 무겁고 물가는 하늘에 닿았네
飢饉之中更失業
굶주림 속에 더해지는 실직과 폐업
寒窗織錦誰人顧
차가운 창가에 앉아 비단 짜도, 누가 돌아보는가
府中執政違國法
집권자는 국법을 어기고도 뉘우침 없고
群臣阿附飾辭言
신하들은 아첨하며 거짓 말만 채운다네
誓約反故信難立
맹세를 어기고 믿음은 땅에 떨어졌으니
百姓愁嘆恨無邊
백성들은 근심하고 한탄하며 원망이 끝이 없도다
高座之人忘其職
높은 자리에 앉은 자는 제 책임을 잊고
謀私欺民目無羞
사사로이 꾀하고 백성을 속이며 부끄러움을 알지 못하네
違法之行昭然揭
법을 어긴 일은 드러나고도 감추지 못하건만
執權之徒猶自恃
권력을 쥔 무리는 여전히 스스로를 믿는다네
朝堂議論起彗星
조정의 논의는 혜성처럼 번져가고
天下呼聲喧雷霆
온 나라 외침은 우레 소리 같구나
民願斥之求退位
백성은 물러가라 외치며 퇴진을 원하건만
耳聾目閉坐高臺
귀를 막고 눈을 감고 높은 곳에 앉아 있도다
昨日貧女猶未嫁
어제의 빈녀는 여전히 시집도 못 갔고
今日蒼生益疲憊
오늘의 백성은 더욱 지쳐 쓰러지네
古來賢王以民本
예로부터 어진 임금은 백성을 근본 삼았거늘
今之執政獨自安
지금의 집권자는 홀로 편안함만을 구하도다
願聞此歌動天地
이 노래가 하늘과 땅을 흔들어
懲惡之風一掃然
악을 징치하는 바람이 일어나리라
(탄핵지귝빈녀탄은 챗지피티에게 도움을 받은 한시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