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꽉 막힌 답답함, 그 누구 때문일까?

이학규의 <앙가오장>

by 틈과경계

3월이 다 가고 곧 4월입니다. 작년 12월 3일 이후 대한민국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을 걷고 있습니다. 계절은 겨울을 지나 봄을 향하고 있는데, 여전히 봄은 오지 않고 있습니다. 봄을 갈망하는 마음으로 오늘은 이학규의 <앙가 오장> 모심기 노래 5장 가운데는 몇 소절을 소개합니다.


오늘 날씨 맑다 흐려

빗줄기 한 자락 가볍게 뿌렸구나

모판에 잘 자랐네. 부지런히 모를 쪄서

못집 지고서 앞들로 나갈 적에

예쁘고 예쁜 새각시도

시누이 올케 손을 잡고

모심기엔 법도도 정연하니

남정네는 앞을 서고 아낙네 뒤를 따라

남정네 소리는 귓가에 요란만한데

아낙네 소리는 가락이 새로워라

새 노래 네댓가락

차례로 듣자하니

소리를 뽑아올릴 젠 바람 안은 부들 같고

감돌아 자지러질 젠 가는 연기 풀리듯

저렇듯 애달프니 원한이 서렸구나

구곡간장 서린 원한 그 누구 때문일런가?


모를 심으러 나가는 상황, 모심기하면서 앞소리를 메기면 뒷소리를 하는 장면이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시인은 남정네 소리는 귓가만 요란할 뿐이지만 여성의 소리와 가락은 특별하다고 말합니다. 소리를 뽑아 올릴 때는 바람에 흔들리는 부들 같고 돌아 감기며 끊어질 듯 이어질 때는 가늘게 풀려나가는 연기 같다고 하니 상상만으로도 울컥합니다. 노래를 통해 전해오는 굽이굽이 맺힌 원한은 과연 누구 때문일까요? 여성민요의 흔적을 찾아서 살펴본 노래를 통해 살펴보았듯이 구곡간장 서린 원한들을 짐작할 만한 합니다. 그 애달픈 사연들은 차고 넘칩니다. 시인의 노래를 다시 풀어볼까요?


오늘 날씨는 맑을까 흐릴까?

아, 빗방울이 잠깐 가볍게 내렸네.

모판에 모가 아주 잘 자랐구나.

서둘러 모를 쪄서 모를 짊어지고 앞들로 나갈 때,

어여쁜 새색시도 시누이와 올케 손을 잡고

모심는 모습이 반듯하네.

남종네들은 앞서 모를 심고

아낙은 뒤따라가는데

남정네 노랫소리는 귓가에 시끌벅적하고

아낙들 노랫소리는 마음을 울리는구나.

새 노래 네댓 곡조를 차례로 들어보니

소리를 쭉 뽑아 올릴 때는

바람에 흔들리는 부들 같고

돌아 감기며 끊어질 듯 이어질 때는

가늘게 풀려나가는 연기 같네.

저렇게 애달프니 원한이 사무쳤구나.

굽이굽이 맺힌 원한은 그 누구 때문일까?


모심기의 계절입니다. 기계로 농사를 짓게 된 오늘날, 이 노래는 낭만적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모를 심고 있는 이들의 삶은 하루하루 묵묵하게 살아가는 오늘날 시민들의 삶과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여전히 유보된 봄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이학규의 <앙가오장>을 이렇게도 바꿔 부르고 싶어 집니다.


오늘은 선고가 될까 말까?

아, 탄핵 심판 결과 발표를 기다리고 있네.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늦어지니

대한민국의 운명이 그들에게 있는 것만 같네.

12월 3일 우리가 목격한 계엄의 밤

헌법에 따른 판결은 자명하네.

무슨 일인지 선고는 늦춰지기만 하니

시민들 초조하고 불안하여

날마다 모여서 판결하라 원망하게 되네.

이제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하는데

무엇 때문에 선고가 늦어지는가

불길한 소리가 연기처럼 흘러나오니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같이 탄식하게 되는구나

산불로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

일자리 사라져서 절망하는 사람들

저리 애달프니 답답함이 더욱 사무치는구나.

꽉 막힌 이 답답함은 그 누구 때문일까?



4월에는 앞소리와 뒷소리를 메기며 모심기를 했던 그 일상이 회복되기를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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