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글쓰기인가
내 목소리를 내야 하는 이유
2008년부터 글쓰기를 강의해 왔다. 글쓰기를 비롯한 의사소통 교과목을 담당했다. 관련 교재를 만들었고 독후감 대회, 프레젠테이션 대회 등 심사를 맡았다. 수업에서 만난 이들은 입시 교육에서 수능이나 논술 등을 공부하면서 글을 써봤지만, 내가 없는 글을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기대하는 답변을 찾아 누가 읽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 글을 쓰는 일이 당연했다.
그들에게 요청했던 것인 나다운 글쓰기였다. 나를 불편하게 만들고 도무지 동의할 수 없는 것을 써 주길 기대했다. 글은 내 목소리를 찾아가는 길이다. 내 목소리는 다른 사람의 목소리와 함께 공존할 때 구분이 된다. 나와 타인의 생각을 가르고 나누는 데서부터 소통은 시작된다. 다름을 인식하면서 내 생각이 움튼다. 그것을 표현하면서부터 나다운 목소리가 나오게 된다.
쓰기의 출발점에 선 이들에게 자유로운 글쓰기를 권한다. 그냥 생각나는 일, 오늘 아침 운동하면서, 등교 혹은 출근하면서 겪은 일들을 말하듯 그렇게 써나가는 일 말이다. 누구나 내 입장이 있고 내 시각이 있다. 내 관점에서 내가 본 것 들은 것을 말하는 거다. 특별한 것이 아니지만 그냥 내 방식대로 말하듯 쓰는 글을 권장한다.
소소한 일상을 말하듯 그렇게 내 말을 꺼내고, 그 말을 듣고 반응하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중요하다. 일상적인 공간에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듯 그렇게 글을 쓰는 일도 중요하다. 블로그가 되었든 인스타그램이 되었든 내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
청년 세대는 자기 취향이나 선호하는 바가 분명하다. 그들만의 집단에서 소통하는 기법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자유롭고 참신하다. 그들만을 위한 소통의 방식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누군가와의 대화에서는 유보적 태도를 견지하는 듯 보인다. 이유는 다양하다. 내 생각에 대한 상대의 평가를 염려하기도 하고, 내 말이 가져올 파장에 관하여 검열하는 경우가 많다. 아직 잘 몰라서 말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들은 기성세대가 생각하는 것보다 유능하다. 기기를 다루고 검색하고 매체에 반응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문화적으로 취향이나 감각에 대한 호불호도 분명하다. 그들은 이전 세대보다 다양하고 섬세하며 개성이 넘친다. 문화 자본을 통해 축적된 소양이 있다. 학교가 하지 못한 능력을 이미 장착하고 있다.
그들의 소양과 능력은 좀처럼 교육현장에서는 발현되지 못한다. 개인적이고 사적인 영역에서 머무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소양이나 취향 혹은 개성이 자신이 속한 공동체와 사회, 시대와 어떻게 맞물려 있는가를 만날 기회가 없다고 보이기도 한다.
이런 이들의 개인적 소양과 가능성을 통시적 혹은 공시적으로 연계하여 의미화하는 기회를 마련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잠재력을 지닌 이들이 자신이 속한 공동체 혹은 사회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 역할을 하면서 당당하게 살기 위해서는 ‘나’를 말하고 전하는 일에 주저함이 있어서는 안 된다.
내가 다른 이들과 어떻게 다른지 알아야 진짜 나다운 삶을 살 수 있다. 내가 경험한 사건은 개인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자각, 나는 내가 속한 사회의 일원으로 내가 경험한 사건을 공론화해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많은 이들이 글쓰기가 중요하다고 한다. 모두 동의하는 지점은 글쓰기가 나를 위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나를 위한 글쓰기가 나와 내 가족, 내 동료, 내가 속한 사회를 위한 소통의 디딤돌이자 진정한 나로 살기 위한 시작점임을 알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