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주연 Aug 12. 2021

지극히 사적인 다큐

아들이 준 선물

"엄마!  제가 엄마 집에  있어보니까 정수기가 제일 필요해요."

"엄마 혼자 사는 집에 정수기가 왜 필요해?  눈 뜨자마자 회사 가서 저녁 늦게 와서 자기 바쁜데..."

"마트 가서 무거운 물 사서 들고 오는 거 보기 싫어요. "

나는 마트서 물을 사서 마시고 있었다. 2리터짜리 6개 들어있는 팩을 들고 집으로 가는 것을 아들이 본 것이었다. 아들을 보자마자  팔에 힘이 빠지면서 물을 들고 갈 수가 없었다.

"민아 물 들고 가자. 무거워서 못 들겠다."

신기한 일이었다. 아들이 없을 때는 2리터짜리 6개 들어있는 팩을 양손에 각각 한 팩씩 12개를 들고 집으로 갔는데 한 팩도 들기 힘들었다.

"엄마 정수기부터 달아요."

"그럼 민이 취직하면 달아주라. 렌탈비는 민이 통장에서 빠져나가게 하고. 엄마는 이제 매달 나가는 돈을 없애야 하는 나이다."

"알았어요. 취직하자마자 정수기부터 달아드릴게요."


취직을 한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 수요일에 정수기 설치하러 간다고 하니까 집에 계셔요."


정수기를 설치하고 나니 기분이 무척 좋았다. 디자인이 우리 집 싱크대와 딱 맞았다.

부엌이 럭셔리해 보여서 좋았고 무거운 물을 들고 나르지 않아서 좋았으며 아들이 달아준 것이라 더 좋았다.

미지근한 물을 자주 마시는 나는 수시로  커피포트에 물을 끓여야  했는데 그러한 번거로움이 사라졌다. 내 삶의 질이 향상된 것이다.

따지고 보면 물을 사 먹는 것이나 정수기 렌탈료를 주는 것이나 금액은 별 차이가 없었는데 나는 그렇게 살고 있었던 것이다.

돈은 지금 필요할 때 써야 하는데도 말이다. 미래는 알 수 없고 돈이 똥이 될 가능성이 있는데도  말이다.

"민아 정수기 고마워~~"

"저도 이제 마음이 편합니다. 엄마가 무거운 물 안 들고 다녀도 되니까요."

정수기의 물을 병에 담아서 들고 산책을 갔다. 천혜의 자연경관을 품고 있는 산책로다.

40분 정도 해안로를 열심히 걸어가면 멀리 지심도가 훤히 보이는 곳에 도달한다.

그곳에서 관광 온 사람들을 구경한다.

제트보트를 타는 사람들.

요트를 타고 유람하는 사람들.

배 위에서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

바다에서 수영하는 사람들.

그렇게 즐기고 있는 사람들도 행복하겠지만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나도 무척 행복했다.

똑같은 장소에서 똑 같이 행복을 누리고 있는데 그들은 돈을 쓰면서 행복을 누리고 있고 나는 돈을 쓰지 않고도 행복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정수기도 내 돈으로 렌털을 했다면 지금보다 기분이 덜 좋았을 것이다. 아들이 렌털해 준 것이기에 물도 더 맛있게 느껴진다.

이렇게 나는 참으로 생산적이고  효율적인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 

슬기로운 조선소 생활을 하더니 소비생활도 슬기롭게 하고 있는 내가 귀엽다.


사랑하는 아들아. 다음에 또 엄마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살펴보고 해 주기를 바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