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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아이 이지샘 Jan 24. 2024

학교에서 배운 것 Vs. 현실 세계-1

대체 4년 간 내가 한 것은 무엇인가




나는 늘 괜한 욕심이 좀 있었다.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많았고 

해내고 싶은 마음도 많았다.

욕심은 열심과 한 글자 차이인데

그를 대하는 마음가짐과

그로 인해 구현화된 결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대학 시절, 나는 '욕심'과 '열심'을 잘

구분하지 못했다.

욕심부린 것을 열심히라고 착각하기도 했고,

나 외의 외부를 이해하려는 눈은 매우 편협했다.


나를 잘 들여다보지 못하고,

당연히 남을 바라보려고도 하지 않았던

부끄러운 시절의 이야기.

부끄러운 이야기를 남에게 보인다는 건 참 부끄러운 일이다.

이 글을 쓰면서 내 얼굴은 얼마나 빨개질지.


돌이켜보면 그 시절,

아니 현재까지도

이런 나를 '이지샘'이라 불러주며

나를 믿고, 함께 해주는 이들에게 감사함을 느낀다.






언어치료사는 4년의 대학과정 중 필수적으로 치료를 관찰하고, 실제로 실습하는 일련의 시간을 가진다.

자격증을 취득하고 진짜 언어치료사가 되기 전의 실질적인 준비 과정 중 하나다.

대학생 시절, 다른 이론적인 과목들도 중요하지만

이 실습수업만큼은 내 언어치료사 생활에 굉장히 중요할 것이라는 생각에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대상자를 선정받았다.

아직까지도 생각나는 내  언어치료 대상자.

안경 속 동그란 눈과 미소가 너무 예뻤던 여자아이.

평생 잊지 못할

우리 집 내 보물상자 안에 아직도 남아있는

 아이.


그 한 아이만을 위해 실습 짝이 된 동기와 함께 치료계획을 고민하고, 실제 실습을 진행하며

부렸던 많은 내 욕심들.


언어치료사로 대상자를 만나 보다 많은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아이의 언어능력뿐만 아니라 아이의 생활, 가정환경, 하루 일과, 아이의 성격,

아이의 삶에 문제가 되는 것들,

그리고 아이가 바라는 것

결국 그 아이의 삶 속으로 최대한 들어가려는 노력이 필요함을 그때는 잘 몰랐다.


여러분은 어땠는지?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학교와 사회에서의 간극이 천지차이라고들 한다.

하물며 난 아직 사회에 진입하지도 않았던 실습기간이었고,

언어치료사는 언어치료 관련 지식만

빠삭하면 되는 줄 알았다.

사람을 대하는 일임에,

보다 세상을 느린 시계로 혹은

다른 시계로 살아가는 이들을 대하는 일이라는 걸

아직은 체감하지 못했던 어리고 어렸던 시절.


철저하게 보고서와 계획 속에 담아 놓은

'정상적인 상태, 보다 이상적인 상태'.

그 정상이라는 말조차도

보다 큰 세상이 아닌, 표준화된 언어능력 몇 가지의 규준으로 정의하고

내가 움직일 생각은 하지 않은 채 아이를 어떻게 움직일 수 있을까만

골몰하고 골몰했던 그 시간들.


내 말이 다 맞는 줄 알았다.

열심히 책을 찾아보고, 배웠던 내용을 들춰보며

그 틀에 맞춰야만 '정상'이고,

'정상'으로 가는 삶이라 어쭙잖게 확신했다.


실습 짝이 된 동기들과도 엄청 싸웠다.


'내가 아이를 위해 하는 이 말들에 왜 딴지를 거는 거지?'


치료계획을 짜는데

나는 이렇게 이렇게 계획을 잡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상대방이 의견을 내면

내 머릿속 프레임과 맞느냐, 아니냐 이걸 먼저 고려했다.  


이제 막 실습을 통해 임상에 첫 발을 내디딘 내가

뭘 그리 안다고.

상대방의 의견을 왜 고려해 볼 생각을 안 했을까. 뭐 그리 잘났다고.

나는 마치 밤송이 속 같았다.

마음은 이미 커다란 밤나무이고 싶은데

그때 나는 아직 땅에 심어지지도 않았고

밤송이 속에서 웅크리고 있는

아직 싹트지도 못한 채 단단한 밤송이 속에 또 단단한 껍질까지 뒤덮여 있는

그런 작은 밤 알갱이.






이렇게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여다보기 전에 우선 '딴지'라고 생각했던 나.

타인의 '의견'을 '딴지'로 받아들이던 내가

타인과 소통할 생각이 없었던 내가

제대로 된 언어치료를 했을 리 만무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직은 예비 언어치료사로 진행했던 대학시절 실습기간은

나에게 언어치료 임상을 실습하는 기간만이 아닌

앞으로 내가 나아갈 세상을 실습하는 기간이기도 했다.


'열심'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지도 모른 채

나라는 편협한 세상의 눈으로 '욕심'을 부렸던 그 시절의 나.

그 시절의 내가 있었기에,

그러한 부끄러운 경험이 있었기에,

그리고 그것을 부끄러운 과거라는 걸 알아차렸기에

지금 '이지샘'이라고 불러주는 이들에게 고맙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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