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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아이 이지샘 Jan 24. 2024

15년 차인데 아직도 듣는 이야기, 언어치료사가 뭐야?

언어치료사, 아직은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 어쩌면 감사한 일

지금의 나는 N잡러다.

그중 가장 오래된 직업은 '언어치료사'.

요즘은 명칭이 바뀌어서 언어재활사라고 한다.

그런데 나는 '언어치료사'를 더 쓰는 편이다.


새로운 모임이 생겨 나갔을 때,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 때,

오랜만에 학교동창을 만났을 때,

엄마 지인 분들을 만나 어색하게 인사할 때,


"무슨 일을 하세요?"

"아, 저는 언어치료사예요."


열 번 중 아홉 번은 3초 정도 정적이 흘렀다.

그럼 익숙한 내 부가설명이 이어진다.


"여차저차해서 말을 잘 못하는 대상자들을 도와주는 일인데요, 저는 주로 말이 느린 아이들이나 자폐스펙트럼, 지적장애 아이들을 치료하고 있어요."


이십 대 때의 나는

나를 소개해야 할 때가 많았다.

타인에게 나를 설명하고

또 나 자신에게 나를 설명하며

나를 고민하고 나를 찾는 여정은

이십 대를 언어치료사라는 단어로 꽉 채워 내면서 보다 선명하게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상자의 보다 나은 의사소통능력을 만들어주기 위해

존재하는 내 직업은

이때부터 나를 세상과 소통하게 하는 커다란 물줄기가 되었다.


이 글을 클릭하신 여러분은 언어치료사를 들어보셨는지?


들어보셨거나 언어치료사라면

여러분은 언어치료사라는 직업이 여러분에 삶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을지가 참 궁금하다.

만약 오늘 이 글을 통해 언어치료사를

처음 알았는가?

이 글을 통해 언어치료사의 세상을 구경해 보면

꽤나 재미가 있을 거다.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한 우리가 사는 세상과는 다른 세상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언어치료사를 시작으로 현재 N잡러로서 내가 하는 여러 가지 직업들,

나는 이 직업들을 직업이 아닌 '책임'이라는 단어로 바꾸어서 부르곤 한다.


내가 책임감으로 대하는 여러 세상들과

의사소통능력을 치료해 주는 언어치료사가 세상과 소통하는 이야기.







언어치료사는

태어나서 커가면서 언어능력에

어떤 어려움이 있거나

혹은 잘 살아가다가 어떤 문제로 

언어능력이 손상된 사람들에게

그 능력을 정상적인 수준으로, 혹은

최대한 정상에 가깝게 만드는 일을 하는 직업이다.

정상이라는 표준정규분포표에 의거하면 그러하고.

궁극적으로는 보다 나은 '의사소통과 삶'을 위한 여정을 돕는 것이 언어치료사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직업을 갖고 나서 나를 소개할 일이 생겼을 때

처음에는 그냥 설명하기 바빴다.

다들 이해를 잘 못했거든.

십 년 전만 해도 언어치료사는 굉장히 생소한 직업이었다. 지금도 어느 정도는 그러하다.

물론 내가 하루를 보내는 직장에는

언어치료사가 가득했지만

직장을 벗어나 바깥세상에서 사는 시간 동안

나는 한 번도 나와 같은 직업을

우연히 만나본 적이 없다.

예를 들어 동호회나 새로운 모임을 갔을 때

나와 같은 직업을 만난 적이 없다는 거지.

올해 10살이 된 우리 아들 덕분에 지금까지

많은 엄마들과도 인연을 맺게 되었는데

엄마들 직업들이 정말 각양각색이다. 

하지만 거기서도 마찬가지.

언어치료사를 만난 적은 한 번도 없다.

'내 직업이 희귀한가 보구나'

초보 언어치료사였을 때는 그냥 단순히

그렇게만 생각했다.


말 못 하는 아이를 고쳐준다니, 정말 대단한 일을 하시네요!

그러다 어느 날부터인가

내 직업을 누군가에게 소개하고 나면

내가 굉장히 대단한 사람이 된 듯한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아니, 굉장히 대단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언어치료사라는 말을 듣고 열 명 중 아홉 명은 저렇게 대답을 해주었기에.


직업을 설명할 때마다, 또 내가

내 일에 대해 한 번씩 생각할 때마다

'언어치료사는 이렇게 대단한 직업인데

나라는 사람을 진짜 언어치료사라고

말할 자격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언젠가부터 하기 시작했다.

자격증은 취득했으니

언어치료사 자격이 있는 건 맞는데

한 번씩 내가 '진짜 언어치료사' 자격이 있는가 하는 생각이 스멀거렸다.


그렇다는 건 '자격'이라는 단어를 나 자신이 무언가를 더 추가해서 정의했다는 거다.

생각을 좀 해 볼 필요가 있었다.

내가 내 인생에 대해 본격적으로

생각해 보게 된 어느 날이었다.






어쩌다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언어치료사가 되어 사회인으로 훌쩍 던져져

긴장감과 두려움에 오들오들 떨던 시절엔 정말이지 정신이 없었다.

나름 대학생 때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해 보았었는데

내가 선택한 직업은 나를 전혀 생경한 세상으로 밀어 넣었다.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아동의 어머님들께

전문적으로, 아니 전문가처럼

상담을 진행하고 싶어서

갖은 노력을 다 해보았다.

그 시절의 어머님들은 새파란 아가씨인 나와 얼마나 '소통'이 되었다고 생각하셨을까.

아이들과의 언어치료시간에는 한 시간에도 얼마나 많은 파도들이 밀려 치는지.

'이상적인' 상황은 연출되지 않았다.

초보 언어치료사에게 계획서와 실제 임상의 간극은 우리 집에서 달나라까지의 거리보다 멀었다.

직업은 달라도 아마 처음 사회인이 된

이십 대 초반 직장인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그 긴장과 두려움.


그러다 한 해 두 해가 지나고

이십 대 중반이 지나면서 어쭙잖게 사회인의 맵시가 나기 시작했다.  

하루하루를 조금은 익숙해진 치료업무를 하고,

퇴근을 하고 나면 놀기도 하고.

또 무언가 열심히 해보고픈 마음도 있어서

길가에 널린 강아지풀 줄기마냥

여기저기 흔들리는 방향성을 갖고

자격증 공부도 해보

이런저런 자기 계발에 기웃거렸다.    


그때의 나는 아직 가정도, 아이도 없었고

내가 벗어놓은 지렁이 같은 바지를

매번 엄마가 잔소리를 하며 치워주시던

그런 시기였다.


그러다

그렇게 '매일 반복된 하루'를 살아오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 이유는

아마도 내가 무의식 중에 이 언어치료사라는

이 직업을

'직업'이라는 단어가 아닌

'책임'이라는 단어로 부르기로 결정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결정에는 빼놓을 수 없는

내가 매일 만나는 '자폐스펙트럼'이라는 단어가 있었다.






처음 몇 년 동안 언어치료사로 일을 하면서 사실과는 별개로 참 일이 힘들다고 느꼈다.

이 세상에 나 혼자 힘든 일은 다 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지금은 남편이 된 그 시절 남자친구와

퇴근을 하고 만나면

'내가 어떤 일을 하는지 너는 상상도 못 할 거다'하면서 공감을 강요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 남자는 이러했던 그 시절의 나와 어떻게 결혼할 생각을 했는지.

직장 세계에서의 나는 매일매일 일이 버겁다고 느꼈다.


그런데 참 희한하게도

그렇게 매일이 힘들다고 내뱉으면서도 단 한 번도 언어치료사라는 옷을 벗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힘들다. 힘들어 죽겠다'이러는데 정작 그만둘 생각은 안 하는 거다. 왜 그랬을까?

언어치료사 외에 다른 옷을 입은 나는

상상이 되질 않았다.

너무 당연하게 나는

평생 언어치료사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 생각이 수면 위로 떠오를 때쯤

'나는 평생 언어치료사로 살아야 하는데,

 옷을 입을 자격이 정말 충분한가'

'평생 입을 옷이라면 그건 옷이라기보단

나 자체에 가깝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한 생각들이 모여

지금의 '이지아이 이지샘'이 여기에 있다.


누구나 자신의 인생, 자신의 삶, 자기 자신이 매우 소중할 것이다.

나 또한 그러했다.


이십 대 중반이 넘어가던 어느 날

소통이 어려운 무발화 자폐스펙트럼 아이에게

/바/ 소리를 지도하고 있던 중이었다.

지금 한 번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붙였다 떼어 /바/소리를 내어보라.

이 글을 읽는 여러분 중 이게 어렵다고 느낀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조금 더 뒤에서 여러분들과 이야기를 나누겠지만

이 간단한 입술의 움직임을 따라 하는 게 어려운 아이들이 있다.

우리가 밥을 먹을 때 몇 번이나 붙였다 떼는

그 입술이

어떤 아이들에게는 설악산의 흔들바위 마냥

그리 무겁고 떼어지지가 않는 것이다.


아이를 만난 지 한참이 되었지만 여전히 아이는 제자리였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한 번씩

그런 경험을 해본 적이 있는지?

매일 업무로 비슷하게 흘러가는 시간인데

갑자기 엄청 집중하고 싶어지는 하루.

직장생활에서 그런 날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렇다면 하루까지는 아니어도 갑자기 엄청 집중이 되고 그 순간이 엄청 중요하게 느껴지는 찰나. 

아이의 입을 쳐다보고, 눈을 쳐다보며

할 수 있다는 확신의 눈빛으로 아이와 몰입하던 그런 순간이었다.

해 낼 거라고, 지금 이 순간의 느낌을 잘 기억하라고

온몸으로 아이에게 에너지를 전달하던 그 순간.

그 찰나.


그 순간 그 세상에는 나와 아이만이 있었다.


치료가 끝나고 나서

아이와 내가 함께 몰입 한 그 짧은 찰나에

이걸 뭐라고 써야 할까.

나는 우주를 느꼈다.

내 인생의 소중함과 내 인생의 희열을 느꼈고 행복했다.


그 아이가 몇 년 동안 못하던 /바/소리를 내었냐고?

아니, 못했다.

그런데 그 순간 아이와 나의 30센티 정도의

짧은 거리 안에


우주가 있었고, 내가 있었다.

이십 대 중반이 넘어가고 서른은 아직 안된 어느 날

나는 언어치료사로서 나의 격을 갖추는 여정을 다짐했다.

아이들에게 소통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만이 아니라

소통하는 방법을 나 또한 배워가야 한다는 걸 알아차렸다.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은 '언어치료사'라는 단어를 들어 본 적이 있는가?

만약 없다면 정말 감사한 일이다.

왜냐면 지금껏 당신의 주변에 언어발달이 지연되었거나 언어 관련 장애를 가진 아이가

없었다는 뜻일 테니까.

그래서 아직 언어치료사를 처음 듣는다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감사함을 느낀다.


이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언어발달능력에

문제가 없다면

이 세상이 긍정적인 소통으로 가득 차 있다면

언어치료사라는 직업은 필요 없을지 모른다.

언어치료사가 필요 없는 세상이 지금보다 분명 더 나은 세상일 테지만

만약 그럴 수가 없는 세상이라면

'이성과 지혜'를 쫓는 언어치료사가 많은 세상이기를 소망한다.

그래서 나부터 오늘을 이성과 지혜로 보냈는지를 점검한다.



오늘 나는 매일을 자폐스펙트럼 아이들과 함께하는 15년 차 언어치료사다.


이 시간 동안의 이지아이 이지샘이 된 이야기.


내가 '이성과 지혜'를 핵심가치로 갖게 된 이야기.


내가 소통하게 된 이야기.



이 이야기들을 한 번 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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