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실남 Jan 07. 2021

모든 일은 다 때가 있는 법이다.

항상 내 글을 보면, 왕따에서 전교 부회장이 된 아이, 학교 문제아에서 모범생이 된 아이, 삶에 의욕이 없다가 현재를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살게 된 아이 등 나의 도움을 받아 변화하는 아이들이 나온다.



물론 모두 사실이다. 난 우리 반 아이들의 성장을 위해 그 누구보다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삶에 흥미를 잃고 수동적으로 살아가던 아이들이 나로 인해 성장의 재미를 알고 긍정적으로 바뀌어가는 것을 보면 보람과 뿌듯함으로 가슴이 벅차오른다. 이보다 더 기분 좋은 일이 있을까. 그 기분 좋음을 느끼기 위해 나는 더 많은 시간을 투입해 나의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찾아 돕는다. 선순환의 반복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선생님이 관심을 주면 줄수록 그 이상으로 쑥쑥 성장하는 아이가 있는 반면에 선생님이 아무리 신경을 써도 잘 변하지 않는 아이도 있다.


여러분이 선생님이라고 가정해보자. '선생님의 도움이 있으면, 아이는 언제나 변할 수 있다.'라는 마인드셋을 가지고,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서 아이를 가르쳤는데, 그 아이가 아무런 변화가 없거나 오히려 악화되는 모습을 보인다면 여러분들의 기분은 어떨까?


나의 경우, 나의 일부분이 떨어져 나가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아이가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그것이 곧 내 사명이자 정체성의 일부인데,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아이가 변하지 않을 때면 마치 나 자신이 부정당한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 좋은 얘기와 코칭을 해도 이 아이에게 내 말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아이의 부모님도 통화를 할 때만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척하셨을 뿐, 전혀 아이를 위해 변하는 모습을 보이시지 않으셨다. 소 귀에 경 읽기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드는 생각.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정체성의 흔들림은 곧 자기 파괴로 발현되었다.


'내가 능력이 없는 걸까?'

'아이와 아이의 부모님과 충분히 래포(친밀감)가 형성되지 않은 건가? 혹시 나를 싫어하는 건 아닐까?'

'난 선생님을 할 자격이 있는 걸까?'


또한 반대편에서는 흔들리는 내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자기 방어기제 또한 발현되었다.


'그래. 이건 부모님의 문제도 크다고 봐.'

'부모님도 여태까지 못 바꾼 아이를 내가 어떻게 바꾸겠어?'


하지만 이런 생각들은 전혀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난 그동안 많이 봐왔다. 교직에 열정을 가지고 임하다가 스스로 부정적 생각에 빠져, 무기력하게 학교 생활을 하는 선생님들을.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을 느끼고, 교직을 떠나는 선생님들도 봤다.



발상의 전환을 해보았다. 나에게 질문을 던져 보았다.


과연 그동안 내가 한 생각들이 사실일까?


사실이 아니었다. 자기 파괴와 자기 방어를 위한 내 생각일 뿐이었다. 생각은 생각일 뿐이다. 생각은 사실이 아니다. 생각은 나 자신이 아니다.


더 냉정하게 생각을 해보자. 왜 어떤 아이들은 바뀌는데, 어떤 아이들은 전혀 바뀌지 않을까? 내 문제도 아니고 그 아이들의 문제도, 부모님들의 문제도 아니라면? 아! 문득 떠오르는 통찰.


모든 일은 다 때가 있는 법이다.


사람마다 때가 다 있다. 우리 반에 긍정적으로 변하는 아이는 내가 노력을 한 이유도 있지만, 이미 이들이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 것도 크다. 반면 잘 변하지 않는 아이는 내가 실력이 부족한 이유도 물론 있겠지만, 아직 변화할 때가 아닐 수도 있다.


'아직 변화할 준비가 되지 않은 아이를 내가 너무 몰아세운 건 아닐까?'

'이 아이도 시행착오를 겪으며 성장하고 있는 중인데, 내가 중간에 끼어들어 성장을 가로막고 있는 건 아닐까?'

'스스로 답을 찾는 과정도 필요한데, 너무 내가 정답을 미리 알려주려고 하는 건 아닐까?'

'지식의 저주에 빠진 건 아닐까?'



그 뒤로 나는 내려놓기로 했다. 아이를 단기간에 변화시키려 하는 것 또한 내 욕심임을 깨달았다. 아직 때가 안 된 아이들은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기다려주기로 했다. 바뀔 준비가 되면 언제든지 도움을 줄 수 있도록,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기로 했다.


그 이후로 몇 달이 지났다. 신기하게도 한 때 내가 기를 쓰고 변화시키려고 노력했도 변하지 않던 아이가 내 욕심을 내려놓으니, 조금씩 변화하는 것이 보였다. 숙제도 제때 해오고, 지각도 안 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였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혼란스러웠던 내 마음이 평온해졌다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이구나.' 하며.  


혹시 여러분들 중에서도 아직 때가 되지 않은 일로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다면 한 번씩 되뇌어보자.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는 법이다.



#아이 #내려놓기 #변화



 

매거진의 이전글 선생님을 울린 학생의 변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