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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남 Jan 02. 2021

선생님을 울린 학생의 변화

곧 있으면 졸업식이다. 각 반에서 남학생 1명, 여학생 1명, 총 2명의 모범학생을 뽑아 졸업식 때 상을 주자는 교장 선생님의 제의(?)로 우리 반에서는 학생 투표로 모범학생을 뽑기로 했다.


먼저 남학생 대표부터 뽑기로 했다. 추천을 받은 결과 총 5명의 남학생이 후보로 나왔다.


"자, 본인이 생각하기에 1년 동안 정말 우리 반에서 학업, 봉사, 인성, 수업 참여 등을 다 고려했을 때, 모범학생이라고 생각되는 친구를 뽑아주세요."


결과가 나왔다. 27명 중에 18표. 무려 66%의 득표율! 압도적인 표차로 재한(가명)이가 모범학생으로 뽑혔다.


"그래, 재한이면 인정!"


"맞아. 재한이는 수업 시간에도 적극적이고, 봉사도 많이 하고 모범학생이지."


단 일말의 이의 없이 반 아이들 모두가 재한이를 인정했다.


그럼 재한이는 원래부터 모범학생이었을까?


전혀 아니었다.


2년 전, 내가 재한이의 담임이었던 시절, 그때의 재한이는 반에서 매우 소극적인 학생이었다. 평소에 책을 좋아해 박학다식하나, 그 유식함을 잘 활용하지 못했다. 친구들 앞에 나서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고, 발표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또한 만사가 귀찮은 학생이었다. 숙제를 내줘도 제대로 해 오는 경우가 드물었고, 항상 선생님의 말에 불평불만이 가득했다. 심지어는 일기 몇 줄 적는 것이 힘들어서, 내 앞에서 울기도 했다.


그 당시 난 재한이가 충분히 잠재력이 있는 학생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 또한 그때 왜 살아야 되는지를 고민하며 슬럼프를 겪고 있어, 재한이는 물론 반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 당시의 반 아이들에게 신경을 써주지 못했다는 아쉬움은 죄책감으로 남아, 1년 동안 나를 괴롭혔다.


4학년 담임 때, 반을 엉망으로 만들었다는 죄책감을 씻기 위해, 이듬해 4학년 때의 아이들과 함께 5학년으로 올라갔다.(1년 뒤에도 6학년으로 따라 올라감) 설사 다른 반이 되더라도, 옆에서 지켜보며 조금이라도 좋은 영향을 주고 싶었다.


그중 재한이는 내 관심 1호 학생이었다. 매번 재한이의 담임 선생님에게 재한이의 안부를 물었다.


"재한이요? 음... 걔는 똑똑하긴 한데 너무 소극적이에요. 얼마 전에는 발표를 시켰더니, 안 할 거라고 계속 떼를 쓰는 거예요. 자신감 있게 해 보라고 했더니, 갑자기 우는 거예요. 무슨 애도 아니고... 제가 봤을 때, 걔는 좀 별로예요."


그래도 4학년 때는 발표를 하기 싫어, 울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증상이 더 심각해져 있었다. 가끔씩 복도에서 마주친 재한이의 모습을 보면, 눈동자에 초점이 없었다.


"재한아, 안녕. 오랜만이네."


"네.... (한숨)"


"왜 한숨을 쉬니? 요새 학교는 어때?"


"진짜 싫어요. 사는 게 재미가 없어요."


재한이가 나에게 이렇게 말을 할 때마다, 내 죄책감은 더욱더 커져만 갔다.

 


작년(2020년) 재한이와 같은 반이 되었다. 너무 기뻤다. 이제라도 같은 반이 되어, 재한이를 케어할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했다.


예상대로 재한이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모든 것에 소극적이고 부정적이었다. 살아갈 의지를 잃어버린 듯했다. 뭔가 죽지 못해 살아가는, 살아있으니깐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느낌이랄까? 학기초 재한이를 따로 불렀다.


"재한아, 무슨 힘든 일 있어? 왜 항상 이렇게 소극적인 거니?"


"음... 솔직히 왜 제가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사는 거에 별 재미를 못 느끼겠어요."


"사는 게 재미가 없다니... 세상에 얼마나 재미있는 게 많은데! 좋은 친구들을 사귀는 재미도 있고, 공부를 하며 성장하는 재미도 있고, 운동을 하면서 느끼는 재미도 있고, 우리의 삶 자체가 재미인걸!"


"선생님의 말에 공감이 잘 안 돼요. 학교, 학원도 부모님이 억지로 시켜서 가는 거고, 친구들이랑 노는 것도 혼자 가만있는 것보다 재미없고, 공부도 너무 귀찮고 싫어요. 운동은 더더욱 싫고요.(몸무게가 80kg가 넘음)"


"음... 재한아. 딱 2달만 선생님 믿고 따라오면 안 되겠니? 2달 정도면 선생님이 아까 말한 성장의 즐거움, 인생을 사는 즐거움 충분히 느끼게 해 줄 수 있을 거 같은데... 네가 아직 제대로 안 겪어봐서 그런 거지, 정말 인생은 재미있어. 만약 2달 동안 네가 열심히 선생님의 말을 따랐는데도 아무 변화가 없다면, 그때는 선생님이 네가 수업시간에 뭘 하든지 간에 간섭 안 할게."


"네..."


그때부터 재한이는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평소에 하지 않던 발표를 용기를 내어, 친구들 앞에서 손을 덜덜 떨면서 발표를 했고,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데일리 리포트를 썼다.


특히 줌터디(우리 반 아이들과 매일 저녁에 하는 자습 스터디)는 1~2번을 제외하고는 하루도 빠짐없이 참여했다.


사실 나와 한 약속을 이행하면서 중간에 불평불만도 많이 했다.


"선생님, 솔직히 말해서 데일리 리포트 쓴다고 바뀌는 거 없는 거 같아요."


"선생님, 줌터디 의무 아니라면서 왜 안 들어오면 안 되게끔 말씀하세요?"


하지만 투덜투덜 대면서도 재한이는 끝까지 나와의 약속을 지켰다.


약속한 2달이 지나고 나서도 재한이의 꾸준함은 계속되었다. 열심히 수업 시간에 참여를 했고, 데일리 리포트를 매일 썼고, 줌터디에 매일 들어왔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반에서 '모범생'하면 떠오르는 학생은 재한이가 되어 있었다. 재한이는 학기초의 소극적인 이미지를 탈피했다. 이제 반 아이들의 눈에 비친 재한이는 발표도 잘하고, 박학다식하고, 리더십도 있는 모범학생이었다.



모범학생으로 뽑힌 재한이를 축하하면서, 그동안에 재한이가 한 노력들과 그 노력들로 인한 변화에 대해서 아이들에게 말했다. 말하면서 갑자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그 눈물의 의미는 긍정적으로 변한 학생을 보고 선생님으로서 느끼는 보람과 뿌듯함이자 기쁨의 표현이었다.


"엥? 갑자기 선생님 왜 우는 거야?"


아이들은 내가 왜 우는 줄 몰랐다. 내가 설명을 해도 그다지 공감이 되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그 와중에 같이 눈물을 글썽이는 한 명의 학생이 있었다. 재한이었다. 순간 재한이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재한아."


"네?"


"넌 이제 살만 좀 빼면 완벽하겠다."


"와... 선생님 아까 칭찬하시자마자 바로 뼈 때리시네요... ㅎㅎ"


"너도 이제 알잖아. 꾸준히 하면서, 딱 임계점만 돌파하면 금방 변화할 수 있다는 거."


"그건 그렇죠. ㅎㅎ"


"그런 의미로 졸업할 때까지 살 한 번 빼보자. 어때?"


"넵!"

 

앞으로 10년 뒤 재한이가 어떤 어른으로 성장할지 너무 기대가 된다. 앞으로 나올 수많은 재한이들을 위해, 나 또한 꾸준히 성장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모범학생 #학생의변화 #교사로서느끼는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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