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10여 년을 돌아보게 만든 작품

시엘 플로이어, <SOLO>, 마이크 거치대와 머리빗, 2006

by 서하루

여성이, 여성만 발언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던 듯 마이크에 헤어 롤빗을 꽂아 두었다. 나도 자주 사용하는 이 롤빗은 대부분 여성이 사용하는 미용 도구다. 꾸며야 하는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한 운동을 ‘탈 코르셋 운동’이라 부르는데, 우리는 여기서 더 나아가 꾸밀 자유 또한 여성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함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니깐 문제는 선택의 주체성이다.


여중과 여고를 거치고 공학인 대학교에 입학한 후 나는 내가 가진 외향에 대한 평가를 많이 받아왔다. 그중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여성스럽다’이다. 그런데 20대 초반의 나는 이 말이 그렇게 듣기 싫었다. 우선 그 단어에서 약간 수줍고 수동적인 이미지가 느껴졌기 때문이고, 두 번째로는 어떤 특징을 ‘여성적’, ‘남성적’과 같이 성별로 구분하는 태도를 거부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이미지를 거부하고 추구미(그 당시에는 이 단어가 없었지만)를 만들기로 했다. 당시 추구미는 ‘보이시’하거나, ‘세 보이는’ 여자였고, 이를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하지만 늘 나에게 안 맞는 옷을 걸친 꼴로 다녀야 했고, 결국 내/외적으로 스스로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로 지금이 진정한 나라고 주장하며 살았다.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나는 나의 기호와 특질을 인정하게 됐다. 그 순간 살면서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이 편안해졌던 기억이 또렷하다. 지금도 여전히 어떤 특징을 성별로 구분 짓는 태도는 싫어하지만 이제 나는 치마 입기와 꽃을 좋아하는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고, 나아가 그런 특징을 지닌 나의 내/외면을 칭찬해 주기도 한다. 여기까지 오는데 참 오래도 걸렸다.


누군가는 마이크 거치대와 빗 하나가 무슨 예술이야?라고 할 수도 있을 테다. 하지만 나는 이 작품을 5분여 동안 바라보고 또 15분간 글을 쓰면서 내가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기까지 걸린 10년이 넘는 시간을 훑었다. 이런 게 예술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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