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A3 용지가 전지로 보이는 마법

by 이미령

실기는 무조건 학원에 다녀야 한다는데 학원 없이 그 어려운 일을 해 봅시다.

설계도 2장의 기본은 깨끗하고 정확하게 그리는 것이다.

그래서 연장은 매우 중요하다.

눈치채셨나요? 실력 없음도 연장 탓을 할 수 있게 깔아놓은 복선을.

저의 지론은 “연장이 훌륭하면 백그라운드는 홈그라운드다.”

갑자기 분위기 초보 서예인, 서예반 어르신 중 공대 나오신 분이 창고에 있던 제도판과 삼각자를, 다른 분은 제도용 펜을, 합격하기 전에는 서예반에 등장하면 안 될 분위기로 모두의 파이팅을 받았다.

이제 내가 그릴 설계도는 서예반 어르신들의 작품이다.

연장의 grade는 가격인데 “제도”가 붙으면 가격은 이미 upgrade 되어있다.

증정받은 연장 외 나머지 준비물을 모두 제도용으로 구매했다.

책 순서대로 설계 가즈아~.

제도판 위에 정확하게 수평으로 용지를 따~악 올린다.

용지를 마스킹 테이프로 붙인다. 꼼꼼하게 잘 붙인다.

용지를 한 번 붙이면 절대 움직이면 안 된다. 선이 이중으로 된다.

마스킹 테이프 밀착이 부실하면 평행자를 움직일 때마다 테이프가 말려버린다.

그렇게 되면 용지가 움직이고...

용지는 생각대로 정확한 각도로 붙지 않고 삐뚤게 붙는다.

그걸 바로 하겠다고 테이프를 뗐다 붙였다 하다가는 종이가 찢어진다.


겨우 한 장을 붙였다면 다음은 테두리 선 그리기.

사각형 모서리의 만나는 점이 자꾸 미세하게 차이가 난다. 자로 정확히 쟀는데도 그렇다.

이쯤 되면 한겨울에도 손에 땀이 난다. 땀이 나면 선이 번진다.

깨끗하게 한다고 지우개로 지우고 손으로 쓱 밀면 용지 사방팔방이 더 지저분해진다.

타임~~~
과연 이 모든 상황이 진짜 발생할까?
충분히 발생 가능하다.
내가 이 순서대로 다~ 해 봐서 잘 안다.

종이 한 장 붙여놓고 보니 A3 용지가 전지로 보인다.

서예는 대체로 전지에 글을 쓴다. 처음에는 전지가 정말 커 보였는데 쓰다 보니 지금은 덤덤해 보인다. 야구공이 농구공만 하게 보이면 그날 타자의 배트는 얼추 요술방망이가 된다고 한다.

A3 용지가 A4용지로 보이는 날이여 오소서.
빛의 속도로 어서 빨리 오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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