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정의할 수 있는가.
너무도 아끼는 감정?
관심을 가지는 과정?
챙겨주고 싶은 마음?
나는 사랑은 결과론적인 것이라 여긴다.
상실로부터 느낄 수 있는 감정.
어쩌면 사라짐으로 완성되는
미련의 산물.
사랑.
내게는 꽤나 폭력적인 단어다.
정의 비슷한 것도 존재하지 않는,
하지만 모두가 느낄 수는 있는.
미스테리한 개념.
불확실하나, 확실한 감정.
대부분 의견이 분분하여도 대세는 정해진다.
이토록 모호한 것이 세상에 있을까.
사랑하며 살아야 하는가?
사랑은 즐거운 것인가?
사랑으로 아플 수 있는가?
...
끝없이 질문이 이어진다.
사실, 어떤 표현에 붙여도 어울린다.
사랑은 고구마인가!
사랑은 사이다인가!
사랑은 밥인가!
단순한 문장이지만
느끼는 바는 각자 다르다.
하지만, 무언가를 느낀다.
완벽하게 모호하고, 알 수 없지만 명확하다.
관점은 크게 3가지로 나뉜다.
1인칭, 2인칭, 3인칭.
나, 너, 그들.
편히 표현하겠다.
그들의 사랑, 알 바 아니다.
나의 사랑, 모르겠다.
너를 향한 사랑, 어?
멀리 있는 '그들'은 인식하기도 어렵다.
'나'는 끝내 알 수 없는 존재다.
'너'는 내가 관심을 가지는 유일한 대상이다.
이제, 나는 진심인가?
스스로 따져보기 시작한다.
사랑한다. vs 사랑했다.
어떤 표현이 더 와닿는가.
혹은, 더 깊게 느꼈는가.
현재 알 수 없는 마음으로 표현하는 것보다
확실히 느껴지는 마음으로 표현하는 것이 더 강렬하다.
사랑은 그렇다.
현재에 느끼기 어렵고,
상실을 통해 느껴진다.
누군가를 떠올리며 생각해보자.
그 사람이 더이상 없다면, 나는 어떤 기분일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벅차오른다면 그것이 사랑이라 말하고 싶다.
후에 느낄 수 밖에 없는 사랑을
현재로 당겨오고 싶다.
상실을 떠올리며, 지금 표현하고
그 순간에는 그래도 전달되지 않았을까, 생각하고 싶다.
결과론적이라 말했지만,
과정이 중요함을 강조하고 싶다.
매 순간 최선일 수 없듯,
모든 판단이 정답은 아니다.
하지만 불변하는 것은 있다.
나는 지금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적어도 내가 느끼는, 판단하는 시간 만큼은
최선을 다해 표현할 수 있기를.
사랑은 결과이자, 과정이다.
아쉬움 없는 사랑?
글쎄, 나는 모르겠다.
쏟아내지 않았다면 아쉬울 것이고,
전부를 내주었다면 더 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다시 질문하겠다.
사랑이 무엇인지 아는가,
사랑을 느껴보았는가.
미어지는 가슴을 부여잡고,
간절한 손길을 내밀어 보았는가.
아픔이, 상실이 남아 있을수록
그대를 사랑했다는 방증이다.
사랑의 경험은 결국 내게 돌아온다.
돌고 돌아 나를 사랑할 수 있는 기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