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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김정 Sep 14. 2024

엘리베이터를 통해 경영학을 배울지도 모른다


기묘하다면 기묘한 체험담이다.

경영학도 조금 배울 수 있을지도 모르고.     




예전에 지인 결혼식에 갔을 때 일이다.

주말이었지만, 지방에 볼 일이 있어서 차를 가져갔다.

차도며, 이면도로며, 주차장은 만원이었다.

세상의 모든 차가 거리로 뛰쳐나온 것 같았다.

일찍 나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지하2층 주차장에 차를 겨우 세우고, 엘리베이터 있는 곳을 눈으로 찾았다.

식장은 10층이다. 계단으로는 갈 수 없다.

아니 아예 안되는 것은 아니다. 운동이나 다이어트 때문에 걸어갈 수는 있다.

하지만 남의 결혼식장에까지 와서 굳이 하는 기분이다.    

 

하부층은 상가와 오피스이고, 7층과 8층이 하객연회장, 9층과 10층이 예식장인 구조다.

“결혼식장이 왜 이렇게 높아?” 하고 누군가에게 합리적인 의문을 던졌다.

“차별화.”

“차별화?”

“뷰맛집 웨딩홀이라나. 식이 끝나고 암막 커튼을 젖히면 멀리 시티뷰가 괜찮다고 하더라고. 그걸 웨딩사진에 담기도 하고.”

끄덕끄덕. 이해했다.

어딜 가나 차별화니까. 다르지 않으면 경쟁에서 밀린다.     


어쨌든 예식 시작이 20분 남았다. 시간은 넉넉하다.

막 도착한 것 같은 엘리베이터가 눈에 들어왔다. 문이 한껏 열려있었다. 엘리베이터는 한 대고.

대각선 방향에 또다른 엘리베이터가 있지만 그쪽으로 갈 이유가 없다.

그러니.     


‘저건 잡아야지.’     


시간은 충분하지만 나는 반사적으로 후다닥 뛰어갔다.

이건 거의 본능이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것은 시간 낭비라는 알고리즘이 내 뇌에 뿌리박혀 있다.    

신호등 기다리는 것도, 지하철  기다리는 것도.

그리고 떠나간 여자... 여기까지만.


문이 닫히고 있었다.

‘안되지.’

문과 문 사이가 30센티미터에서 40센티미터 남았다.

서둘렀다.     


“잠시만요!”

소리쳐보았다.

효과를 볼 때가 있다.

안에 누가 있다면 말이다.

그런데 소용이 없다. 꿈쩍도 하지 않고 계속해서 닫혔다.

    

‘에라.’

장딴지와 양 허벅지에 강력한 힘을 주고, 전속력으로 달려가 도움닫기와 슬라이딩, 그리고 펜싱의 찌르기를 블렌딩 믹싱하여 상행 버튼을 강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눌렀다.

세탁소에서 찾아온 아끼는 셔츠에, 정장을 폼나게 차려 입고, 침을 탁탁 튀겨가며 광이 나게 닦은 소가죽 신사화를 신고, 머리 손질도 매끈하게 했는데,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의 포즈였다.   

  

버튼을 누르면서 옆눈으로 문 상태를 고속으로 체크했다.

문과 문 사이가 아직 2.5센티미터 남았다. 여자 루즈를 던지면 빠져나갈 폭이다.   44사이즈 여자도 배에 힘주면 옆으로 통과할 수 있다.

  

“덜커덩. 기이잉.”

톱니와 기어가 역행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역시나 잡았다.

엘리베이터의 열린 문 안으로 몸을 쏙 집어넣었다.

운이 좋다. 뭔가 술술 풀리는 날인가 싶다.     


그런데.

안에 사람이 있었다.     


50대의 아주머니다.

무미건조하고, 경제학원론 영어원서처럼 서있었다.

작은 키에, 사무적인 퍼머 머리를 한지는 대략 한달전, 마스크를 쓰고 있었고. 기분 탓이지만, 화가 나있는 듯 하기도 했다.

왼손에는 인조 가죽의 토트백을 들고 있었다.     


‘내 소리를 들었을텐데, 왜 엘리베이터를 열어주지 않았지?’

하는 의문이 당연히 생겼다.

그녀는 나를 쳐다도 보지 않았다.

물어볼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만두기로 했다.

내 소릴 못들었겠지.

층 버튼은 6층에 눌려져있었다.

나는 10층을 눌렀다.     


엘리베이터는 다음 층으로 올라가 지하1층 주차장에 섰다. 문이 좌악 열렸다.

사람들이 있다.

지하1층 주차장은 만차였을텐데, 어렵게 자리를 찾은 모양이다.

초등학생 아이를 앞세운 전문직 느낌의 부부가 방긋 서있었다.

“자, 조심해서 타자.”

하고 아이 손을 잡고 아버지가 천천히 올라타려 했다.   

  

그런데 이상한 현상이 발생했다.

엘리베이터가 열리자마자 바로 닫히기 시작했다.

여유롭게 움직였던 그들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라 뒤로 흠칫 물러났다.

“문이 왜 이렇게 빨리 닫혀?”

남자가 그때서야 아이 손을 풀고 상행 버튼을 눌러보려했지만, 동작이 굼떴는지 문은 이미 닫힌 후였다.

“이거 고장 아니야.” 하는 소리가 문 너머에서 희미하게 들려왔다.     


문이 정말 왜 이럴까.

나도 궁금했다.

고장이라면, 내가 내릴 때 저런 식으로 갑자기 닫혀 곤란을 겪지 않을까 싶었다.

문 틈에 끼여 내 몸이 양쪽으로 찢어지고, 피가 사방으로 튀고, 내장이 배에서 쏟아지고.

할지도 모른다.

끔찍하다.     


고장이라고 신고해야 하나 싶어 비상 버튼이 있는 곳을 찾았다.

그러나 아직 한번 밖에 일어나지 않았다.

호들갑 떨 일은 아니란 거다. 다음 층에서 확인하고 신고해도 늦지 않을 것 같기는 했다.

그렇지만 비상 버튼 위치는 미리 봐두자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놀라운 광경이 내 눈에 들어왔다.

아주머니가 왼손엔 인조가죽 토트백을 들고, 아무것도 들지 않은 오른손은 닫힘 버튼을 끊임없이 눌러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타다다다다.”     


그것도 필사적으로.

초등시절 추억의 오락기 제비우스에서 적들을 섬멸하는 대공무기 연사 버튼을 연상시킨다.

아니면 저 닫힘 버튼이 지옥에라도 떨어지라는 듯이 눌러대고 있다.

얼굴 미간에 온신경을 집중한 채.     


그래서 문이 닫힌 것이었다.     


입이 벌어졌다.

내가 지금 어떤 장면을 본 것인지 이해하는데 몇초의 시간이 흘렀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다.     


대체 저건 무엇일까.

아주머니는 버튼에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일까.

왜 저 버튼을 렇게 눌러대야만 하는 것일까.    

 

상황은 이해했지만, 상식적 의문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는 제 할 일을 하듯이 위쪽으로 움직였다.

1층에 도착했다.

로비도 있고 편의점도 있다.

버스나 지하철, 택시를 이용해서 온 하객들이 탈 차례다.

나는 아주머니부터 먼저 주시해보기로 했다.

민망하지 않게 고개를 천천히 그녀 쪽으로 돌렸다.     


그러자.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있었고.

“이 문은 절대 열려서는 안돼!” 하고 필사적으로 막으려는 신화속 인물처럼 아주머니는 닫힘 버튼을 사정없이 누르기 시작했다.

“타다다다다다.”     


“어, 어. 이 문 왜 이래?”

또다시 방심했던 사람들은 엘리베이터를 놓치고 말았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그녀와 나 둘만 남았, 아니 있었다.

정적이 흘렀다.

가슴이 답답해져왔다.     


오늘은 주말이다. 일주일내내 회사 일로 머리가 뿌개졌다.

그리고 여기는 지인의 결혼식이 있는 건물이다.

간밤의 꿈은 개꿈 뿐이었다.

최근에 어떤 암시도 없었다는 얘기다.

복선도 없었고.

그런데 난 지금 왜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일까.

혼란스러웠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하고.     


주말 휴일로 오프일 오피스가 있는 층들은 그대로 패스해갔다.

2층, 3층, 4층.

그동안 나는  아주머니에게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닫힘 버튼을 그렇게 누르시면 안되죠.” 하고 말이다.     


그러나 나는 끝내 말하지 못했다.

내가 뭐라고.     


난 심약한 사내다. 남에게 싫은 소리를 못한다. 그저 약하디 약한 냐옹이 같다.

그냥 이 순간을 모면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미안할 뿐이다. 이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했을 사람들에게.

난 아무 것도 못했다는 자괴감이 들었다.


얼마뒤 6층에 도착했다.

아주머니가 내릴 차례다.

다행이다 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문이 열리자 아주머니가 내리려다 말고,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깜짝 놀랐다.

그녀는 마스크를 살짝 내렸다.

제발 아무 말도 하지 말기를 바랬다.     


근데 씨익 웃은 것 같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요새 바이러스때문에 큰일이에요. 사람들이 많으면 당최 위험해서. 안그래요?”    

 

나에게 동의를 구하는 것 같았다.

너도 내 도움을 받아 이런 청결한 엘리베이터를 탄 거 아니니 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난 꿈쩍도 하지 않았다.

딴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심약해서 그랬다.

그녀는 예의 무미건조하고, 경제학원론 영어원서처럼 총총총 내렸다.

그리고 어두운 사무실 쪽으로 사라졌다.     


문이 닫혔다.

나는 한숨을 돌렸다.

휴우 하고.

뭔가 미스테리한 긴장도 있고, 뭐가 뭔지 모를 압박감도 있었다.

    

이해는 되는데, 역시 공감은 안된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어서 이런 상황에서 빠져나가고 싶은 심정뿐.     


정상대로 엘리베이터는 움직였다.

다음은 7층. 연회장 식당이 있는 곳이다.

문이 열리자마자, 사람들 잡담 소음이며, 식기 부딪히는 소리로 시끄러웠다.

사람 사는 곳에 온 느낌이다.

이젠 됐다.     

안심이 된다.


문이 열리자 앞에 검정 양복의 커다란 덩치가 보였다.

목과 팔에 시퍼런 문신이 보인다.

조폭같다. 아니 조폭이다. 반드시 조폭이 아니면 안되는 인테리어를 하고 계신다.


얼굴의 인상은 험악하다못해 흉흉한 살기를 띤다.

시비 붙으면 멱살 잡혀서 초죽음이 될지도 모른다.

그런 기세라는 게 있다.


“형님들! 엘베 도착했습니다!”

그가 뒤를 향해 귀가 멍멍할 정도로 소리쳤다.

반응이 없다.

“아놔! 도착했다고요!”

그가 안되겠는지 이를 쑤시고 있는 뒤의 형님들에게 몇발짝 옮겨서 다시 한번 소리쳤다.

그제서 고개를 돌린 형님들은 지리산 멧돼지같고, 우랄 산맥 불곰같고, 시베리아 호랑이 같다.

그것에 비해 나는 불쌍한 야옹이 같다.

“냐옹. 냐옹.”     


“야, 그거 올라가는 거잖아.”

어떤 형님이 으르렁댔다.

“올라갔다가 내려오면 못타요. 증말. 크악! 퉤!”

순도 100% 가래침을 뱉었다. 침방울중 하나가 내 구두에 튄 것도 같다.

그럼, 그럴까.”

조폭 덩치 닐곱 마리(죄송, 예닐곱명이)가 저 멀리서 쿵쿵쿵 몰려오기 시작했다.

저들과 한 엘리베이터에 탄다면.     


나는 버튼 쪽으로 몸을 납작 붙였다.

그리고 필사적으로 닫힘 버튼을 눌렀다.

닫힘 버튼이 지옥에라도 떨어질듯이.

그 옛날 엄마 욕을 죽도록 먹어가며 매진했던 오락기 제비우스의 대공 무기 연사 버튼 실력을 소환한다.

“타다다다다.”     


“아니, 저게 왜 갑자기 닫혀! 야! 씨발!”     

"저거 잡아!"


덩치들이 쿵쿵쿵 하고 달려오기 시작했다.

괴수들 무리 같다.     

잡히면 끝장이다.

덜덜덜.


그러나.

가까스로 닫혔다.     


이럴 때 비즈니스 이커너믹스 경영학 용어가 있다.     


벤치마킹.      


휴우.

냐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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