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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김정 Sep 08. 2024

돈보다 소중한 것



인생 몇 안되는 치명적인 실수중 하나이다.

이렇게 얘기하지만 실수는 늘 한다.

하라고 있는 게 실수같고.

물론 저라는 사람에 한정해서 말이죠.


꽤 오래 전 휴일, 여자친구와 시내 모처에서 거리 버스킹을 구경했을 때의 일이다.     


버스킹 가수는 이십대 중반의 무뚝뚝해보이는 남자였다.

검정 벙거지를 쓰고 있었고, 모자 밑의 두 눈빛이 필요 이상으로 강렬했다.

눈 안에 예술혼이 담겨있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나같은 일반 사람이 오해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그런데 그 눈빛의 용도를 안 것은 좀더 나중이었다.     


그 얘기를 하기 전에, 우선 먼저 할 얘기가 있다.

예기치않게,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그는 노래를 매우 수준급으로 잘 불렀다.     


“어라? 이렇게 버스킹만 하고 있을 사람이 아닐 수도 있겠는데.”

하고 절로 감탄이 나왔다.     


한곡만 듣고 갈까 했는데, 몸이 제멋대로 노래에 이끌리는 식이다.

맛있는 조리 냄새에 킁킁 하고 이끌려가는 경우는 몇 번 경험해보기도 했고, 그런 걸 본 적도 있었다. 헌데 청각의 경우는 처음이었다.

정색하고 보면, 그의 노래와 보이스에는 서사적 설득력과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감성, 그리고 깊디 깊은 매력을 담고 있었다.

신기한 재능이었고, 마법이었다.     


그래선가 사람들이 적지 않게 모여 앉았다.

한곡이 끝나자 박수소리가 힘차게 울렸다.

“짝, 짝, 짝.”

쉬익 하고 휘파람 소리도 울려왔다.

    

그리고 노래와 노래 사이였다.

이걸 막간이라고 하나, 가수가 물도 마시고, 목청도 가다듬고, 기타 튜닝도 할 때, 관객들 몇몇이 벌떡벌떡 일어나 가수 앞에 놓인 투명 아크릴 사각통에 돈을 집어넣었다.    

 

저녁 땅거미가 내려앉았지만, 그 아크릴 통은 매우 투명해서 안에 지폐들이 언뜻 비쳐보였다.

거기다 조명 하나가 아예 돈통을 서치라이트로 비쳤다.

그러니 “저 아저씨는 오천원을 넣었네. 저 아줌마는 천원을 넣었고.” 하고, 다 보였다.


왜 투명한 아크릴이 아니면 안되었을까, 왜 조명을 비추지 않으면 안되었을까. 

하는 의문은 있었다.  

시각적으로 볼 때 노골적인 느낌이 조금은 없지 않았다.

하지만 돈을 낼만한 가치가 노래에 충분히 담겨 있다고 생각해선지, 솔직히 위화감은 별로 들지 않았다. 아마 다른 관객들도 그러했을 것이라 추측한다.    

 

입장료 대신이라 생각하다면 말이죠.     


문젠 다른 데에 있었다.

바로 나였다.      


나는 저 아크릴 통에 돈을 넣을지 말지 망설였고, 돈을 넣으면, 또 얼마를 넣을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왜냐면 지독히도 우물쭈물하고, 망설이는 성격, 결정장애의 기질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첫번째 허들을 넘기까지 몇분이 필요했고, 위협요소와 매몰 비용, 그로 인한 ROI를 종합해서 찰리 멍거식 투자학적으로 검토하기까지 좀더 시간이 흘러야만 했다.      


그 결과.

오천원을 내기로 했다.      


원래는 천원이나 이천원을 낼까 생각했는데, 너무 적다는 느낌이랄까, 째째하기도 하고, 옹졸하기도 하고, 사람을 뭘로 보고 하는 기분이 들 수도 있겠다 싶어서 내린 결론이다.

이런 의사결정 프로세스를 우당탕탕 거쳐서 뒷주머니의 지갑을 꺼내 손에 꽈악 쥐었다.     


지갑 안은 확인하지 않았다.

왜냐면 예술의 혼을 온몸으로 쏟아붓고 있는 가수 앞에서 세속적인 지갑을 펼쳐 안에 지폐를 고르고 한다면 에티켓이 아니지 않나 싶었다.

게다가 내 옆에는 여자친구가 있었다. 여사친이라고 하지만, 여자 앞에서 계산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던 것 같다.     


참, 나란 사람은 정말 이것저것 따지는 것이 많은 꽤나 힘든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 한번의 열창이 끝나고, 관객들이 벌떡 일어나 앞에 놓인 투명 아크릴 사각통에 돈을 집어넣기 시작했다.

나도 어슬렁 뒤를 따랐다.

대부분 천원을 내고 있었다.


‘사람들이 참 째째하네.’ 궁시렁 궁시렁.

이러다보니 오천원이 많은가도 싶었지만, 번복하는 것도 쫌.

아니지, 다시 천원으로 바꿀까.

“이 자식아, 그쯤 해둬!” 라고 속으로 나란 힘든 인생의 뒷통수를 때렸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그 순간이였다.

기타의 튜닝을 하던 가수와 순간 눈이 마주쳤다.

“허억!”

벙거지 밑에 감춰둔 예술혼이 담긴 강렬한 눈빛의 두 눈이 나를 찌르르 쳐다보고 있었다.

솔직히 그때 내 몸이 얼음처럼 경직되었다가 풀려나는 기분이었다.

(다른 이상한 감정은 아니니 오해없기를 바란다.)     


‘왜 날 보지?’     


그런 이상야릇하고 기묘한 기분을 느끼고는 지갑을 열고 오천원 지폐를 잽싸게 사각통에 넣고 자리로 후다닥 돌아왔다.

가수는 아무 일 없듯이 노래를 다시 시작했다.

“짝, 짝, 짝.”

박수.     


그런데 잠시후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두근두근, 콩콩콩, 그리고 쿵쿵쿵 하고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왜 이러지?’

그리고 나의 뇌에서 중앙통제 감지 신호가 뉴런과 시냅스를 통해 전달되어 왔다.     


‘저 남자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이 상황이 설레기 시작했다’ 가 절대 아니다.

“뭔가 잘못되었다.” 였다.

뭔가 정말이지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온몸이 직감하고 있었다.     


그러자 등으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소름도 돋고, 머리털이 쭈삣 서는 느낌이다.

잠시후 난 내가 뭘 잘못했는지 깨닫게되었다.     


돈을 잘못 넣었다.

‘저 통에 오천원을 넣은 게 아니라, 오만원을 넣었다.’  

   

눈에 힘을 주고 아크릴통을 바라보았다.

어둡지만, 투명한 아크릴 통 속의 내 오만원 지폐가 보였다.

‘저건 오천원이 아니다. 오만원이 맞다.’

아무리 어두워도 내 돈의 아이덴티티에 대해 못알아볼 수가 없었다.

    

‘돈이라면 난 환장을 하기 때문에...’ 아니다.     


앞에서 가수가 노래를 부르고, 관객들은 모두 일체가 되어 노래에 흠뻑 빠져 있었다.

옆의 여자친구도 “어쩜.” 하며 노래에 푹 빠졌다.

내 오만원도 저 사각통에 푹 들어가 있었다.

예술혼이고 뭐고, 에티켓이고 뭐고 모르겠다.

나는 지갑을 꺼내어 슬며시 열어 옆눈으로 확인했다.

없다. 역시 오만원이.     


나, 이런.     


가수의 깊디 깊은 매력의 노래는 이제 들리지도 않는다.

웅웅거리는 잡음뿐이다.

오천원과 오만원은 달라도 너무 다른 액수다.

어떻게 해서 이런 바보같은 실수를 한 것일까.

“후유.”

깊은 내면의 골짜기에서 한숨이 메아리쳤다.

이상했던지 여자친구가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난 빙긋 웃어주었다.     

"이김정 왜 울어. 감동먹었어."

젠장.


왜 이런 어처구니가 없는 실수를 저지른 것일까.

과거에 이런 유사한 일은 없었다.

난 지능이 120이 넘는다. 수학중에서도 방정식을 잘했다. 삼각함수도 곧잘 했고.(이 일과 관계없다면 죄송.)     

그렇다면 아마도 이것은 저 가수의 눈빛 탓이다 라는 결론에 나는 이르렀다.     


저 가수가 눈빛으로 조정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이 세상은 무슨 일이든지 벌어질 수 있으니까.

그때 마침 눈을 마주쳐 나로 하여금 오천원을 오만원으로 넣도록 말이다.     


‘아, 내가 이런 생각까지 하다니, 미쳤다’  

   

결국 엎질러진 물이다.

수습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몇가지 아이디어를 생각해봤다.

다른 사람들 낼 때 몰래 따라가 꺼내올까도 생각했지만, 무리다.

너무 깊이 들어가 있다. 인정사정 안봐주고 팔뚝까지 푹 넣는다면 모를까.

생각해봐도 역시 무리다.     


달리 방법은 없다.

버스킹 공연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솔직히 말하는 것이 낫다.

“원래 오천원 내려고 한 거였는데, 오만원을 냈거든요. 거스름돈 4만5천원을 주시면 안될까요” 하고. 

아니다. 만원을 낸 거로 하고, 4만원을 돌려받는 거다.

그편이 훨씬 돌려받기 수월하지 않을까.     


마른 침을 꼴깍 삼켰다.

어째서 이런 상황까지 된 건지.     


나는 잘못 넣은 오만원 지폐를 어둠 속에서 강렬하게 응시하며 시간을 보냈다.

노래고 뭐고 이젠 아무 것도 없다.

그저 어느 휴일이 지나가는 쓸쓸한 달밤에 가망없는 고민으로 외로움에 빠진 사내일 뿐이다.     


사실 내가 이렇게나 돈에 집착을 할 줄은 몰랐다.

이래나 저래나 인생의 시련에 닥쳐봐야 사람의 본성이 나온다더니 그 짝이다.

난 그런 인간이었다.     


그렇지만, 그래도 내 돈 오만원. 흑흑.   

  



“이김정. 다 끝났어. 안가?” 하고 여자친구가 말했다.

“어! 어?”     


시간은 벌써 밤 10시.

공연은 끝났다.

관객들도 이미 모두 돌아가고, 어느새 거리도 텅 비어있다.

내일은 월요일.

다시 한주를 위해 귀가를 서두를 시간이다.  

   

난 짐을 챙기는 가수에게 다가갔다.

그는 허리를 펴고 벙거지 밑의 강렬한 눈빛의 두 눈으로 다가오는 나를 응시했다.

역시 나를 의식한 것이 틀림없다.     


‘저 두 눈이 흑마법을 부린다 이거지. 조심하자.’     


그런데 그에게 가까이 가자, 특이한 게 보였다.

그의 뒤로 이전에는 신경쓰지 않아 보지 못했던 공연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당신의 소중한 천원으로 아프리카 기아 어린이를 후원해주세요.’     


“왜 그러시죠?”

가수가 다가간 내게 물었다.

강렬한 눈빛으로.

옆에 여자친구도 갸우뚱했다.     


“괜찮으시다면, 좀 받을 수 있을까요, 사인을.”

“저, 글씨 잘 못써요.” 라고 그는 대답했다.

퉁명스럽긴.


“기부금 연말공제용 간이 영수증 사인이요.”

“네?”

“농담. 노래가 대단합니다. 눈빛도 강렬하시고. 순간 설레었어요.

"네에에?"

놀란 눈을 하긴.

"또 농담이에요. 수고하세요."

"네. 네."




이걸로 됐다는 기분이다.     

인생에서 내가 아프리카 대륙을 갈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전염병에, 내란에, 쿠데타에, 사자와 하이에나에 쫓길 위험에, 또 망설이고, 결정장애로, 끝내는 가지 않겠지.

     

내 돈 오만원이 대신 아프리카 어린이들에게 가게 됐으니 그걸로 되었다는 얘기다.


그리고 어깨에 오만원의 짐을 내려놓고 가볍게 살면 그만.


그러고보니 오만원의 무게가 질량 곱하기 중력가속도에 뉴턴상수에 뭐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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