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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마지막 장면-시장 경선 출마2

- 시장 경선 출마 2

by 강효진

아빠는 시청사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 회의실에 가는 중이다. 이미 동료들은 그곳에 모여 아빠를 기다리고 있을 터다. 기나긴 복도를 걷고 걸어도 아빠가 늘상 드나들던 회의실은 보이지 않는다. 그때, 낯익은 문 하나가 보인다. 다급히 문을 연다. 아니다. 불도 켜지 않은 캄캄한 방에서는 한번도 맡아본 적 없는 낯선 냄새만 날 뿐이다. 서둘러 문을 닫고 다시 걷는다. 뚜걱뚜걱 뚜걱뚜걱, 텅 빈 복도에는 아빠의 초조한 구둣발 소리만이 울린다. 아빠의 호흡이 거칠어진다. 숨이 차도록 발을 움직여도 회의실은 나타나지 않고, 가쁜 숨, 발걸음 소리, 끝없이 이어지는 복도, 가쁜 숨, 발걸음 소리, 언제까지고 끝나지 않는 복도…….


있는 힘을 다 해 복도를 헤매다가 눈을 뜨면 아빠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가끔은 식은땀을 흘릴 때도 있었다. 퇴직 이후 반복해서 꾸는 꿈이었다. 그저 컨디션이 조금 안 좋은 것 뿐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이런 꿈을 꾼 날이면 하루종일 머리 위에 매지구름 한 조각을 매달고 다닌 듯 온몸이 찌뿌둥했다. 해야할 일을 못다한 듯한 기분에서 헤어나오기 어려웠다. 모두 지난 일이라고 마음을 다잡아 보아도, 손바닥 보듯 훤한 시청 안을 한정 없이 헤매는 꿈은 전조도 없이 무시로 아빠를 찾아들었다.

아무리 애써도 꿈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차라리 제 발로 꿈속에 찾아 들어가 위험한 꿈을 만나는 것이 방법일지도 몰랐다. 아빠가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면, 복도 끝에서 마침내 환하게 밝힌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가 못다한 업무를 다시 시작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눈앞에 놓인 모든 선택의 가능성들이 아빠에게는 정치가 아니었다. 평생을 해 왔기에 누구보다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행정의 영역이었다. 순진한 노동의 영역이었다. 아빠는 오직 아빠가 몸소 겪어낸 영역을 끝끝내 벗어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이미 꿈의 끝이 무엇인지를 말해주고 있었던 것인지도 몰랐다.


*


선거판의 소문은 빨랐다. 아빠가 출마하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는 이미 중앙당에서 영입한 후보가 선거에 끼어들었다는 말들이 퍼졌다. 몇 달 전부터, 아니 오랜 세월 정치에 뜻을 품고 준비해 온 다른 후보자들은 크게 반발했다. 그런가 하면 주변 지역 선후배 입지자들에게서 생각지 못한 많은 연락을 받기도 했다. 그들은 중앙당에서의 영입이 마치 공천을 받은 것이나 다름 없는 것인 양 격려해 주었다. 아빠의 출마 소식은 경쟁 정당에도 영향을 주었다. 아빠처럼 정치 경험은 없지만 행정 경험만큼은 풍부한, 한길만 매진한 청렴한 이미지의 후보를 새롭게 내세웠다.

소문을 따라잡을 수는 없었지만 아빠도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우선 도움을 청할 사람들을 찾아갔다. 같은 당에서 출마해 시장을 연임했던 선배와 가까웠던 전직 공무원들, 당적을 두고 있는 지역 인사들에게 출마 의지를 알리고 조언을 부탁했다. 발이 넓고 소식이 빠른 전직 공무원 후배가 아빠 곁에서 선거운동을 적극 돕기로 했다.

예비 후보자 등록을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프로필 사진을 찍는 것이었다. 예비 후보자로서 자신을 홍보할 수 있는 방법은 선거 사무소 건물에 현수막을 붙이고 시민들에게 명함을 나누어주는 일 정도였으니, 잘 찍은 사진이 꼭 필요했다. 주변에서 프로필 사진을 전문적으로 찍는다는 곳을 추천해서 알아봤다가, 사진 찍는 데에 300만원 가까이 든다는 말에 마음을 접고 집 근처 사진관으로 갔다. 이발소에서 단정히 다듬은 머리에 사진관에서 해 주는 간단한 메이크업을 받은 뒤 카메라 앞에 섰다. 엄마와 결혼하던 날에도 메이크업을 받지 않았던 아빠는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이 어색해 보였지만, 그 감정을 오래 곱씹을 겨를이 없었다. 아빠에게는 이 또한 지금 눈앞에 떨어진 일, 아빠가 해야하는 일일 뿐이었다. 어색함을 숨기고 미소짓던 그날의 아빠는 며칠 후 건물 외벽에 매달려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웃고 있었다. 하얀 와이셔츠 소매를 걷어 올린 채로 아직 쌀쌀한 봄 바람에 나부끼던 아빠가 추워보여서 나는 매번 못본 척 지나치곤 했다.


아빠는 현수막이 잘 보일 수 있는 큰 도로변에 있는 상가를 어렵게 얻어 선거 사무소를 차리고, 본격적으로 선거 운동에 나섰다. 예비 후보자 등록을 하기 직전까지 극구 반대하던 엄마도 군말없이 아빠를 돕기 시작했다. 엄마와 아빠는 새벽 5시면 일어나 간단히 요기를 하고 나갈 채비를 했다. 아빠 이름을 박은 어깨띠를 두르고, 사진관에서 정성들여 찍은 아빠 사진과 간단한 이력 등이 담긴 명함을 챙기고, 항상 함께 다니는 선거운동원을 대동하고서 엄마 아빠는 각자 선거 운동을 다녔다.

보통은 관광버스를 대절해 단체 관광을 떠나는 시민들을 찾아가 인사하는 일로 하루 일과가 시작되었다. 오전 8시 전후로 버스가 출발하니 그 전에 사람들이 모이는 약속장소로 가서 악수를 나누며 명함을 돌렸다. 그런 후 오전 시간에는 원로 어르신들이나 지역 유지들을 만나고, 점심 시간이나 저녁 시간에는 지역 자생 단체나 각종 시민 단체들의 모임을 찾아가 인사를 했다. 그러는 틈틈이 김밥으로 끼니를 해결하면서 전통시장, 대형 마트 앞, 시민 행사 등을 찾아다녔다. 어르신들이 자주 모이는 경로당이나 노인 회관 같은 곳도 수시로 들렀다.

예비 후보자가 할 수 있는 또 다른 선거운동으로 시민들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방법이 있었다. 선거법에서 인정한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지역 시민들에게 한번에 단체 메시지를 전송할 수 있었다. 아빠는 선거 운동을 하던 한달 가까운 기간 동안 네 번의 단체 메시지를 보냈다. 단체 메시지를 한번 발송하는 데에는 약 500만원이 들었고, 그렇기에 한 통 한 통이 아빠에겐 절실하고 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시민들에게 잘 도착했을지, 어떻게 읽었을지를 알기는 어려웠다.

공천 결과가 나올 때까지 매일 매일을, 새벽같이 집을 나서 목이 쉬고 어깨와 허리가 쑤시도록 여기저기 인사를 다니다가 컴컴한 밤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왔다. 급한 물살 같던 하루를 보내고 겨우 피곤한 몸을 누이면, 개울 밑에 가라앉았던 고운 모래가 부스러지듯 미진한 기분이 보얗게 피어났다. 갖은 애를 써가며 모든 힘을 끌어모아도 그만큼의 힘이 다 실리지 않는 근육의 감각이 아빠의 손끝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럴 때면 선거 관계자들로부터 이번 선거에 아빠만한 사람이 없으며, 분명히 아빠가 공천을 받을 것이라고 약속했던 것을 떠올렸다. 그들이 아빠를 그 정도로 설득했을 때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믿었다. 이런저런 생각 속에서 잠이 들었다가 아침이 되어 눈을 뜨면 다시 숨가쁜 하루가 시작되었다.

선거운동을 하는 동안 아빠는 몇몇 산악회에 얼굴을 알리기 위해 등산 모임에 참여한 적도 있었다. 그날도 어깨띠를 맨 채로 숨을 헐떡이며 간신히 산에 올랐다. 등산을 밥 먹듯 다니는 회원들의 꽁무니를 쫓아가려니 체력이 달리는 게 온몸으로 느껴졌다. 산 정상에서 물을 나누어 마시며 힘들지 않은 척 크게 웃다가 후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산 비탈을 내려오면서 아빠는 알았다. 선거 운동은 말 그대로 운동이라는 것을. 어느 날 크게 마음 먹고 운동을 한다고 해서 한순간에 근육이 붙을 리가 없었다. 평소 부지런히 몸을 풀고, 서서히 체온이 올리며 호흡을 가다듬고, 오랜 시간을 들여 산비탈을 여러 번 넘어보아야만 했다. 근육은 그렇게 단련되는 것이었다. 이제껏 해 본 적 없었던, 단 한번도 그것을 목적 삼아본 적 없었던 아빠는 이제 처음으로 낯선 운동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경선을 총괄하는 도당에서는 심사를 거쳐 일곱 명의 예비후보들 가운데 공천을 두고 경쟁할 후보를 세 명으로 압축했다. 마지막으로 아빠를 포함한 세 명의 후보들에 대한 여론 조사를 통해 공천을 받을 후보가 결정되는 것이었다. 여론 조사 결과를 전해듣기 전까지만 해도 아빠는 당신이 공천을 받을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시장 후보로 본격적인 선거 운동이 시작되면 체력 관리를 더 잘해야겠노라 마음 먹고 있었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


아빠 꿈의 가장 마지막 장면은 거기에서 멈췄다. 선거에 나가겠다던 후배를 그토록 만류해 놓고, 당신 발로 선거판에 성큼성큼 걸어들어갔던 아빠가 갈 수 있는 곳은 꼭 거기까지였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세상에 돌고 도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통해 너무 많이 듣고 보아왔으면서, 아빠만큼은 다를 것이라 생각했다. 어떻게든 당선만 되면, 돈을 벌지는 못해도 모범적인 시장으로 남아보고 싶었다. 그것이 얼마나 순진한 꿈이었는지, 이만큼 세상을 살아보고도 여전히 순진한 꿈만 꾸려 했다는 건 얼마나 큰 욕심이었는지.

약 한 달. 못다 이룬 꿈을 위해 아빠가 가진 적은 돈과, 힘과, 믿음과, 사람들로 보냈던 짧은 시간은 그렇게 지나갔다.

그 이후로 오랫동안 엄마와 아빠는 힘든 시간을 함께, 그렇지만 철저히 따로 따로 견뎌야 했다. 엄마는 자주 아빠를 원망하면서도, 끝끝내 아빠를 말리지 못했던 스스로를 탓했다. 잘해보고 싶어 누구보다 애쓴 걸 알면서 아빠의 욕심을 들추는 엄마가 야속하면서도, 결국 욕심에 눈이 먼 자신의 어리석음을 아빠는 오래도록 곱씹어야 했다. 혼자만 아는 자신의 잘못을 여러 번 되돌려 보는 일을 둘이서 같이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각자 견디며 보낸 시간은 습관이 되고 말았다.


*


약속 장소를 찾아 낯선 골목길에 들어서자 촘촘히 늘어선 하얀 천막들이 보였다. 순간, 뾰족한 천막 지붕 위에 써 붙어 있던 '타로' 두 글자가 커다랗게 눈에 들어왔다. 수많은 카드들 중에 몇 장을 골라 뽑으면 타로마스터가 그 카드 안에 숨겨진 운명을 읽어준다고 친구가 말했지만, 믿지 않았다. 아니, 그게 말이 돼? 뒷면만 보고 기분대로 고른 카드 몇 장으로 미래를 볼 수 있다는 게? 타로 카드 점을 보고 왔다고, 신기하게 너무 잘 맞는다며 감탄하던 친구들 앞에서 나는 어울리지도 않게 논리적인 사람인 척 했다. 과학적인 근거라고는 하나도 없는 것에 기대는 건 어리석은 일이라고.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말로 적당히 듣기 좋게 이야기해주는 것 뿐이라고.

하지만 그날만큼은 나도 타로 마스터에게 묻고 싶었다. 이제 막 예비 후보자 등록을 마치고 선거 운동을 시작한 아빠의 꿈이 이루어질 수 있겠느냐고. 그가 하는 말을 100퍼센트 믿을 수는 없지만, 좋은 예언이라도 듣고 나면 마음은 편할 것 같았다. 약속 시간까지 시간은 넉넉했다.

흰 천막 안에는 온화해 보이는 중년 여성이 앉아 있었다. 능숙하게 카드를 섞어 짙푸른 밤하늘 빛 벨벳 위에 펼치더니 듣던대로 내게 카드를 몇 장 고르라고 했다. 미신이니 어리석은 일이니 운운하던 나는 누구보다 신중하게 카드를 골랐다. 타로 마스터가 수수께끼 같은 그림들을 내게 보여주며 입을 열었다. "아버님을 돕는 사람들이 많네요. 그들이 아버님을 힘껏 돕고 있어요." 일단 마음이 놓였다. 타로 마스터는 다음 카드를 바라보며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노력에 합당한 결과를 얻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그 말을 듣는 순간, 타로 따위에 안심을 얻어보려 했던 나 자신이 당장에 싫어졌다.

그럼 그렇지, 카드로 뭘 알 수 있다고. 그 다음부터는 어떤 말도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아니 들을 필요가 없었다. 차마 자리를 박차고 나오지 못해 그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천막을 급히 빠져나오면서 중얼거렸다.

이건 미신이야. 과학적인 근거가 하나도 없잖아. 저 여자가 뭘 안다고.


*


사실은 타로 마스터가 마지막에 해 준 말을 나는 기억하고 있었다.

"아버님께서 하시는 일들이 잘 안되더라도, 아버님을 아끼는 분들이 끝까지 아버님을 지킬 거예요. 아버님 곁에 좋은 사람들이 남아요."

타로마스터가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한 거라고, 점괘에 실망한 나를 달래려고 뒤늦게 수습하느라 되는 대로 지껄인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공천에서 탈락한 이후로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아빠 곁에 남았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 이후로 아빠는 다시는 꿈 같은 것은 꾸지 않겠다는 듯 점점 더 어렵고 힘든 일들, 아빠가 이제까지 해 보지 못했던 일들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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