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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사라지는 것-유기 동물 배달원

유기 동물 구조원이 아니라, 유기 동물 배달원

by 강효진

보호소에 도착하자 싸리눈이 날리기 시작했다. 아빠는 헐벗은 산자락 아래에서 혼자 있던 강아지 한 마리를 데리고 온 참이었다. 아빠가 즐겨 마시는 밀크커피 색깔의 곱슬거리는 털을 가진 조그만 녀석이었다.

주차를 하고나서 강아지가 담긴 켄넬을 꺼내들고 보니, 보호소 앞에 커다란 냉동 탑차가 서 있었다. 한 남성이 보호소 뒤쪽 냉동고에서 자루들을 꺼내 카트에 실은 뒤, 탑차에 옮겨 싣고 있었다. 냉동고에 보관된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냉동 탑차로 실어나르는 것인지, 아빠는 동물들을 데려오는 일 말고는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탑차를 의아하게 바라보는 아빠에게 수의사는, 안락사를 시킨 후 냉동 보관해 두었던 동물들을 화장장으로 실어가는 것이라고 했다. 냉동 탑차는 일 주일에 한 번씩 보호소에 드나들고 있었지만, 거의 외부에서 일하던 아빠와는 마주칠 일이 없었던 것이다. 남자가 부지런히 탑차에 싣고 있는 자루들 위로도 하얀 눈이 떨어지고 있었다. 아빠가 2,3주 전쯤에 데려온 강아지들이 자루 안에서 언 몸으로 누워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온몸에 한기가 돌았다.

보호소 안으로 들어가니, 어느새 익숙해진 동물들의 냄새와 기척이 느껴졌다. 무심코 사육장에 눈길이 갔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열다섯 마리 남짓의 개와 고양이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주 6일 근무를 하던 아빠는 거의 날마다 한두 마리의 동물들을 보호소로 데려오고 있었지만, 사육장에서 그들이 들고 난 흔적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다. 아빠의 손에 이끌려 이 곳에 모인 동물들의 얼굴은 저마다 달랐지만, 표정만큼은 모두 닮아보였다. 이곳에서의 짧은 만남 뒤에는 모두가 같은 운명을 맞게 되리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꾸밈없는 표정이었다. 이제 밀크커피 녀석도 앞으로 열흘간 이곳에서 비슷한 표정으로 지내게 될 것이었다.


그날은 유난히 하루가 길었는데, 퇴근 시간이 다 되어 소방서에서 연락이 왔기 때문이었다. 119로 아파트 단지 주변에 사나운 개가 나타났다는 신고가 들어와, 소방관들이 출동해 개를 포획한 후 격리해 두었다고 했다. 아빠는 그 개를 보호소로 데려와야 했다. 아빠가 소방서에 도착했을 때, 다부진 몸매의 셰퍼트가 잔뜩 경계하는 눈빛으로 커다란 켄넬 안에서 두리번대고 있었다. 노란 털이 덮인 얼굴에 검은 귀가 뾰족해 보이던 녀석은, 아빠가 다가가자 이빨을 보이며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잔뜩 예민해진 녀석을 아빠 혼자 다루기가 쉽지 않았다. 소방관들의 도움을 받아 아빠가 챙겨간 보호소 켄넬로 겨우 옮기고 난 순간이었다. 녀석은 당황하는 표정을 짓더니 변을 보는 것이었다. 아빠가 구조 작업을 하면서 개가 켄넬 안에 변을 보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낯선 장소와 사람들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은 것이 분명해 보였다. 아빠의 눈엔 그저 거칠고 사납기만 한 셰퍼트 한 마리일 뿐이었는데, 녀석은 낯선 세상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다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빠가 해 줄 수 있는 건 켄넬 안을 깨끗하게 치우는 일 뿐이었다.

보호소로 가는 차 안에서도 불안한 눈빛으로 주변을 살피던 녀석을 수의사에게 넘기고, 아빠는 쫓기듯 보호소를 빠져나왔다. 캄캄해진 도로를 달리다가, 아빠는 그제서야 오전에 내렸던 눈이 다 녹아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는 걸 알았다. 모르는 사이에 사라져버리는 것이 눈만은 아니라는 것도, 아빠는 알고 있었다.


*


아빠를 종종 난감하게 만드는 존재는 고양이였다. 고양이는 개보다 훨씬 경계심이 강했고, 아빠가 아무리 조심스럽게 다가가도 예민하게 반응했다. 그렇다 보니 구조 요청을 받고 현장으로 달려가 오랜 시간 씨름만 하다가 고양이를 놓치고 결 빈손으로 돌아오는 날도 많았다. 그런 날이면 보호소장을 맡고 있는 수의사는 허허 웃으면서 아빠에게 "강 선생님, 오늘 하루 일당을 놓치셨네요"하고 농담을 건네곤 했다. 유기 동물 보호소는 구조한 동물의 수만큼 지자체의 지원금을 받아 운영되는 형편이니, 농담이라고만은 할 수 없는 말이었다.


몇 번인가 고양이를 놓치고 나서, 또 다시 고양이 구조 요청을 받고 찾아갔던 곳은 한 초등학교였다. 학교에 도착하니 교감 선생님을 비롯한 선생님 두어 분이 교무실 앞 복도를 서성이고 있었다. 교무실 안에 고양이가 있다고 했다. 고양이를 아무리 밖으로 내보내려 해도 마치 제 집인 양 교무실을 휘젓고 다니면서 좀처럼 말을 듣지 않는다고 했다. 길고양이 한 마리가 교무실을 차지하고 앉아서 선생님들을 쫓아낸 꼴이었다. 아빠는 우선 두툼한 가죽장갑부터 끼었다. 고양이는 본능적으로 발톱을 사용해 방어하기 때문에 손목까지 올라오는 가죽장갑을 착용해 손을 보호해야 했다.

교무실 안으로 들어가니 젊은 선생님 한 분과 초등학생 서너 명이 책상 하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책상 밑을 내려다보니 이마엔 회색 줄무늬에 얼굴은 뽀얀 얼루기가 하얀 두발을 모으고 등을 편 채 앉아 있었다. 고양이를 바라보는 선생님은 난처한 표정이었지만, 아이들은 고양이가 일으킨 작은 소란에 신나 보였다. 살며시 다가가는 아빠를 올려다보는 녀석의 커다란 눈매는 두려움보다 호기심으로 반짝거렸다.

녀석이 책상 밑을 빠져나가기 전에 잡아야했다. 마침 아이들이 고양이를 둘러싸고 있어서 녀석은 쉽게 틈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아빠는 얼른 팔을 뻗어 고양이의 목덜미를 낚아채듯 잡고, 다른 손에 들고 있던 수건으로 녀석의 몸을 감쌌다. 오늘은 놓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아빠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새어나왔다. 그대로 고양이를 안고 교무실을 빠져나와 열어두었던 차량의 트렁크를 향해 걸어갔다. 30초나 걸렸을까. 켄넬에 녀석을 들이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던 그 순간, 뒤틀던 고양이의 몸이 파도처럼 출렁이더니 썰물처럼 스르르, 두 팔 사이를 빠져나갔다. 순식간이었다. 고양이를 보려고 아빠 꽁무니를 쫓아오던 아이들은 도망치는 고양이를 향해 탄성을 내질렀다. 아빠는 다리가 묶인 사람처럼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아빠의 두 손엔 수건만 들려 있을 뿐이었다.

장갑 때문이었다. 경험이 많지 않았던 아빠는 두꺼운 장갑에 손의 감각이 둔해져서 얼루기를 제대로 붙잡지 못했던 것이다. 빈손으로 학교를 빠져나오며 아빠는 홀로 얼굴을 붉혀야 했다. 고양이 한 마리와 함께 아빠가 무엇을 놓친 것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그 근방의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신고가 들어왔다. 밤마다 먹이를 찾으러 오는 고양이가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자주 훼손하는 탓에 악취로 아파트 주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었고, 해결방안을 고심하던 관리사무소는 쓰레기 집하장 주변에 포획틀을 설치해 고양이를 잡았다고 했다. 아파트에 도착해 보니 포획틀 안에 통통한 노랑이 한 마리가 잔뜩 웅크리고 있었다.

아빠는 고양이를 옮길 커다란 자루를 들고 다가갔다. 초등학교에서처럼 실수를 할 것이 염려되어, 그날은 두툼한 가죽장갑 대신 손바닥이 코팅된 작업용 장갑을 끼고 있었다. 무릎을 꿇고 앉아 열어둔 포획틀 입구에 챙겨온 자루를 대놓았다. 고양이를 잡아 자루로 옮겨 켄넬에 실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빠와 포획틀 사이의 작디 작은 틈도, 고양이에게는 도망치기 좋은 공간이었다. 아빠가 오른팔을 뻗자 어느새 녀석은 무릎 사이를 미끄러지듯 빠져나가고 있었다. 또 다시 고양이를 놓칠 수 없었던 아빠는 다시 반대편 손을 뻗었다. 간신히 손에 잡힌 고양이의 꼬리를 쥐고 자루에 옮기려던 순간, 녀석은 동그랗게 몸을 말아 아빠의 팔을 움켜쥐더니 앞발로 손등을 사정없이 할퀴었다. 끼고 있던 면장갑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아빠는 오른팔로 왼팔에 매달린 녀석의 목덜미를 잡아 팔에서 떼어내어 자루에 담고 켄넬에 실었다. 고양이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아빠가, 이미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져 있던 노랑이의 가장 민감한 부위를 함부로 건드렸다가 사달이 난 것이었다.

아빠의 손등은 날카로운 발톱에 여러 번 긁혀서 살갗이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급한대로 화장지를 두툼하게 여러 번 겹쳐 손등을 덮은 뒤, 조금이나마 지혈이 되도록 작업용 장갑을 다시 끼었다. 운전을 해 보호소로 가는 20여분 동안에도 피는 멈추지 않았고, 도착했을 땐 하얗던 장갑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보호소 근처 병원에 가니 상처를 소독하고 붕대를 감아주었다. 상처가 깊고 커서 파상풍 주사도 맞아야 했다. 다친 자리가 어느 정도 아물고 딱지가 앉을 때까지 열흘이 더 걸렸다. 상처를 치료하는 동안에도 일을 계속 해야했기 때문에 빨리 낫지 않고 더 고생스러웠다고 아빠는 말했다.

아빠의 다친 손등을 떠올리고 있자니, 내 손까지 욱신거려왔다. 나도 모르게 이맛살을 찌푸리는데, 아빠는 뜻밖의 말을 했다. 차라리 고양이를 구조할 때가 마음은 편했다고. 고양이를 보호소에 데려오면 검진 후 중성화 수술을 하고, 어느 정도의 회복 기간이 지나면 본래 구조했던 곳 근처로 데려가 방사를 했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고양이가 안락사의 수순을 밟지 않는다는 것이 아빠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


4월의 어느 토요일이었다. 그날도 아빠는 평상시와 다름없이 아침에 보호소로 출근해 접수된 내용을 확인하고, 현장으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지인의 결혼식에 참석해야 하니, 일 마치면 일찍 퇴근하라는 수의사의 말을 듣고서 아빠는 보호소를 나왔다. 신록의 봄잎들이 햇살에 반짝거렸다. 아빠가 보아도 결혼식을 하기에 참 좋은 봄날이었다.

등이 굽은 할머니가 보호하고 있던 통통한 시추를 데리고 점심 시간 즈음 보호소로 돌아왔을 때, 동물병원에서 미용 일을 하는 실장의 표정이 이상했다. 수의사가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했다. 아빠는 어이가 없었다.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 소식을 전해주는 실장에게 무슨 이야기인지 되물었다. 불과 세 시간 전까지만 해도 얼굴을 마주 보고 이야기를 나눴던 사람이 갑자기 죽다니. 활달하고 정력적이던 40대 후반의 젊은 사람이 이렇게 한순간 사라질 수 있다는 걸 믿을 수가 없었다.

장례식장에 가서 들은 수의사의 사고 경위는 더욱 기가 막혔다. 결혼식장에 가는 길에 차를 운전해 통행이 적은 한산한 도로의 지하도를 빠져나오다가 길옆에 주차되어 있던 대형 화물차를 추돌해 그 자리에서 숨졌다고 했다. 수의사가 운전하던 SUV 차량의 앞부분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서진, 정말 끔찍한 사고였다.

사람들은 그토록 화창했던 한낮에, 어째서 그 커다란 화물차를 못 보고 들이받은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수근댔다. 뭐에 씌이지 않고서야 그런 데서 그렇게 심각한 사고를 낼 수 있느냐고 누군가 말하자, 그의 말이 맞다며 동조하는 몇 개의 목소리가 나직하게 들려왔다. 아빠는 혼자서 가만히 고개를 주억였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서는 이 이상한 사고를 이해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


"앞으로도 저희랑 함께 일하시죠."

지자체로부터 유기 동물 보호소 운영을 새롭게 위탁받은 단체에서 아빠를 찾아왔다. 앞으로도 보호소에서 함께 일하자는 목소리를 듣는 순간, 아빠의 손등에 촉촉한 것이 스쳤다. 주인에게 버림받았다는 것도 모르고 아빠가 내미는 손을 순진하게 핥던 강아지의 조그맣고 빨간 혀의 감촉이었다. 그 온기는 잠시 아빠를 미소짓게도 했지만, 곧 사라지리라 것을 아빠는 알고 있었다. 다시 그 무력함 속에서 지낼 수는 없었다. 이제는 손을 거두어야 했다.



꼭 7개월만에 아빠의 유기 동물 배달원 생활은 그렇게 끝이 났다. 그리고 예순일곱의 아빠는 다시 노년의 구직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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