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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기 - 냉동.냉장 창고

지시 받은 적 없는 업무들

by 강효진

아빠는 돼지국밥이 먹고 싶다고 했다. 원룸에서 혼자 생활하는 아빠와 몸에 좋은 음식을 먹고 싶었는데, 고작 돼지국밥이라니. 더 맛있는 걸 먹으러 가자는 내 말에 아빠는 빙글빙글 웃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 집 돼지국밥이 얼마나 맛있는데!"

아빠가 신출내기 공무원이던 시절부터 가곤 했던, 50년도 넘은 오래된 식당이라고 했다. 의기양양한 눈빛의 아빠를 따라간 식당은 공영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나서 어두운 시장 골목을 한참 걸어들어간 안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식당 이름이 적힌 낡은 간판도 워낙 작아서 혼자서 다시 찾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식사 시간이 다 지난 늦은 저녁 시간, 형광등이 쨍한 좁은 실내에 옹기종기 놓인 다섯 개의 테이블은 비어 있었다. 달력 뒷면에 매직펜으로 비뚤비뚤 쓴 메뉴는 국밥, 수육, 편육, 이렇게 세 가지 뿐이었다.

머릿고기가 푸짐하게 올라간 뚝배기에 밥이 말아져 나왔다. 맑은 국물로 토렴한 뜨끈한 밥알은 퍼지지 않고 알알이 살아있으면서도 부드러웠다. 국밥 한 숟가락에 깍두기를 올려 한 입 가득 넣으니 구수하고도 담백한 맛에 오히려 배가 더 고파졌다. 음식에 까다로운 엄마가 있었다면 결코 함께 먹을 수 없는 음식이라며 아빠는 웃었다. 아빠가 좋아하는 소주도 한 병 시켰다. 절로 눈썹을 찌푸리며 맑은 술을 삼키는 나와 달리, 아빠는 신들의 음료라는 넥타르를 마시는 사람처럼 소줏잔을 달게 넘겼다. 머릿고기 한 점을 새우육젓에 찍어 먹고 나자 부쩍 야윈 아빠의 얼굴에 은근한 화색이 돌았다. 돼지 국밥에 곁들여 마시는 소주 한 잔이 아빠에게는 정말로 불멸을 가져다 주는 넥타르인지도 몰랐다.

술을 마시지 않은 남편이 운전해 아빠가 지낸다는 원룸 앞에 도착했을 때, 나는 입술과 함께 놀란 마음을 꼭 깨물어야 했다. 원룸은 아빠에게 듣던 것보다 더 낡아 보였다. 어둠 속에서도 회색 페인트를 바른 외벽이 얼룩덜룩하다못해 어두침침해 보였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두려웠다. 엄마 잔소리가 없으니 편하다는 아빠의 농담이 우리를 안심시키기 위한 말이었음을 확인하고 말 것이었다.

내 마음을 아빠는 읽었던 것일까. 시간이 너무 늦었다고, 이제 자야할 시간이니 어서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했다. 차에서 내린 아빠는 차창 밖으로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떠밀리듯 아빠를 남겨두고 돌아오면서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빠가 살고 있는 원룸을, 아빠의 고단하고 궁색한 삶을 내 눈으로 맞닥뜨리지 않아도 되었기에.

"힘들 게 뭐가 있어. 주간 근무로 바뀌면서 일도 너무 편하고, 회사 식당 밥도 먹을만하고, 정말 좋아."

소주 한 병으로는 부족해 수육까지 주문해 두 병째 소주를 마시면서 씩씩하게 내뱉던 아빠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안심하고 싶었다. 아빠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


새해가 되자 주간 근무를 시작하게 된 아빠는 책상 하나에 데스크톱 한 대가 갖추어진 작은 사무실을 배정받았다. 작다고는 해도 혼자서 쓰기엔 넓었다. 아빠의 채용을 결정했던 전무는 주간 근무 첫날, 아침 일찍 출근한 아빠에게 말했다. "회사 직원들에게 많이 가르쳐주시고, 여러 가지로 도와 주세요." 업무 지시라기엔 모호한 내용이었다. 아무리 아빠가 회사 직원들 가운데 최고 연장자이고, 직장 생활 경험이 많다고는 해도, 무엇을 가르치고 돕는단 말인가. 그 불분명함은 아빠가 회사에 꼭 필요한 일손은 아니라는 의미로 들렸다. 언제까지 출근을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일단 출근을 했으면 일을 하는 게 마땅했다. 특별한 일 없이 책상에 가만히 앉아 있는 건 아빠 성격에 맞지도 않았다. 아빠는 회사 구석구석을 살피면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스스로 찾아 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하루종일 화물차가 드나들면서 입출고가 이뤄지는 1층이었다. 많은 양의 식료품을 내리거나 창고의 물품을 차량에 싣고 나면, 300평이 넘는 입출고장은 어느새 지저분해지곤 했다. 커다란 화물차들이 물건을 싣고서 빠져나가고 나면 바닥엔 셀 수도 없이 많은 곡식 낟알들, 화물차의 커다란 바퀴에서 떨어져나온 흙 덩어리와 식자재에 묻어온 흙들, 비닐이나 종이 같은 포장재들로 어지러웠다. 아빠는 틈틈이 입출고장 바닥을 쓸고 정리했다. 그래야 다음 차들이 들어와 물건을 내리고 싣는 동안 불편함이 없었다.

눈이 내리는 날이면 직원들은 평소보다 더 서둘러 회사에 출근했다. 예기치 못한 눈이라도 내리면 회사 전체에 미묘한 긴장감이 돌았다. 그런 날이면 입출고장이 직원들로 북적거렸다. 이사부터 지게차 기사들까지, 거의 모든 직원들이 나와 함께 눈을 치웠기 때문이다. 차량이 자주 드나드는 데다가 회사 건물이 언덕배기에 위치해 있다 보니, 쌓인 눈을 제때 치우는 것이 무척 중요했다. 자칫하다가는 안전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다. 큰 눈이 내린 날이면 지게차 기사가 지게차나 트럭에 제설기를 달고서 회사 진입로부터 회사 앞 광장과 1층 입출고장까지 천천히 눈을 밀어냈다. 커다란 눈삽이 조그만 눈보라를 뽀얗게 일으키며 눈길을 지나가고 나면, 아빠는 직원들과 함께 넉가래로 바닥에 꼬리처럼 남아있는 눈을 치웠다. 그러고 나면 눈 때문에 화물 업무에 차질이 생길까 봐 걱정하던 직원들의 얼굴에서 긴장감이 조금은 사라지는 듯 했다. 아빠가 그곳에서 일하던 겨울은 큰눈이 잦지 않아 다행이었다.

가끔이지만 많은 양의 화물이 한꺼번에 들어온 날이면, 바닥 정리를 한 후에 아빠도 입출고장에 남아 화물 하차 보조로 급한 일손을 가끔 보태기도 했다. 많은 양의 화물을 차량에서 내려 창고로 옮길 때에, 지게차에 실은 물건이 잘 실리도록 기사들 옆에서 화물을 지탱하는 줄을 잡아주거나 쌓아놓은 화물을 받쳐주는 정도의 간단한 일이었다. 아빠 나름대로는 돕는다고 도왔지만, 사실은 아빠가 제대로 돕기는 어려 일이었다. 오랜 시간 하역 작업을 해 온 기사들의 단련된 단단한 몸짓과 능숙한 손놀림을 볼 때면, 68년을 살아온 아빠가 모르는 것이 여전히 많다는 걸 실감했다. 아니 아빠가 평생 하나만 알고 사느라 보지 못했던 세계가 바로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아빠는 일찍 일어나 아침을 챙겨 먹고 7시면 집을 나서 해가 채 뜨지 않은 겨울 길을 걸어서 회사로 갔다. 좁은 공간에 이런 저런 짐들까지 쌓여 답답한 원룸에 머무는 것보다는 회사에 나가 바쁘게 몸을 움직이는 것이 좋았다. 공무원으로 오래 일을 하던 때부터 몸에 밴 습관이기도 했다.

출근을 하면 가장 먼저 사무실 청소를 했다. 아빠가 스스로에게 맡긴 또 다른 업무였다. 아빠가 머무는 작은 사무실부터 회장실, 전무실, 직원 사무실과 회의실까지 청소기로 구석구석 먼지를 치우고, 대걸레로 바닥을 닦았다. 대여섯 개의 사무실을 싹 치우고 나면, 출근할 때만 해도 어둑했던 하늘이 어느새 아침 햇살을 환하게 머금고 있었다. 비로소 진짜 새 하루를 시작하는 기분이었다.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나면 아빠는 화장실로 갔다. 경비로 야간 근무를 할 때부터 화장실이 늘 신경쓰이던 참이었다. 지게차 기사들이 가끔 쓰레기통에 쌓인 휴지를 치우는 걸 보기는 했지만, 화장실은 늘 지저분했다. 특히 외부에서 들어오는 화물차 기사들이 수시로 이용하는 1층 화장실과 기사 휴게소 내 화장실은 깨끗할 날이 없었다. 냄새도 나는 데다가 타일 바닥엔 흙이 떨어져 있거나 발자국이 어지럽게 남곤 했다. 거기에 비나 눈이 내린 날이면 물기까지 흥건해져서 바닥은 온통 너저분했다. 쓰레기통에는 휴지 말고도 음료캔이나 종이컵, 심지어 먹고난 컵라면 용기와 나무젓가락도 버려져 있었다. 쓰레기통에 던져 버린 휴지가 산처럼 쌓이다가 바닥에 굴러다녔다. 함부로 당겨 사용한 두루말이 화장지가 바닥까지 길게 늘어져 있는 날도 잦았다. 성격 급한 화물 기사가 다녀간 모양이었다.

아빠는 쓰레기통을 치우고, 바닥을 대걸레로 싹 닦았다. 궂은 날이면 마른 대걸레로 한번 더 바닥을 훔쳤다. 1층 화장실에 비하면 직원들이 주로 사용하는 2층이나 드나드는 사람이 많지 않은 지하 1층 공조실 옆 화장실 청소는 일도 아니었다. 수시로 화장실을 확인하면서 쓰레기통이 꽉 차면 종량제봉투에 담아 치우고, 화장지가 떨어지면 채워넣었다. 아빠가 청소를 한 이후로 화장실은 훨씬 청결해졌다. 화장실을 사용하는 아빠의 기분도 좋았다.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일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에는 귀천이 없다는 말을 아빠는 그때 몸으로 이해했다. 일을 하고 스스로 조금이나마 뿌듯하다면 그 일이 어떤 일이든 귀한 일이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화장실 청소를 아빠가 그렇게 열심히 하고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 있었느냐는 나의 질문에 아빠는 모르겠다고 했다. 화장실 청소에 대해 묻는 사람도 없었고, 아빠가 하기 전까지 대강이나마 화장실을 정리하던 기사들도 아빠가 청소를 한 이후로는 신경 쓸 겨를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 오히려 더 잘한 일이었다고 아빠는 말했다.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을 아빠가 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10년 전처럼 다시 그곳에서 일을 하게 된다면 지금이라도 아빠는 그때처럼 일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제는 누가 이렇게 나이든 사람을 써 주겠어?" 아빠는 껄껄 웃었다.


*


점심 시간이 가까워오면 종종 아빠 사무실로 전화를 하는 사람이 있었다. 냉장·냉동 회사 대표의 아버지이자, 이 회사를 포함한 서너 개의 계열사를 가지고 있는 기업체의 창업자인 회장이었다. 땅딸막하고 보기 좋게 살이 붙은 사람이었는데, 회사에서 가장 직책이 높은 사람이지만 거드름부리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아빠에게 항상 예의를 갖추어 대했고, 은퇴한 공무원이라는 것을 알고는 아빠를 보면 예전 직함을 따 "국장님"이라고 부르곤 했다. 소탈한 편인데다가 두어 살 나이 차이가 있기는 해도 비슷한 나잇대여서 대화가 잘 통한다고 생각했는지, 아빠와 대화하기를 좋아했다.

그는 일 주일에 이틀에서 사흘은 냉장 냉동 회사로 출근을 했는데, 회사에 나오면 꼭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럴 때면 아빠와 함께 식사하기를 즐겼다. 가끔 회사 밖으로 나가 점심을 먹자고 권하기도 했는데, 아빠가 구내식당 밥맛이 좋은데 무엇하러 외식을 하느냐면서 구내식당으로 이끌면 그의 얼굴엔 뿌듯한 미소가 어렸다. 진심으로 구내식당 밥을 맛있게 먹고, 그것을 보람되게 느끼고 있었다. 그 얼굴이 아빠는 보기 좋았다.

가끔은 좋은 차가 있다며 회장실로 불러 함께 차를 마시기도 했다.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 아빠가 공무원으로 일하던 시절이나 회장이 젊은 시절 회사를 적극적으로 키우던 시절의 이야기 같은 것들을 나누고, 회장과 아빠의 공통된 관심사였던 바둑 이야기도 나누었다. 직책을 떠나 편안한 말벗을 만나는 기분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아빠에게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하지만 아빠에게 진정한 휴식처가 되어준 곳은 따로 있었다. 바로 공조실이었다. 24시간 직원이 상주해야 하는 곳이다 보니, 아빠가 야간 경비로 일할 때부터 모든 직원이 퇴근하고 난 늦은 밤을 함께 보낸다는 동질감을 나누며 공조실 직원들과 친분을 쌓아온 터였다. 공조실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발바닥부터 전해지는 진동이 온몸을 타고 올라와 두 귀로 와락 쏟아졌다. 컴프레서의 굉음과 대형 환풍기가 '붕붕' 돌아가는 소리였다. 동시에 후끈한 열기가 아빠의 온몸을 덮쳤다. 매서운 겨울 한파도 공조실에서는 힘을 쓸 수 없을 터였다.

공조실 직원들은 군것질하기를 좋아했다. 아빠에게 초콜릿 과자를 건네거나, 컵라면을 내밀기도 했다. 평소 좋아하지 않던 초콜릿이 그렇게나 입에 달 수가 없었다. 화제가 되는 뉴스 이야기를 나누거나, 층고가 높은 공조실의 전구를 갈기 위해 사다리차에 올라간 직원 곁에서 돕기도 했다. 처음엔 낯설고 어지럽기만 하던 소음과 기계실의 열기가 어느새 아빠에게는 시끄러운 세상을 잠시 잊게 하는 방음막이나 포근한 이불처럼 느껴졌다. 겨울 바람을 맞으며 너른 입출고장을 정신없이 치우다가도 몸에 한기가 돌 때, 일에 마음을 의지해도 가슴 한구석에서 바람이 휑하니 불 때, 아빠는 공조실로 갔다. 직원들과 눈인사를 나누고는 그 곁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온몸이 뜨끈해지면서 긴장이 풀렸다. 그것이 단지 공조실의 열기 때문이었는지, 언제나 아빠를 반기는 꾸밈없는 직원들의 온기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


딱히 지시받은 적 없는 업무를 착실히 늘려가며 그곳에서 하루하루 보내다 보니 어느덧 길었던 겨울이 지나고 꽃이 피었다. 어둡기만 하던 출근길이 불현듯 아침 햇살로 환하고, 메말랐던 나무들이 불쑥 연둣빛 잎을 틔웠다. 계절이 찾아오듯, 아빠 혼자서 넉달을 보내던 원룸으로 불쑥 엄마가 찾아왔다. 하도 부딪히고 서로를 힘들게 하다 보니 떨어져 지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얼굴을 보니 그렇게나 반가울 수가 없었다. 엄마는 아빠에게 갓 지은 밥을 지어주고, 무를 나박나박 썰어 동태탕을 끓여주었다. 모처럼 먹는 아내 음식에 봄이 왔구나, 싶었다. 혼자 지내는 동안 힘들다는 생각을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처음으로 지난 겨울이 참 춥고 길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화를 할 때면 종종 날을 세우던 엄마는 처음으로 아빠에게 혼자서 지내는 게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엄마도 아빠와 다르지 않은 겨울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었다.

엄마는 아빠에게 딱 세 끼 밥을 해 주고는 훌쩍 경주로 돌아갔다. 엄마가 다녀가고 나니, 비좁아 보이기만 하던 원룸이 썰렁했다. 그때 아빠는 알았다. 젊은 나이에 아빠만 믿고 낯선 땅에 와서 긴 세월을 살아준 엄마처럼, 이제는 아빠가 엄마의 고향땅 경주로 갈 때가 되었다는 것을.


엄마가 다녀간지 꼭 한 달 후, 아빠는 남쪽 마을 엄마 곁으로 돌아갔다. 냉장·냉동 회사에서 세 개의 계절을 꼭 채워 보내고 난 무르익은 5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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