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프장 사우나 청소 업무
아직도 선명하게 떠올라요. 우리 가족이 처음으로 경주에서 추석을 함께 보냈던 연휴 마지막 날, 그 어둡기만 했던 새벽이요.
귀경길 정체를 피하려고 새벽 네 시에 경주 집을 나섰을 때, 아빠도 출근을 한다며 우리와 함께 나온 참이었어요. 출근 시간이 일러도 너무 이르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기도 전에, 아빠는 말했어요. 일찍 나가는 날에는 오후 두 시면 퇴근 할 수 있어 오히려 좋다고. 우리가 주차장에서 나오기를 기다리던 아빠는, 아파트 입구를 빠져나가는 우리 차를 향해 손을 흔들며 웃고 있었어요. 가로등 불빛 아래서 아빠의 모습은 노랗게 반짝이다가 금세 멀어지며 점처럼 작아졌어요.
아빠는 엄마를 따라 경주로 내려온 후로, 교차로를 보고 일자리를 구했다고 했어요. 평생을 쉬지 않고 일해 온 아빠는 경주에서도 일을 멈출 생각이 없었어요. 아니,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면 일이 꼭 필요하다고 했어요. 마치 그 이전엔 열심히 산 적 없는 사람처럼 아빠는 새삼스럽게 말했어요. 열심히 살고 싶었다고요.
매번 열심히 살기를 결심하는 아빠를 저는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건 오히려 아빠의 무능을 드러내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불쑥 치밀어 오르곤 했어요. 그럴 때마다, 아빠가 늘 입버릇처럼 "가만히 있는 건 내 성격에 안 맞는다"고 말하던 것을 떠올렸지요. 그렇게 생각하면, 모두가 잠든 새벽 네 시에 출근길에 나서는 일도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았어요. 아빠는 그저 타고난 성격대로 살고 있는 거니까요. 그렇게 결론 내리고 나면, 가로등 불빛 아래 홀로 서 있는 아빠를 뒤로한 채 돌아서던 캄캄했던 새벽도, 다른 잡념들로 덮어둘 수 있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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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장 내 사우나가 경주에서 아빠가 찾은 새로운 일터였어요. 아빠는 골프장 이용객들이 사우나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그곳을 청소하고 관리하는 일을 맡았어요. 이용객들이 들어오기 전에 수조에 물을 채우고 적절한 온도로 맞추는 것부터 시작했지요. 이어서 샤워 부스와 거울을 닦고, 목욕용품을 챙기고, 라커룸을 정리하는 일까지 차례로 해야 했어요.
새벽 5시에 출근해서 정신없이 일하다 보면 어느새 오전 9시가 되었다고 아빠는 말했어요. 그 즈음부터 새벽 라운딩을 마친 손님들이 사우나로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지요. 이용객들이 밀려들기 시작하면 파우더룸을 정리하고, 바닥을 닦고, 수건을 채워넣고, 수조의 물 온도를 다시 확인해야 했어요. 손님들이 실내에서 신던 슬리퍼를 가지런히 정리하고, 탈의실 바닥을 틈틈이 쓸고 닦는 일도 빠뜨릴 수 없었지요.
오전 11시가 되면 오후 근무자들이 출근을 했어요. 그때부터 모두가 함께 일하다가 점심을 먹은 후 오후 2시가 되면 오전 근무자들이 퇴근을 했어요. 오후 근무자들은 욕실 내의 샴푸, 린스, 바디클렌저, 치약 같은 욕실용품의 내용물들을 채워 넣고, 수조의 물 상태와 온도를 수시로 점검해야 했어요. 라커룸의 청결 상태를 살피는 일도 계속 이어졌고요.
오후 6시, 마지막 라운딩을 마친 손님들이 사우나에서 씻고 모두 빠져나가면, 하루의 마무리 청소가 시작되었다고 아빠는 말했어요. 그 시작은 200개의 라커룸을 모두 열어 환기 시키는 일이었지요. 그리곤 본격적인 청소가 시작되었어요. 라커룸 안에는 생각보다 많은 물건들이 남아 있곤 했어요. 주머니에서 오래 굴러다닌 듯한 휴지, 각종 영수증, 명함 같은 것들은 물론, 용도를 알 수 없는 열쇠나 자외선 차단제가 들어있는 파우치 같은 것도 있었지요. 가끔 지갑이나 옷 같은 분실물들을 챙기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런 것들은 따로 보관을 해 두었어요. 내부를 깨끗하게 청소한 후, 다음 날 사우나를 이용할 손님들을 위해 라커마다 슬리퍼를 다시 채워넣으면 라커룸 정리는 끝이 났어요. 열어둔 라커룸은 다음 날 아침까지 그대로 두었다가, 오전 근무자들이 출근해 하나씩 닫는다고 했지요.
사우나 안에서는 수조에 받아 놓은 물에 모터펌프를 연결해서 욕실 내부 벽면부터 청소했어요. 모든 샤워 부스와 선반, 작은 욕실 의자들까지 물청소를 마친 후, 마지막으로 파우더룸에 남아있던 휴지나 면봉 같은 쓰레기들을 정리하면 하루의 모든 업무가 끝났어요.
사우나 근무는 2인 1조로 나뉘어 새벽 5시 출근과 오전 11시 출근을 격주로 번갈아가며 했다고 하셨어요. 출근시간도 너무 이른 데다가, 손님맞이로 할 일이 훨씬 많은 오전 근무조가 훨씬 바쁘고 힘들었을 것 같아요. 그런데도 아빠는, 일찍 퇴근해서 오히려 오후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어 좋았다는 말씀을 잊지 않았어요. 새벽 4시에 집을 나섰던 10년 전 그날처럼요.
그곳에서도 아빠는 일하는 사람들 가운데 가장 연장자였어요. 빠릿빠릿하게 움직여야 하는 일이니, 처음엔 나이 많은 아빠를 뽑은 게 의아하게 느껴졌다고 했어요. 하지만 조금 더 일하다 보니 알게 되었다고요. 젊은 사람들은 일을 배우다가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금세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보니, 차라리 지긋이 일할 수 있는 사람, 그러니까 나이는 좀 많더라도 아빠 같은 사람이 나을 수 있었겠다고요.
그 말 끝에 아빠는 장난스럽게 덧붙였어요. 다행히 야무지지 못한 직원이 한 명 더 있었다고요. 아빠와 한 조로 일했던, 쉰을 갓 넘긴 김 아저씨였어요. 아빠보다 열 살은 더 젊었지만 몸짓은 거북이처럼 느릿느릿해서, 도리어 아빠보다도 굼떴다면서 껄껄 웃었어요. 그 말을 하는 아빠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마치 김 아저씨의 덕이라도 본 것 같았어요. 정작 아빠는 그분 대신 더 바지런히 움직이느라 바빴을 텐데 말이에요.
아빠는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파우더룸에 걸린 대형 거울 12개를 닦는 일이 가장 힘들었다고 했어요. 천장부터 바닥까지 이어진 거울을 닦으려면 의자나 화장대에 올라가 팔을 한껏 뻗어야 했는데, 그러자면 어깨와 팔에는 힘이 잔뜩 들어갈 수 밖에 없었지요. 애써 다 닦고 내려와 보면 거울엔 어김없이 걸레자국이 남아서, 마른 걸레로 몇 번이고 다시 문질러야 했다고요. 나중엔 요령이 생겨서 한두 번의 걸레질로 거울을 말끔히 닦을 수 있게 되었다며 아빠는 웃었어요.
하지만 오른손잡이인 아빠에게, 오른팔을 쓸 수 없었던 며칠은 정말 고됐을 거예요. 출근을 하루 앞둔 날, 자전거를 타고 약숫물을 떠오다가 넘어지는 바람에 오른손과 어깨를 다쳤기 때문이었지요. 멀리서 먹구름이 몰려오는 걸 보면서도, 그날 아빠는 왜 그렇게 약숫물을 뜨러 가고 싶었을까요. 아빠에게는 낯설기만 한 경주에서 유일하게 벗 삼았던 공간이 산이었기 때문일까요.
평소 같으면 천천히 걸어갈 길을, 자전거를 타고 서둘러 다녀오려다가 돌아오는 길에 비를 맞았다고 했어요. 모퉁이를 돌아 내리막길로 들어선 순간, 습한 바람이 얼굴을 덮치고 모자 챙이 눈까지 내려와 시야를 가렸다고요. 눈앞이 깜깜해진 상태로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젖은 길에 자전거가 미끄러지면서 아빠는 고꾸라지고 말았어요.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황급히 일어나 다시 자전거를 타고 부지런히 집으로 돌아왔다고 했어요. 도로에 차가 없었던 게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요. 집에 돌아와서야 오른손 장갑이 찢어지고, 티셔츠의 어깨가 헤져 상처가 난 걸 알아차렸지요. 상처가 깊어 병원 치료를 받느라 출근을 사흘 미룰 수밖에 없었고요.
그 시절의 흔적은 아빠 몸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나 봐요. 지난 달, 아빠는 어깨 통증 때문에 한의원에 다니기 시작했어요. 한의사는 팔순을 앞둔 아빠에게 '오십견'이라는 진단을 내렸지만, 아빠는 그때 오른팔을 쓸 수 없어 왼팔로 무리해 거울을 닦았던 탓이라고 했어요. 그 말을 하던 아빠의 목소리에는, 어려웠던 시절에 대한 회한도, 고단한 시간을 다 지나온 뒤의 후련함도 없이, 그저 담담함만이 남아 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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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간 목소리로 외삼촌과 마주쳤던 순간을 이야기해 주었을 때, 휴대폰을 붙든 저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 난감했어요. 그날 아빠는 오후 근무 중이었어요. 라커룸 바닥을 청소한 뒤, 손님들이 벗어놓은 신발들을 정리하고 있었지요. 그때 막 라운딩을 마치고 사우나로 들어서던 외삼촌과 딱 마주친 거예요. 아빠를 본 외삼촌은 꽤 당황한 얼굴이었다고 했어요. 아빠에게 여기서 무얼 하고 있느냐고 묻던 외삼촌에게, 아빠는 대답했지요.
"뭘하긴. 일하고 있지."
그곳에서 아는 사람을 마주친 일은 또 있었어요. 그날도 바닥 청소를 하면서 김 아저씨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는데, 어른키만한 옷장 너머에서 "국장님!"하고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고요. 오래 전 함께 일했다가 먼저 퇴직하고 사업을 하는 후배가, 목소리만 듣고도 아빠를 알아본 것이었지요. 20여년만에, 생각지도 못했던 사우나 라커룸에서 만난 두 사람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을까요.
아빠의 목소리를 들으며 저는 눈을 감고 있었어요. 아빠를 바라보는 외삼촌의 표정이 보이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빠의 표정은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어요. 평소처럼 웃고 있었을까? 아니면 아빠도 모르게 얼굴이 굳었을까? 숨기고 싶던 모습을 들킨 것처럼 얼굴을 붉혔을까? 내가 아는 모든 표정들을 아빠 얼굴에 덧씌워 보았지만, 모두 낯설게만 느껴졌어요.
결국 아빠에게 물었어요. 창피하지는 않았느냐고요. 제가 아빠였다면 분명 창피해서 어쩔 줄 몰랐을 테니까요. 그때 아빠는 모든 감정이 앙금처럼 가라앉은, 깨끗한 물 한 잔 같은 목소리로 대답했어요.
"당황은 했지만, 창피하지는 않았어."
아빠는 부끄러운 일을 한 게 아니라, 그저 맡은 일을 하고 있었을 뿐이라고요.
그 말을 들은 후에야, 저는 아빠가 그 순간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을지 조금은 알 것 같았어요. 담담한 얼굴로 가만히 미소를 짓고 있었으리라는 것을요.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그 동안 제가 창피하게 여겼던 많은 순간들이 이상하리만큼 사소하게 여겨졌어요. 아빠의 그 한 마디가, 저를 조금은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준 것 같았어요. 아마도 저는 그때 '용기'라는 말이 지니고 있던 진짜 의미를 처음 깨달았던 것 같아요.
아빠는 골프장 사우나에서 일한지 1년만에 일을 그만두었어요. 건강 검진에서 결핵 진단을 받았기 때문이었어요. 결핵이라니요. 그곳에서의 일이 얼마나 고되었는지, 그제서야 짐작이 되었어요. 아빠가 아파서 일을 그만두었다는 소식을 뒤늦게 들었을 때에도, 아빠는 여전히 밝은 목소리로 말했어요. 괜찮다고, 약 먹고 푹 쉬면 된다고요.
그렇지만 아빠는 치료를 받고 몇 달 후, 몸이 근질근질하다면서 또 다시 일을 시작했지요. 여기까지 적고 보니, 아빠가 대단하다 싶으면서도 정말이지 못말린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나저나, 엄마가 사우나에서 아빠가 외삼촌과 마주쳤던 이야기는 절대 쓰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었는데요. 엄마 말이라면 안듣기로 유명한 딸답게, 저는 결국 이렇게 쓰고 말았네요. 나중에 엄마가 이 글을 본다면 분명히 저를 나무랄텐데 말이죠.
그래도 그땐, 뭐든 솔직하게 쓰는 게 가장 좋다던 아빠가 제 편을 들어주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