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기 동물 배달원
아침 7시, 숲으로 둘러싸인 외곽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신호등도 없는 한적한 도로에서 60km의 제한속도를 지키며 달리는 차는 없었다. 핸들을 움직여 커브길을 지나고 나자, 새 몇 마리가 도로 바닥에 내려앉아 바쁘게 무언가를 쪼아 먹는 게 보였다. 가느다란 새들의 발밑으로 시커멓고 커다란 것이 누워있었다. 밤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것 같았다. 급히 차선을 변경하며 다가가자 새들은 날아가고, 하나가 아니라 세 개의 몸이 드러났다. 어두운 밤 여러 번 차에 치여 피까지 말라버린 어린 고라니와 바로 옆에 꼬리를 늘어뜨린 채 쓰러져있는 고양이, 또 그 옆으로 고양이를 안으려는 듯 반쯤 날개를 편 까마귀까지. 모두 아스팔트에 얼굴을 기댄 채 꼼짝도 않고 있었다.
로드킬이었다. 길을 잃고 당황한 어린 고라니가 차를 피하지 못해 쓰러진 후 고라니를 뜯어 먹으려 다가왔던 고양이가, 그 다음엔 역시 먹이를 찾아 도로 한가운데까지 날아온 커다란 새까지. 나는 눈을 가늘게 뜬 채로 시속 60km의 속도로 그 자리를 스쳐지나갔다.
앞으로 저들의 몸은 얼마나 더 납작해질까, 생각하다가 아빠가 떠올랐다. 아빠라면, 차를 세워 잠들어버린 저 짐승들을 수습했을 것이다. 묵묵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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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경선에 출마했다가 공천을 받지 못한 아빠는 다시 이주민센터로 돌아가, 약 3년간 그곳의 여러 가지 일들을 도맡았다. 이주민센터는 퇴직 이후 아빠 마음의 본거지였고, 그 안에서 아빠는 누구보다 성실했다.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여전히 시간이 남아돌았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사소한 일에도 엄마와 갈등이 생겼고, 시장 경선을 준비하며 큰 비용을 지출했다는 것이 불쑥 불쑥 아빠를 불안하게 했다. 불안이란, 알 수 없는 내일에 대한 생각이 꼬리를 물고 자라나는 것이었다. 그 불안을 몰아내려면 몸과 마음을 움직여 아빠 힘으로 시간의 물살을 건너야 했다.
그러던 2013년 가을, 지인의 소개로 아빠는 인근 도시의 유기 동물 보호소에서 일하게 되었다. 지자체에서 위탁을 받은 동물 병원에서 운영하는 보호소였다. 유기 동물을 발견한 시민이 시청에 신고를 하면 그 내용을 전달받은 유기 동물 보호소에서 현장으로 나가 동물을 구조했다. 아빠가 맡은 일이 바로 동물을 구조하여 보호소로 데려오는 것이었다.
아빠는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 축사에서 자라던 소나 돼지, 새벽부터 요란하게 꼬꼬거리던 스무 마리 남짓한 닭, 꼭 한번 마당에서 키우던 검둥개에 대한 기억은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어느 정도 자란 동물들은 오래지 않아 집을 떠났고, 그들과의 이별은 무덤덤한 습관이었다. 학용품을 사야 한다고 부모님을 아무리 졸라도 동전 하나 받지 못한 날이면, 아빠의 큰누나였던 고모는 어린 아빠 손에 조용히 달걀 한 알을 쥐어주었다. 소쿠리에 소복이 모이면 내다팔기 바빠 가족들이 마음 놓고 먹지도 못했던 그 동그란 것을 조심조심 들고 문구점에 가면 공책이나 연필과 맞바꿀 수 있었다. 어려웠던 시절 잘 키워서 팔면 밥이 되고 떡이 되는 것. 아빠에게 동물이란, 더 정확히는 가축이란 그런 것이었다. 가축은 사람과 분리되어 축사에 사는 게 옳았고, 인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동물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이 아빠에겐 익숙지 않았다.
동물을 쓰다듬는 것도 어색한 아빠가 동물을 구조한다니. 걱정하는 나와는 달리 아빠의 목소리에는 뭐든 적응 못할 일이 없다는 자신감이 배어 있었다. 아빠는 씩씩하게 유기 동물 보호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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씩씩했던 발걸음이 무색하게 아빠는 첫 구조작업부터 의기소침해졌다. 며칠째 주인도 없이 마을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개가 있다는 접수 내용을 확인하고 찾아간 곳은 노부부가 사는 시골집이었다. 마당에 들어서자 키가 자그마한 백발의 여성이 조그만 갈색 강아지를 안고 있었고, 남편으로 보이는 꼿꼿한 자세의 어르신 곁에는 커다란 개 한 마리가 어슬렁대고 있었다. 한눈에도 성인과 맞먹을 정도로 덩치가 큰 녀석이었다. 까만 눈과 커다란 입매가 사나워보여 아빠도 모르게 주춤, 뒤로 물러섰다. 구체적으로 떠올려본 적 없던 두려움이 밀려왔다.
이 일이 처음인 아빠를 돕기 위해 함께 나섰던 수의사가 목줄을 들고서 개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몇 차례 장난치듯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던 녀석은 수의사가 목을 쓰다듬어주자 털뭉치 같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더니 순순히 사람 손에 몸을 맡겼다. 그래 그래, 착하지, 개를 어르던 수의사가 목줄을 채우자 그 커다란 녀석은 어느새 켄넬에 들어가 있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수의사는 아빠에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개와 눈을 맞추고 천천히 다가가 부드럽게 어루만지면 개가 사나워지는 일은 없을 거라고 했다. 문득 아빠는 고개를 돌렸다. 동물을 운송하기 좋게 개조한 뒷좌석 켄넬 속에서 녀석은 얌전히 엎드려 눈만 껌뻑거리고 있었다. 모든 것이 처음인 아빠처럼 녀석도 어리둥절한 모양이었다.
보호소에 도착하고는 가장 먼저 구조한 개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기록했다.
“흰색 리트리버 믹스견, 추정 나이는 네 살에서 다섯 살, 남자, 목에는 오랫동안 끼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빨간색 나일론 목걸이 착용, ㅇㅇ면 ㅇㅇ마을에서 발견.”
사진을 찍어 구조견에 대한 정보와 함께 동물 보호 관리 시스템에 등록을 하고, 주인이 반려 동물을 찾을 수 있도록 지자체 홈페이지와 보호소 SNS 계정에도 게시했다. 법적으로 정해진 공고 기간은 열흘이었다. 그 다음엔 수의사가 건강 상태를 확인하기 위한 기본적인 검진을 했다. 전체적으로 건강하고, 중성화 수술도 이미 한 데다가 감염병 검사에서도 이상이 없었다.
성격도 좋고, 건강 상태도 좋고, 무엇보다 목걸이를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주인이 애타게 찾고 있을 거라고 아빠는 생각했다. 그러나 열흘 동안 이 녀석을 찾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루만에 주인이 찾아가지 않으면 열흘이 지나도 마찬가지라는 건 오래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다. 반려동물이 실종되어 주인이 찾고 있다면 지자체와 유기 동물 보호소에 실종 신고부터 하기 때문에 구조되자마자 데려가기 마련이었다. 그런 경우엔 절차대로 공고를 올릴 필요도 없었다. 구조한 동물이 주인을 다시 만나 집으로 돌아가는 경우는 백 번 중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할 정도로 아주 드문 일이었다. 지자체의 넉넉지 못한 예산으로 운영되는 보호소에서 법적으로 정해둔 열흘이 지난 후에도 동물을 보호하기는 어려웠다. 새로운 입양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그 다음은 안락사가 수순이었다.
아빠가 출근한지 보름 가까이 되어가던 날, 까만 눈을 껌뻑거리며 사육장에 엎드려 있던 커다란 흰둥이는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아빠가 들고 있던 켄넬 속에는 막 데려온 갈색 털이 덥수룩한 강아지가 웅크리고 있었다. 아빠는 비로소 보호소에 온 동물들에게 주어진 운명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아빠는 그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도 그저 받아들였다. 그것이 주어진 일을 이해하는 아빠의 방식이었다.
일 주일 가량 수의사와 동행했지만, 그 이후로는 아빠 혼자서 현장에 나가야 했다. 두려웠다. 오랫동안 길 위에서 생활했는지 온통 털이 뭉치고 냄새가 나던 누런 털복숭이도, 아빠를 보자 멀찌감치 서서 새된 목소리로 요란하게 짖어대던 조그만 얼루기도. 아빠를 바라보던 녀석들의 눈빛은 날카롭기만 했다. 수의사가 해 주었던 말을 기억하면서 우선 심호흡을 했다. 떨리는 마음을 숨기고 아빠를 경계하는 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긴장해서 뒤로 물러서던 개가 아빠와 눈이 마주치자 움직임을 멈췄다. 천천히 다가가는 아빠를 바라보다가 쓰다듬어주는 손길에 몸을 맡겼다. 아니, 오히려 그 손이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도 같았다. 그리고는 더 이상 긴긴 시간을 홀로 견디고 싶지 않다는 듯 녀석들은 켄넬 속으로 들어갔다.
몇 번의 경험을 하면서 아빠는 알았다. 아빠가 개의 눈빛을 읽듯 개도 아빠를 읽는다는 것을. 그리고 다시 한번 기꺼이 사람에게 마음 열기를 선택한다는 것을. 또 다시 상처받기를 두려워하는 인간보다도 개는 순진하도록 의연했다.
아빠의 근무시간은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였지만, 출근을 하기도 전에 구조 요청이 들어오거나 퇴근 시간이 다 되어 일을 하러 나가야 하는 경우도 잦았다. 유기 동물을 발견한 주민의 신고가 접수되면 지자체의 절차에 따라 구조가 이루어지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일단 신고가 들어오면 되도록 빨리 현장에 나가서 동물을 구조하는 게 옳았다. 보호소가 소속된 도시는 어촌과 농촌 그리고 도심이 어우러진 복합적인 곳인데다가 면적이 넓고 규모가 커서, 두 시간 이상을 차로 가야하는 때도 있었다. 신고한 주민이 유기 동물을 보호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 구조에 어려움은 크지 않은 편이었지만, 그런 날은 저녁도 못 먹고 늦은 밤 귀가해야 했다. 하지만 아빠에게는 그것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빠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이 고마웠다.
유난히 추웠던 아침, 아직 출근준비를 하고 있는데 유기 동물 신고가 들어왔다. 주소는 ㅇㅇ대학교였다. 평소보다 서둘러 대학교 앞에 도착하니 젊은 여성이 천가방을 들고 서 있었다. 가방 밖으로 하얀 말티즈 한 마리가 빼꼼히 머리를 내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빠가 다가가자 여성은 잠시 망설이더니 시선을 피하면서, 유기견을 데려가면 이후에 어떻게 되는 거냐고 물었다. 진하게 화장을 한 그녀의 얼굴빛이 하얗다못해 창백해 보였다. 아빠는 구조견에 대한 정보를 담아 공고를 올리고 입양을 희망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새로운 가족과 지낼 수 있도록 보내준다고 대답했다. 열흘이 지난 이후의 일들이 아빠 머릿속에서만 맴돌고 있었다. 그녀는 다시 무어라 말을 할 듯 입술을 떼다가 이내 다물어버렸다. 시선은 여전히 발끝에 둔 채 들고 있던 가방을 아빠에게 내밀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급한 일이 생긴 것처럼 몸을 돌려 학교 정문으로 들어가버렸다.
아빠는 천 가방에서 하얀 강아지를 안아 올렸다. 어느새 빨간 혀를 내밀어 손을 핥는 강아지를 켄넬로 옮기면서 아빠는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보호소에서 아빠의 이야기를 들은 수의사는 대번에 그 여학생이 키우던 강아지일 거라고 했다. 대학생 커플들이 강아지를 선물하고 함께 키우다가 헤어지면서 유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그 이후로 아빠는 여학생을 만났던 바로 그 대학교 근처에 갈 일이 여러 번 있었다. 그 곳에서 데려오는 강아지들은 하나같이 작고, 어리고, 예뻤다.
그 이후 아빠는 아빠가 하고 있는 일을 다시 한번 말없이 받아들여야 했다. 아빠는 유기 동물 구조원으로 일하고 있지만, 어쩌면 더 자주 유기 동물 배달원이 되어야 하는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