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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머리는 돌고돌아 아빠는 야근 중

- 음식물 쓰레기 자원화 시설

by 몽롱 Mar 0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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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기억은 조각조각 흩어져있다. 좁은 사무실에 북적대던 사람들, 사무실 앞마당에 차려 놓았던 출장 부페 음식 같은 것들이 떠오른다. 양가 어른들과 가족들, 친구들과 나누던 인사. 남편이 업무상 알고 지내던 분들이 많이 와서 누가 누구인지 다 알지도 못한 채 인사를 하느라 나는 정신이 없었다. 조용할 줄 알았던 개업식에 찾아와 준 사람들이 고마워서 주책맞게 눈물이 날 뻔했던 게 어렴풋하다.  

  그날은 우리 부부에게 무척 중요한 날이었다. 월급쟁이로만 살던 남편이 몇 년 동안 공부하고 준비해서 작게나마 사업이라는 걸 시작하는 날이었고, 동시에 굳은 의지와 노력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것들이 많다는 것을 혹독하게 배우는 인생 수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날이기도 했으니까. 정작 그날은 수업이 시작되었다는 것도 몰랐지만 말이다.

  꼭 한 가지, 어지러운 기억의 조각들 가운데에서 또렷하게 그려지는 것이 있었다. 눈을 감은 얼굴로 입꼬리를 올려 빙그레 웃고 있던 돼지머리. 개업식이 처음인 남편에게 고사를 잘 지내야한다고 조언해 주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특히 돼지머리를 좋은 걸로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웃는 표정을 짓고 있는 돼지머리가 큰 재물을 가져다 준다는 것이었다. 남편은 조언대로 고사상을 준비했다. 북어에 하얀 명주 실타래, 커다란 찜기에 그대로 담긴 시루떡, 과일과 막걸리, 그리고 숨을 거둔 후에도 순진하게 웃고 있는 돼지머리가 고사상 한가운데 떡하니 올려졌다.


개업식이 모두 끝나고 보니 돼지 얼굴은 사뭇 요란스러워져 있었다. 미소 짓느라 벌어진 입에는 하얀 봉투가 잔뜩 물려 있었고, 커다란 두 귀에는 퍼런 지폐가 돌돌 말려 꽂혀 있었다. 고사상 위에도 돼지가 다 물지 못한 봉투와 지폐가 어지러이 펼쳐져 있었다. 사업이 잘되기를 기원해준 사람들이 남기고 간 두둑한 봉투를 하나하나 챙기는 순간에는, 정말로 돼지가 많은 복을 물어다 주려나 보다 싶었다. 돼지에게는 미안하지만, 웃는 돼지머리 구하기를 잘했다고, 마음 속으로 생각했던 것도 같다.

  손님들이 모두 돌아가고 시끄러웠던 사무실이 조용해지고, 남은 건 음식들이었다. 시루떡은 개업식에 왔다가 돌아가는 손님들 손에 들려보내고 주변 상가들에도 인사차 부지런히 돌리고 나니 그럭저럭 처리(?)가 되었지만, 혹시 모자랄까 걱정했던 부페 음식들은 커다란 그릇들마다 여전히 가득했다. 다행히도 남은 음식들은 출장 부페 업체에서 그대로 수거해 갔다. 몇 시간을 마당에 차려져 있던 그 음식들을 가져다가 어떻게 처리하는 건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문제는 돼지머리였다. 마냥 미소짓고 있는 돼지를 처리할 방법이 없어 그대로 집에 가져와서는 퍽  난감해졌다. 잘 잘라서 수육을 해 먹으면 된다고 누군가 알려주어서 어찌어찌 머릿고기를 잘라 딱 한번 만들어 먹고나니, 더는 돼지 머리에 칼을 댈 자신이 없었다. 표정이 안 보이도록 비닐봉지에 싸서 냉장고 안쪽에 넣어둔 채로 몇 날 며칠 흘러만 가고 있었다.  

  햇살이 좋던 가을 오후, 주먹을 불끈 쥐고 일어나 부스럭거리며 돼지 머리를 꺼내 들고는 집을 나섰다. 내 발길이 머문 곳은 노란색 음식물 쓰레기통. 웃는 얼굴이라며 좋아할 땐 언제고, 이제는 곤란하다며 모른 체 변덕을 부리는 내 앞에서 돼지는 여전히 미소를 띠고 있었다. 뚜껑을 열고 비닐봉지를 뒤집어 돼지 머리를 쏟아 버렸다. 수십 가지 음식물이 섞여든 냄새나고 축축한 통 안에서 무거운 것이 떨어지는 둔탁한 소리가 들려오고, 무거웠던 비닐봉지가 손 안에서 한없이 가벼워졌다. 커다란 고민거리를 털어낸 듯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여느 날처럼 얼른 뚜껑을 닫고 돌아서서 두 손을 탁탁 털었다.


                                              *


그로부터 몇 달 후 아빠는 음식물 쓰레기를 축산 사료로 만드는 자원화 시설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기계 설비를 담당하는 직원 여섯 명과 함께 아빠는 시설을 총괄하는 소장직을 맡았다. 아빠가 다시 일하게 되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다른 곳도 아닌 '음식물 쓰레기'를 자원화 하는 시설에서 일한다는 것이 왠지 마음에 걸렸다. 결국 냄새나는 '음식물'의 '쓰레기'를 처리하는 곳에서 일하는 것이고, 이제까지 아빠가 해왔던 일들에 비한다면 청결과는 거리가 먼 일일 터였다. 이주민 센터에서 한국어 강사로 일하고, 요리를 배우러 다니면서 엄마에게 이런 저런 음식을 해 주는 것만으로는 만족스럽지 않았던 아빠는 일을 하게 되었다고 좋아했다. 나는 소식을 전하는 아빠의 기운찬 목소리만 마음에 담아두고 싶었다. 아빠가 좋다면 좋은 일이었다.

  막상 부모님을 뵈러 갔을 때, 엄마의 안색은 좋지 않았다. 퇴근을 하고도 회사에 다시 나가는 일도 잦고, 기계에 문제가 생겨서 툭하면 야근을 하느라 많이 힘들 거라며 아빠를 걱정했다. 토요일이었던 그 날도 아빠는 갑자기 일이 생겨 회사에 나가고 없었다. 엄마는 망설이듯 속삭였다.

  "늦게까지 야근을 하고 들어오면 네 아빠한테서 냄새가 나."

  나는 엄마에게 무슨 냄새가 나느냐고, 아빠가 많이 힘들어하느냐고 묻지 않았다. 나는 아빠가 또 다시 무엇을 견디고 있는지 알고 싶지 않았다. 아빠의 기운 찼던 목소리, 그 목소리까지만 듣고 싶을 뿐이었다.


음식물 쓰레기 자원화 시설은 하루종일 분주하게 돌아갔다. 이른 새벽부터 환경 미화원이 수거한 음식물 쓰레기를 시설로 실어오면 지하에 묻어 설치한 자원화 시설 투입구에 붓는다. 들어온 음식물들을 컨베이어 벨트에 실어 기계 안쪽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섞여 들어온 이물질을 분리한다. 우선 숟가락, 젓가락, 식칼 같은 쇠붙이들을 자석으로 가려낸다. 아무리 새로운 과일 포크 세트를 구입해도 시나브로 사라져버렸던 우리집 수많은 포크들의 미스터리한 행방을 나는 뒤늦게 알게 되었다.  가장 많이 나오는 비닐봉지, 도마나 헹주, 어떻게 거기에 들어가 있는지 알 수 없는 커다란 그물 같은 것들도 음식물들 사이에서 골라내야 한다.

  그 다음 탱크로 옮겨지면 음식물들을 물에 헹구어 남아있는 염분을 제거한다. 가축들이 먹을 사료에 염분기가 남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음식물 사이에 남아있던 나뭇조각이나 플라스틱, 돌멩이 같은 이물질들을 한 번 더 걸러낸다. 염분을 제거한 음식물들은 잘게 분쇄를 한 후에 탈수 과정을 거쳐 물기를 제거한다. 마지막으로 열처리를 하여 음식물을 건조시킨다. 이렇게 만들어진 사료는 원하는 축산 농가에서 가져다가 사용할 수 있다.


쉽게 예상할 수 있듯 여름이면 악취가 무척이나 심했다. 이른 새벽 음식물 쓰레기를 수거하지만, 이미 가정에서 하루 이틀 두었다가 버려진 쓰레기는 그 사이에 더 상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탈수한 음식물을 고온에 가열하여 건조시키는 과정에서 음식물에 생겼을 모든 균들은 사멸하기 때문에 안전한 사료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사료를 만드는 과정에서 나오는 가스나 냄새가 축적되면서 점차 시설 주변으로 퍼져나가며 영향을 주었다.

  우리나라 음식의 특성상 물기와 기름기가 많이 섞여있다보니 겨울이면 음식물들이 얼어서 문제가 되었다. 기온이 점차 낮아질수록 기름기가 굳어서 음식물들이 기계 안에서 꾸덕꾸덕 엉겼고, 추운 날이면 얼어버린 음식물들이 설비 안쪽으로 흘러들어가지 않아 포클레인으로 밀어넣어야만 했다. 음식물 쓰레기의 양이 평소보다 훨씬 늘어나는 설 명절 직후는 그래서 더욱 바빴는데, 그런 와중에 기계가 고장이라도 나면 몹시 난감했다고 아빠는 기억했다. 그런 밤이면 직원들이 밤새 잠도 못자고 일을 해야했고, 아빠 역시 고생하는 직원들을 두고 퇴근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설비 주변을 아무리 밀봉해도 새어나오는 악취가 아침부터 밤까지 떠나지 않는 시설에서 길고 긴 하루를 보내고 나면 직접 기계를 다루지 않았던 아빠 몸에도 어느새 냄새가 고였다.


15년 전에는 아빠에게 차마 묻지 못했던 것을 이제서야 물었다. 깔끔한 아빠 성격에 냄새를 견디는 일이 쉽지 않았을 거라고. 얼마나 괴로웠느냐고.

  아빠는 문득 내가 유치원에나 다니고 있었을 무렵, 그러니까 가정에서 일반쓰레기와 음식물 쓰레기를 분리배출하기도 전이었던 시절의 이야기를 꺼냈다. 아빠가 일하던 관내 소속 환경미화원들이 자신들이 머무는 휴게소에 샤워장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하는 일이 있었다. 환경미화원에 대한 처우 개선으로 이미 목욕비를 지급하고 있던 터라 처음엔 이해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알고 보니 대부분의 환경미화원들이 목욕비를 받으면 어려운 살림에 보태기 바빴던 것이다. 무엇보다 오랜 시간 쓰레기 냄새 속에서 일해 온 탓에 대중목욕탕에서 아무리 땀 빼고 때 밀고 박박 비누칠을 해도 그때 뿐, 몸에 밴 냄새는 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 일을 그만두지 않는 한, 돈 내고 대중목욕탕까지 가서 씻는 건 그들에게 아무 보람도 없는 일이었다. 처음엔 냄새에 민감하던 가족들조차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무뎌져서 나중엔 거의 느끼지 못하게 된다고 했다. 온 신경을 곤두서게 하는 지독한 냄새에 후각이 마비되지 않는다면 도대체 어떻게 되겠느냐고 아빠는 내게 되물었다.


기계에 문제가 생겨 가동이 멈추고 늦게까지 야근을 하던 어느 밤도 그랬다. 멈춰선 기계 덕분에 아직 처리하지 못한 채 회사 마당에 냄새를 풍기며 쌓여있던 음식물 쓰레기와 멈춘 기계 안에서 엉겨버린 음식물 사이에서 발을 동동 구르던 아빠의 몸에 도시 곳곳에서 도착한 냄새들이 섞여 고여갔다. 발목까지 내려온 바짓단에, 주름진 무릎 뒤에, 점퍼의 소맷깃에, 피곤에 지친 두 어깨 위에, 목에 닿는 셔츠 칼라 테두리에, 그러고는 아빠의 커다란 코에 도착해서는 후각을 마비시켰다. 아니 아빠는 바랐을 것이다. 아무리 해도 사라지지 않는 냄새와 겨울이면 더 자주 멈추는 기계때문에 졸아들던 마음이 차라리 마비되기를. 그런 밤이면 기계 속 터널에 고여있던 음식물처럼 아빠의 시간은 얼마나 걸쭉해졌을까.

  담당 직원이 멈춘 기계를 확인하고서 작업용 고무 장갑을 낀 손으로 꺼낸 것은 커다란 돼지머리였다. 기름진 물기에 젖은 채로 벌건 고춧가루와 부서진 음식물 잔해들이 덕지덕지 묻어있던 돼지머리. 복을 달라고 조르기만 하다가 쓸모 없다며 내다버린 돼지머리는 1년 넘도록 푸진 음식물 쓰레기 바다를 투실투실 떠다니다가 아빠에게 도착한 것이었다. 멈췄던 기계가 작동하자 고여서 도통 흐를 줄 모르던 아빠의 시간이 꾸역꾸역 흐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언제 다시 멈출지 알 수 없었다.

  내가 버린 것은 되돌아오게 되어 있었다. 나에게 돌아오는 게 아니라면 아빠에게로, 야근을 하고 들어온 아빠의 냄새를 모른 체하던 엄마에게로, 엄마가 아니라면 또 다시 남편에게로. 죄없는 돼지는 일그러진 미소를 지은 채 복 대신 냄새를 부르는 얼굴이 되어 언젠가는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는 그 냄새를 감당해야만 했다.  


아빠가 음식물 쓰레기 자원화 시설에서 1년도 채 일하지 못하고 그만둔 것은 악취 때문이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아빠는 빗발치던 민원과 지자체의 시설에 대한 책임 추궁이 무척이나 괴로웠다고 말했다. 그것도 결국 냄새  때문이었다. 관련 기사를 찾아보니 요즘은 기술이 많이 좋아져서 악취 문제가 상당히 많이 개선되었다고 한다.

  만약 지금과 같은 환경이었다면, 냄새가 조금만 덜했다면, 일하는 것을 좋아하는 아빠가 그곳에서   오래 일을   있었을까.


아니라고 했다.

그 즈음 아빠답지 않게 '허무맹랑한 욕심'이 생겼기 때문에 그만둔 거라고 아빠는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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