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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여름 Feb 05. 2024

winter blue

영어점수가 바닥을 기면서도 스무 살이 되자마자 40일 동안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난 나는 누가 봐도 용감한 청년이었다. 귀국일을 일주일을 남기고 향수병에 걸린 바람에 초코 비스킷에 튜브 고추장을 발라 먹으며 호스텔 침대 안에서 앓아누웠지만, 나머지 날들은 꽤 씩씩하게 세상을 구경했다. 그래서 나는 혼자서도 무엇이든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가족들과 떨어져 혼자 서울에서 살게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외로움을 별로 타지 않았다. 적어도 고향에서는 그랬다. 내성적인 편이라서 친구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지만 아무리 멀어도 삼십 분이면 닿을 거리에 그들이 있었고 친구들이 바쁘다면 2살 터울의 동생이 완벽한 벗이 되어주었다. 30년 동안 격동의 부부싸움을 함께 견뎌낸 우리에게는 모종의 전우애 같은 것이 생겨서 남들이 보기에는 신기할 정도로 친한 오누이가 되었다. 또 그 사람 자체가 나와는 다르게 정이 많고 다정한 이라서 함께 노는 대부분의 시간이 즐거웠다.

동생이 집에 없어 심심한 날에는 하루 종일 부모님과 수다를 떨 수도 있었다. 으레 부모님과의 대화는 잔소리로 끝이 나기 마련이니까 썩 내키는 일은 아니었지만. 남자친구는 있거나 없었지만 내 삶에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다. 그 맘 때쯤 나에게 있어서 애인이란 없으면 갖고 싶고 있으면 귀찮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어쨌든 방문만 열고 나가면 늘 대화할 사람들이 있었다. 때로는 하도 말을 걸어서 귀찮을 정도였다. 그래서 외로울 틈이 없었다는 것은 생각하지도 못하고 그저 내가 자립심이 강한 사람이라고만 여겼다.


하지만 직접 경험해 보기 전까지는 진짜 나의 모습을 알 수가 없는 법이다. 내가 어떤 사람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가? 나 자신을 아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실제 모습은 생각했던 것과 전혀 반대의 방향일 때도 있다. 그때의 나처럼.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의 디자인 회사에 취직하게 되면서 처음으로 가족과 떨어져 살게 되었다.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어서야 스스로가 외로움에 극도로 취약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가족에 대한 외로움에 대해서는 말이다. 외로움에도 종류가 있었다. 연인이 채워줄 수 있는 외로움과 친구가 채워줄 수 있는 것, 가족이 채워줄 수 있는 부분이 제각기 달랐다. 그것은 개별적이고 상호보완이 되지 않는 감정이었다.

남자친구의 따뜻한 품에 안겨서도 외로워서 울었다. 친구도 가족도 없는 차가운 서울 바닥에서 오직 그만이 위로가 되었으나 넘치는 그의 사랑도 다른 이들에 대한 외로움까지 채워주지는 못했다. 그가 부족한 탓이 아니었고 오로지 내 감정의 문제였으니 그가 해결할 수 없는 것은 당연했다. 새벽 3시에 전화를 해도 한걸음에 달려와 나를 안고 토닥여 주던 연인이 있었지만 나는 오랫동안 향수병을 앓았다.


외로움이 특히 심해지는 계절이 있다. 12달 중 10달은 외롭지 않고 2달은 외로운데, 늦가을에서 초겨울로 넘어갈 무렵이면 갈피를 못 잡고 바람에 쓸려 날아다니는 흰나비처럼 감정이 요동을 친다. 외로움이 어쩌지 못할 정도로 커지면 탈피하여 우울감이 되었고 그것은 나를 감정의 바닥에 묶어 침대에 고치를 틀게 했다. 어떤 해에는 심했고 다른 해는 덜하기도 했지만 불행하게도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는 해는 없었다. 재작년 겨울에는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도 집으로 올라가지 못해서 한참을 차 안에 앉아서 핸들에 머리를 박고 있었던 적도 있다. 원래 감정이 예민한 편이긴 하지만 유독 ‘지랄도 병이다.’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겨울이 빨리 지나가길 간절히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신기하게도 날이 따뜻해지면 병은 씻은 듯 사라졌기 때문이다.

 

어느 날 우연히 인터넷 기사에서 나와 같은 증상을 보았다. 윈터블루(winter blue), 혹은 겨울우울증이라고 했다. 계절성 행동장애라고도 하는데 특정 계절(주로 겨울)에만 우울한 감정이나 불면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 정신질환으로 봄에는 자연적으로 완화된다고 했다. 지독한 동면에 시달리다가도 봄의 오면 깨어나는 것이 반가운 봄의 마법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심술궂은 겨울의 농간이었다.


어쨌거나 나뿐만 이런 증상을 겪는 것이 아니라니 마음 한편으로 안심이 되었다. 외로움과 우울감은 어쩔 수 없이 견뎌야 할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이것이 정신병이며, 치료대상이 된다고 생각하니 더 이상 두렵지가 않았다. ‘올해는 아프면 병원에 가야지.’ 다가오는 겨울, 지랄도 병인 계절이 죽지도 않고 다시 오면 더 이상 어두운 차 안에서 궁상떨지 않고 햇빛을 자주보고 병원에 갈 것이다.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병이라는 것은 치료하면 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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