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와 함께 한 뚜벅이 강릉 여행
아기가 생후 3개월이 되었을 때 새 대통령이 나타났다. 그로부터 37개월 후 아기는 또 다른 새 대통령을 맞이하게 되었다. 살다 보니 겪게 된 색다른 경험 덕분에(?) 갑자기 등장하게 된 대통령. 한국사에 기록될 중요한 날이지만 아직 대통령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는 아기에게는 어린이집을 안 가는,
잔뜩 기대에 부푼 날, 아기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오픈런으로 투표를 한 뒤 강릉을 향했다. 강릉이 목적지가 된 가장 큰 이유는 40개월 인생에 처음 타보는 기차 타기 때문이었다. "기차는 트뤠인이고 지하철은 섭웨이야~" 라며 혀를 굴리는 아빠. 짧디 짧은 영어를 알려주고 탑승한 인생 첫 기차에서 아기는 꽤 집중하여 창 밖을 구경하며 기차를 즐겼다. 집중력이 떨어질 때는 "기차는 빨라 빠르면 비행기~"같은 노래를, 혹은 "티티티자로 시작하는 말~" 같은 말잇기 놀이를, 혹은 보라누나와 브로디가 되어(어린이날 만났던 베베핀 캐릭터) 상황극을 하며 시간을 보냈고
매번 차로 이동하다 보니 오랜만의 뚜벅이 여행이 낯설지 않을까 싶었는데 첫 기차 여행은 낯섦을 떠나 의외의 괜찮은 구석이 있음을 발견했다. 이곳저곳을 부랴부랴 다니지 않고 한적하게 돌아다니는 여행. 걷다 보니 발견한 의외의 곳에서 행복을 느끼게 된 여행. 시간이 흘러가는 대로 거리가 닿는 대로 맞추어 즐기는 여행.
옥수수 아이스크림을 파는 카페로 가려다 길을 잘못 들어 알게 된 소나무 숲. 오션뷰 카페에 엄마만 덩그러니 놔두고 한참을 뛰놀던 해변가. 골목길을 걷다 냄새가 나서 쳐다본 철조망에 있던 오리와 닭들(동물애호가 아기는 동물을 본 것이 가장 좋았다고 한다)
그것이 혁신이든 개발이든 쇠퇴든 나락이든. 쌓이는 순간들은 언젠가는 큰 일로 발전하는 자양분이 되는 것 같다. 오늘의 첫 기차 순간이 훗날 아기에게 좋은 영향력으로 이어지기를, 오늘의 투표가 훗날 아기에게 좋은 시대로 연결되기를 바라는 것처럼 말이다. 누가 될지는 모르겠지만(아기는 경비 아저씨를 닮은 인물을 대통령으로 선택하긴 했다) 인생 첫 기차를 탄 아기에게 두 번째 대통령은 부디 희망하는 성군이 되길 조심스레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