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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생활자 Jul 13. 2020

시골로 오기 전의 나

시골에서 살면서 내 삶의 속도는 현저히 느려졌다. 상상할 수 없던 일이었다. 매일을 끓어 넘치는 냄비처럼 과잉된 상태에서 살던 나였다. 이렇게 비효율적으로 살아도 되는 걸까 싶을 정도로 잉여시간이 넘쳤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남편과 함께 운영하던 회사는 괘도에 오른 상태였다. 몇 년을 공들인 만큼 크게 애쓰지 않아도 일은 계속해서 들어왔다. 아이를 낳고 한 달 뒤, 업무에 복귀했다. 밤에는 아이 옆에서 쪽잠을 자고, 아침엔 보채는 아이를 어린이 집에 맡기고, 쏟아지는 업무를 숨도 쉬지 않고 몰아치다가,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데리고 집에 와서 가족들의 저녁식사를 차리고, 밀려있는 집안일을 하다가 잠이 드는 일상이었다. 체력단련이나 극기훈련처럼 매일매일 허덕였지만, 멈출 수 없었고, 멈춰지지도 않았다. 




남편은 집안일엔 무심한 사람이었고, 아이를 낳은 다음 해 교통사고로 어깨를 다쳐 몇 년간 육아는 오롯이 내 몫이었다. 더욱이 일 년에 3~4개월은 해외출장으로 회사와 집을 비웠기 때문에 사장님(남편)의 공백은 물론, 아이 아빠의 공백까지 내가 메꾸고 채워 나가야 했다. 너무 힘들어서 둘째 생각은 하지 못했다. 아이를 낳고 2년은 괜히 아이를 낳았다고 후회했다. 


똘똘해 보였던 아이가 다섯 살까지 말을 잘 못했다. 생일이 느리다며 기다려주다가 결국 언어에 대한 발달검사를 받았다. 언어치료 선생님은 아이가 영상물을 많이 보았느냐고 물었다. 아니라고 말하지 못했다. 살림도 하면서 내가 쉬려면, 뽀로로를 틀어주는 수밖에 없어서 저녁식사 전후로 TV는 줄곧 틀어져 있었다. 아이의 영상물 시청을 자제하고 언어치료를 받으면서 아이의 말문은 쉽게 트였다. 하지만, 아이의 언어발달에 대해 죄책감도 갖지 못할 만큼 나는 대안을 갖지 못했다. 


서울생활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한 장면은 아이가 자주 갔던 아파트 안의 놀이터다. 아이는 신나게 놀았지만, 나는 그곳에 내가 왜 있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단지 아이를 지켜보기 위해 그곳에 머무르는 나는 공허했다. 빈 깡통처럼 속이 텅 비어서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고 무엇도 하지 않고 벤치를 지켰다. 내 삶에는 내가 없었다. 누군가를 위해서, 무언가를 위해서만 존재했다. 그 시간이 공허했다. 


누구나 살아가기 위해 완급조절을 한다. 일을 선택하는 대신 육아를 포기하거나, 육아를 위해서 일을 포기하는 여자들, 사회적 성공을 위해 가정을 포기하는 남자들도 있다. 무언가를 잘 해내기 위해서는 다른 것들을 포기하는 것이 맞는데, 나는 모든 것을 손에 쥐고 있었다. 일도 해야 했고, 육아도 해야 했고 다 잘하지 못하면, 스스로를 질책했다. 작은 일에도 줄곧 화가 났고  부부관계는 무너진 지 오래였다. 


어떻게도 할 수 없는 막다른 길에 다다르면, 아프다며 방 안에 혼자 틀어박히곤 했다. 도망갈 곳이 없었던 것 같다. 쉬어야 하는데, 쉬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그렇게 살다가 시골로 왔다. 첫해는 너무나 힘들었다. 갑자기 맥이 탁 풀리는 느낌이었다. 시골에서는 서울처럼 삶을 몰아쳐서 살 수가 없었다. 타의적으로 많은 것들을 포기했다. 그렇게 되고 나자 삶이 너무 편해졌다. 너무너무 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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