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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신우 Aug 12. 2024

세상에서 가장 강한 이름, 엄마

이번 주말은 혹서기로 인해 경마를 한 주 쉬어가는 주간이다. 거의 매년 혹서기, 혹한기, 추석, 설날 같은 명절을 포함해서 네 번은 경마를 쉰다. 한 주 경마를 쉬는 건데도 이곳 경마장은 꽤 여유롭게 느껴진다. 아마도 1년에 네 번밖에 없는 쉼이라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다.

이번 휴장기를 맞아 3년 만에 부모님을 뵈러 내 고향 마산에 다녀왔다. 시간이 있어도 쉬이 고향에 내려가게 되지 않았다. 연세가 칠순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아직 청소일을 하고 계시고 또 둘째 오빠는 지병을 앓고 있어서 집에 내려가면 마음이 편치 않아서 쉽게 가지 않게 되었다.


내가 경마장에 들어올 때 즈음에 엄마의 나이는 지금 내 나이와 비슷했다. 나는 아직도 어린 사춘기 소녀 같은 마음인데 그때의 엄마 나이와 지금의 나를 비교해보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아직도 엄마의 막내딸 어리광쟁이 같은데. 그 시절 내 나이의 엄마는 중년의 지긋한 어른의 모습으로 기억에 남아 있으니 말이다.

나는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가정에 경제적인 지원을 해왔다. 오빠의 병원비를 비롯해 집안에 급한 돈이 필요할 때마다 엄마는 나에게 경제적인 지원 요청을 했다. 스무 살이 되던 해부터 30대 초반까지 지원을 했으니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니었다. 그 사이에 엄마는 또 림프암 말기 판정을 받아서 병원비까지 내가 홀로 감당해야 하는 시기도 있었다. 당시에는 나 혼자 왜 이렇게 무거운 짐을 짊어져야 하는지 원망도 많이 했다. 물론 지금 돌이켜 보면 나라도 그런 도움을 줄 수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지만 말이다.


마흔이 넘어서도 부모님과는 약간의 거리감이 있었다. 과거의 나의 힘듦이 트라우마로 남아 있어서일까. 그리고 엄마로부터 걸려오는 전화가 한때는 두렵기도 했다. “또 뭐가 필요해서 나한테 전화를 하는 거지?” 우선 이런 생각부터 앞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칠순이 넘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청소일을 하시는 어머니를 볼 때면 안쓰러운 마음이 앞선다. 굳이 힘들게 아픈 몸을 이끌고 일을 하지 않으셔도 되는데 말이다.

그런데 내 생각과는 다르게 엄마의 말씀은 이러했다. “이 나이에도 누구 도움 없이 스스로 몸을 움직일 수 있고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줄 모른다.” 그러면서 너무나 자신을 뿌듯해하시는 것이다. 내 눈에만 엄마가 안쓰러워 보일 뿐이지 엄마의 입장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시고 말씀하시는 엄마의 말을 듣고 나도 깨닫고 반성하는 부분이 있었다. 이렇게 젊고, 매력적인 직업까지 가지고 있는 나를 스스로 감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릴 적에는 3남매를 키우며 매일 술에 취해 들어오시는 아버지까지 감당하는 엄마의 삶을 보면서 저렇게 살 거면 왜 결혼을 할까? 생각한 적이 많았다. 당신 자신의 삶은 온데간데없고 오롯이 가정을 위해 희생하고 참고 견디는 삶이 엄마의 삶인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어릴 적부터 ‘절대 엄마처럼 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해왔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나 자신을 위한 삶을 살겠다’고.

하지만 엄마가 자신의 삶이 그렇게 될 거라 생각하고 선택한 건 아니었을 것이다. 누군가의 뒷바라지를 하고, 힘겹게 가정을 지키면서 자신의 꿈을 포기한 채 살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을 것이다. 엄마도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소중한 딸이었을 테고. 10대 때는 사춘기 시절도 있었을 테고, 20대 때는 젊음의 봉긋한 사랑의 감정이 한껏 싹트는 시절도 있었을 텐데. 스무 살이라는 꽃다운 나이에 아빠에게 시집와서 오빠 둘과 나를 낳고 살면서 20대, 30대, 40대를 지나 70대까지… 오롯이 가정을 위해 헌신하며 살 거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한때는 엄마도 꿈 많은 소녀 시절이 있었을 여자인데 말이다.


수년간 엄마와 왕래도 뜸하고 전화 연락조차 자주 하지 않은 긴 시간이 있었다. 가끔은 서먹할 정도로 관계가 소원한 적도 있었다. 최근 우연히 유튜브 영상을 통해 국민 연예인 이효리가 엄마와 함께 가는 여행프로그램을 재밌게 본 적이 있다. 이효리 역시 어린 시절 (똑같지는 않지만) 나와 비슷한 환경 속에서 부모님과 거리감이 있었다는 것을 프로그램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시청자 입장에서 이효리도 공감이 되면서 동시에 이효리 씨의 엄마 마음도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나의 엄마 얼굴이 떠올랐다. 그 프로그램 이후 거의 매일 엄마와 통화를 한다. 이효리와 엄마 사이를 보는 내 입장에서는 서로의 입장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고 간접적으로나마 나도 나의 엄마를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엄마와 통화를 하고 안부를 묻고 엄마의 얘기도 들어드리고 나의 얘기도 숨김없이 하는 사이가 되었다. 역시 세상에 둘도 없는 내편인 엄마가 있었다는 것을 새삼 깨달으며 아직 엄마가 건강하게 살아 계시다는 것에 새삼 감사함을 느낀다. 최근 마음이 공허하고 외로움도 많이 타고 있었는데, 엄마와 얘기를 하며 마음의 빈자리가 가득 채워지는 것만 같아 정말 따뜻했다.  


“요새 너랑 매일 통화하면서 내가 얼마나 행복한 줄 아니?”

휴장기를 맞아 3년 만에 고향 집에 가서 부모님께 맛있는 것도 사드리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엄마가 나에게 한 말씀이다. 나와 매일 대화를 나누는 요즘이 정말 행복하시다고. 하지만 오히려 나는 내가 엄마로부터 얻는 게 더 많다고 생각한다. 삶을 살아가는 데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또 내 편이 되어주고 나를 위해서는 지옥불에도 뛰어들 것 같은 나의 엄마가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며 다시 일터로 돌아왔다. 엄마란 존재는 자식을 위해서라면 당신 한 몸이 중요치 않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불사조 같이 느껴졌다. 든든하고 행복했다. 나는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도 없어서 엄마의 위대한 사랑을 전해주지 못하지만 나를 위해 뭐든 아끼지 않고 내어주시는 엄마를 더 깊이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와의 시간이 영원할 수는 없지만, 이제라도 조금 더 서로 자주 연락하고 좀 더 많이 사랑한다고 이야기해야겠다. 엄마가 있어서 행복하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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