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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진 May 11. 2021

Lee sang ...매우 부끄러운 나.

시제 13호

내팔이면도칼을 든채로끊어떨어졌다. 자세히보면무엇에몹시위협당하는것처럼 새파랗다. 이렇게하여잃어버린내두개팔을나는촉대세움으로내 방안에장식하여놓았다. 팔은죽어서도 오히려나에게겁을내이는것만같다. 나는이런얇다란예의를화초분보다도사랑스레여긴다.


위독 <침몰>

 죽고싶은마음이칼을찾는다. 칼은날이접혀서펴지지않으니날을노호(怒號)하는초조가절별에끊치려든다. 억지로이것을안에떼밀어놓고또간곡히참으면어느결에날이어디를건드렸나보다. 내출혈이빽빽해온다. 그러나피부에생채기를얻을길이없으니악령나갈문이없다. 갇힌자수(自殊)로하여체중은점점무겁다.


역단<행로中>

아픈것이비수比首에베어지면서철로와열십자十字로어울린다. 나는무너지느라고기침을떨어뜨린다. 웃음소리가요란하게나더니 자조自嘲하는표정위에毒한잉크가끼얹힌다. 기침은사념思念위에그냥주저앉아서떠든다. 기가탁막힌다.


역단<가외가전 中>

훤조때문에마멸磨滅되는몸이다.


이상(李箱)시인의 시를 우연히 읽게 됐다.

우연히 눈에 들어왔는데 여운은 매우 크다. 오랫동안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글이 슬프게 느껴진다.

훤조, 마멸...이라는 난해한 단어, 의미 있는 단어가 스스로 절제된 체 있어야 할 제 위치에 정확하게 박힌 듯한 문구. 마치 오래전부터 정해진 듯한 진리 같은 글들...


자신의 감정에 따라 띄어 읽기를 바라는 듯한 그의 강력한 힘.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도 띄어지지 않고 적힌 글을 그대로 소리 내어 읽다 보면 그냥 눈물이 난다.


도형과 영어, 기호를 시에 녹여버린 이상의 글,

나 같은 사람은 감히 이해할 생각조차 갖지 못하게 만든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의 해석은 다 틀렸을 것이다. 

그의 시는 너무 난해하여 해설집이 많지만 타인의 해석을 보기 전, 

무지한 나의 첫 느낌을 글로 꼭 적고 싶었다. 


필력(筆力)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 게 해주는 글이다. 

글에서 강력한 힘과 여운이 동시에 느껴진다.


도대체... 뜻도 모르는 글이 나를 매우 부끄럽게 만든다.


그 시대 지식인들의 고뇌가 어느 정도였을까...

그는 어떤 삶을 살았기에 이런 글을 적을 수 있었던 걸까?


이제 차분하게... 그를 알아봐야겠다. 

브런치 작가에 선정된 후, 괜히 들떴던 나... 100년 전의 그에게 호되게 혼났다. 


난 매우 부끄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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