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짜 은수......?"
은수가 예상했던 질문이었다. 다영은 은수를 남자로 알고 있을 테니. 은수 역시 다영이를 남자라고 알았으니까. 그들은 '부산, 경상도, 고등학생'이 세 개의 키워드만으로 검색했고 자기소개엔 똑같이 성별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은수가 다른 의도를 갖고 다영을 속인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당황스럽기로 치면 나 역시 만만치 않다고 말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은수를 여자로 알고 있는 다영과 달리 은수는 다영이가 여자라는 것을 오래전에 알았기 때문이다. 시커먼 남학생들에게선 나올 수 없는 섬세한 말투와 성격, 메일 중에 나오는 여학생들만 쓰는 단어들. 이를테면, 생리기간이나 생리대 같은 것들이다. 그래서 은수는 자신이 남자라고 고백할 수 없었다. 자신이 남자라는 게 밝혀지면 다영이와 메일이 끊어질까 봐 겁이 났기 때문이다. 결국 은수는 끝까지 남자라는 것을 밝히지 않고 다영이가 스스로 알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나중에 안 다영이가 화를 내면 사과하고, 때리거나 욕을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은수의 생각과 달리 다영은 차분했다. 얼굴이 붉어지며 가늘게 떨리는 가는 목소리로 힘겹게 다시 질문했다.
"네가 진짜 은수......?"
"많이 놀랬지? 미안해. 진작 말하려고 했는데 타이밍을 놓쳤어."
타이밍을 놓쳤다기 보단 연락이 끊길까 봐 두려웠지만 솔직하게 말할 수 없었다. 붉게 변한 다영의 얼굴이 곧 새하얘졌다. 가만히 놔두면 길에서 쓰러질 것만 같아 은수는 억지로 다영을 끌고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커피숍은 그린계열로 꾸며져 있었는데 커튼으로 나뉜 작은 방 8개가 중앙 홀을 감싸고 있었다. 중앙홀엔 같은 한 무리로 보이는 사람들이 테이블을 모두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분임과제 중인지 전공서적과 노트들이 어지럽게 펼쳐져 있었다. 은수는 아무래도 조용한 곳이 낳을 것 같아 커튼이 열린 방 중 안쪽으로 다영을 안내했다. 곧이어 종업원이 들어왔다. 은수는 평소 다영이 좋아한다는 얼그레이 차와 유자차를 시켰다.
"네 성격이 굉장히 활발하다고 생각했어. 지금 생각하면 그동안 네가 남자였단 것을 모르는 내가 참 어리석었던 것 같아. 핸드폰으로 연락할 때도 문자만 했었으니까. 네가 여자라고 한 적은 없으니까. 네가 날 속인 것만은 아니네."
"네가 나를 여자로 알고 있다는 것을 꽤 오래전에 알았어. 근데도 말을 안 하고 있었으니 내 잘못이 맞아. 그런데 내가 남자라고 하면 네가 더 이상 메일을 보내지 않을까 봐 두려웠어. 그리고......"
중앙홀이 웅성웅성 시끄러워졌다. 모임이 끝났는지 자리에서 대여섯 명의 무리 중 한 명이 은수와 눈이 마주쳤다. 정혁이었다. 은수를 본 정혁은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거 봐. 어차피 만나게 됐다니까. 안녕? 네가 다영이지? 나 은수 친구 정혁."
이래저래 당황한 다영은 은수를 바라봤다. 혼자서만 웃고 있는 정혁을 사이에 둔 채 은수와 다영은 서로를 말없이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