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후 Lapres midi Sep 14. 2023

죽어도 학교에 가서 죽어야 한다고 배운 엄마의 교육법

ㅈ ㄹ 총량의 법칙

# 오전, 차 안

남편 : (핸들을 잡은 채로) 어제 딸이 그러더라. 요즘 엄마가 아빠한테 짜증을 덜 내는 것 같대. 대신 그 짜증이 자기한테로 온 것 같대. 

아내 : (기가 막혀하며) 내가 요즘 자기한테 짜증을 많이 낸다는 뜻인가?

남편 : 그렇지.      

여기에도 ㅈㄹ총량의 법칙이 적용되는 건가? 남편도 최근 친절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라 나도 짜증을 좀 덜 내려고 노력하긴 했는데 이게 또 이렇게 흘러가다니. 아가씨야 요즘 네가 나한테 어떻게 했는지를 먼저 생각해 보렴. 너도 아빠처럼 친절하게 말하는 연습을 좀 하던가.      


# 오후, 딸과의 전화 통화

딸 : 엄마 나 몸이 안 좋아.

엄마 : 어디가 어떻게 안 좋은데?

딸: 추워. 몸살기도 있는 것 같고.

엄마 : 그럼 열을 재 봐. 

딸 : 아마 정상 나올걸?

엄마 : 아프다면서. 열이 있을지도 모르지.

딸 : (열을 잰다) 37.3 도. 

엄마 : (살짝 긴장한다) 양쪽 다?

딸 : 아니 한쪽만. 한쪽은 정상이야.

엄마 : 그럼 집에서 좀 누워서 쉬다가 학원 가면 되겠네.

딸 :.... (아무 말이 없다)

엄마 : 엄마 말 듣고 있어? 

딸 : 몸이 안 좋다니까.

엄마 : 열 안 나면 그냥 학원 가. 내가 오늘 너한테 이런 전화 올 줄 알았어.

딸 :  이런 전화가 뭔데?

엄마 : 비도 오고 하니  오늘은 분명히 학원 가기 싫어서 학원병 생길 거고 그럼 엄마한테 아프다고 할 줄 알았다고. 

딸 :  아니거든. 진짜 아프거든.

엄마 : 그러니까 집에 얼른 가서 쉬어.

딸 : 학원은?

엄마 : 당연히 가야지.

딸 : 힝~

엄마 : 차라리 학원을 그만두는 건 어때?

딸 : 그건 싫어. 

엄마 : 그럼 열심히 다니던가. 앞으론 학원 가기 전에 전화해서 아프단 말 하지 마. 학원은 무조건 가는 거야. 알았.... 

딸 : (전화 끊어버린다.)     

 

왜 매번 이런 예감은 틀리지 않는 걸까? 아이들도 수요일이면 한계치에 이르는 걸까? 이런 날 비도 오고 몸도 찌뿌둥한 하루는 좀 쉬어가도 된다고 말할 수 있는 쿨~한 엄마가 못 돼서 미안하다만 엄마는 죽어도 학교 가서 죽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자랐단다. 학교든 학원이든 아파도 가야 한다고 배웠고 그렇게 살았다. 그리고 아이도 한 번 봐주기 시작하면 종종 같은 수법을 써먹을 것 같았다. 습관이 될까 무서우 것이다. 그래서 엄마는 차라리 인정머리 없는 사람이 되기로 한다. 그런데 잠시 후... 또 전화가 온다.      


딸 : 엄마! 비가 너무 많이 와.

엄마 : 어딘데?

딸 : 학원 가는 길.

엄마 : 오늘은 엄마가 차가 없어서 못 데려다주니까 그냥 가야 해. 

딸 : 힝~ 나 다리에 비 다 맞았어. 

엄마 : 바지 다 젖었겠다. 혹시 긴 바지 입었어? 

딸 : 아니, 반바지.

엄마 : 그럼 다행이네. 

딸 : 그런데 운동화랑 양말이 다 젖었어.

엄마 : 그럼 다시 집으로 가서 샌들로 갈아 신고 가.

딸 : 그럼 지각하는데?

엄마 : 지각 좀 하는 게 어때? 수업시간 내내 찝찝할 거 아냐?

딸 : 지각하는 거 싫어. 민망해.

엄마 : 찝찝한 것보다 낫지 않을까?

딸 : 엄마 비가 너무 많이 와. 

엄마 : (누가 모르니? 엄마더러 어쩌라고? 생각만 한다) 어쩔 수 없지.

딸 : 그리고 시간 안에 못 갈 것 같아. 

엄마 :  비도 오고 운동화도 젖고 몸도 안 좋은데 지각까지 할 상황이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

딸 : 학원을 안 가고 쉬는 거지.

엄마 : 그런 거야?

딸 : (당당하게) 응. 

엄마 : (스팀 뿜뿜!) 그럼 지금 학원에 전화해서 비도 많이 오고 운동화도 다 젖고 몸도 안 좋아서 그냥 집으로 다시 가야겠다고 네가 말씀드려. 

딸 : 진짜?

엄마 : 응. 대신 네가 직접 학원에 전화해.

딸 : 나 번호 모르는데?

엄마 : 네이버에서 학원이름 검색하면 전화번호 나와. 원장님 폰으로 연결되니까 네가 연락해. ('난 창피해서 대신 전화 못 해주니'라고 생각한다)

딸 : (갑자기 목소리가 밝아진다) 알았어. (뚜뚜뚜)     


학원을 그만두는 건 싫다면서도 컨디션이 조금만 안 좋으면 가기 싫은 건 뭐니?  분명 그녀만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단순히 비가 온다고, 몸이 안 좋다고 양말이 젖었다고 학원을 빠지는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또 순순히 얘기해주지도 않으니 엄마는 저녁에 아이와 진지한 대화를 나눠야 할지도. 이해할 만한 이유가 있는지 물어봐야겠다. 하지만 매번 이런 식이면 곤란하지 않나?  엄마는 오늘도 당황스럽다. 당황은 짜증으로 발사되고 그 짜증은 또 다른 짜증이 되어 돌아온다. 오늘도 승자는 없다. 가슴에 퍼런 멍 자국만 남을 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