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늦은 저녁을 먹고 동네 천변으로 나섰다.
'오늘은 달려보자.'
며칠 전부터 마음먹었던,
하지만 막상 실천하기는 어려웠던 다짐을 드디어 실행에 옮기는 순간이었다.
‘뭐 해 먹고 살지?’라는 고민만큼이나 막막했던 ‘어떻게 달려야 하지?’라는 물음에, 나는 가장 단순한 답을 내렸다.
‘일단 나가서, 아주 조금만 뛰어보자.’
러닝화라고 부르기엔 조금 낡은 운동화를 신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저녁 늦은 시간이었지만
천변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각자의 속도로 걷고, 또 달리고 있었다.
내 목표는 4km 남짓한 코스를
‘5분 걷고, 5분 천천히 뛰기’로 3세트 완주하는 것.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운동을 목적으로 뛰는 것 자체가 처음이다보니
속도에 욕심내지 않고 그저 ‘달리는 감각’을 느껴보는 데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5분 걷기가 끝나고
처음 뛰려고 발을 내딛는 그 순간.
기분이 이상했다.
묘한 설렘 같은 것이었을까.
지난 몇 년간 나의 유일한 운동은 수영이었다.
러닝은 수영과는 또 다른 감각이었다.
물속에서는 몸이 둥둥 떠있는 느낌이라면,
땅 위에서는 내 발이 지면을 차며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
중력을 온몸으로 느끼면서도 그것을 거스르는 듯한 기분이랄까.
물속에서 유영하며 나아가는 감각에 익숙해져 있던 내게,
단단한 땅을 딛고 달리는 이 느낌은 낯설고 새로웠다.
처음 수영을 배우던 날이 떠올랐다.
그때도 이런 신기함과 재미가 있었다.
물이라는 자연을 하나 정복하는 느낌이 좋았다.
처음엔 물속에서 숨 쉬는 것조차 어색했는데,
점차 물과 하나가 되어가는 그 과정이 짜릿했다.
비슷한 느낌으로
러닝도 좋아하게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들었다.
땅이라는 또 다른 자연과 친해지는 과정 말이다.
그리고 수영과 러닝의 가장 큰 차이점이 있었는데,
바로 '땀'이었다.
수영은 물속에서 운동을 하니 땀이 나도 잘 모른다.
그게 수영이 큰 장점이기도 하지만,
러닝에서의 '땀' 역시 내겐 새로워서 재미있었다.
러닝을 하면서 내 얼굴과 온몸에 땀으로 코팅되는 그 느낌.
찝찝하지 않고 오히려 시원했다.
노폐물이 쭉쭉 빠져나가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랄까.
사실 러닝이 유행할 때도
나는, 왜 뛰는 게 좋은지 이해하지 못했다.
힘들 것 같아서 하고 싶지 않았다.
'굳이 땀 뻘뻘 흘리며 뛰어야 하나?' 싶었달까.
하지만 직접 뛰어보니까 왜 좋은지 알겠다.
단순히 운동 효과뿐만 아니라,
뭔가 원시적인 즐거움 같은 것이 있다.
인간 본연의 움직임을 되찾는 기분이랄까.
저녁 늦은 시간인데도천에 뛰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인상적이었다.
각자의 속도로, 각자의 리듬으로 달리는 사람들.
누군가는 음악을 들으며,
누군가는 묵묵히.
같은 공간에서 각자의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니 멀고도 가까운 동료처럼 느껴졌다.
첫 러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발걸음이 가벼웠다.
새로운 것을 시작한다는 건 언제나 설렌다.
내일도 또 뛸 수 있을까? 아니, 뛰고 싶을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날만큼은
뛰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뭐 해 먹고 살지?’라는 거창한 질문에
답은 아직 찾지 못했지만,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작은 힌트 하나를 얻은 것 같다.
이렇게,
내딛는 발자국만큼의 세상을 조금씩 알아가다보면
어딘가로 향해 가고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