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하쿠다 사진관 중에서언젠가 이런 가게 하려고 관련 업종에 몸을 담았지. 어쨌건! 진정한 알코올중독자만이 안주를 거부해.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술마시는 것 말고 다른 일은 않지. 제비야, 봐. 저 건강한 사람들을. 대식가라는 느낌이 딱 오지 않니?
소설 하쿠다 사진관 중에서
최근에 읽었던 소설 하쿠다 사진관의 한 구절이다. 제주 한 사진관에서 우연히 일하게 된 주인공이 이곳 사람들에게 위로받고 성장하는 이야기. 이야기 중간중간 등장하는 사진관 손님들의 사연이 나를 뭉클하게 만든다.
그중 이런 문구가 있다. 진정한 알코올중독자만이 안주를 거부한다는. 이 문구를 읽었을 때 나의 찬란했던(?) 20대부터 30대 초반까지의 음주 생활이 생각이 났던 걸 왜일까.
고향이 대구인 나는 대학교를 경기도에 있는 학교에 입학하면서 자연스레 기숙사 생활과 자취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온갖 학교 행사에 다 참여하는 충실한 대학생이 되었고. 아무래도 외지에서 올라와 홀로 생활하다 보니 자연히 같은 과에서 같은 생활을 하는 기숙사 친구들과 친해지게 되었다. 그 친구들이 총 9명.
그 친구들과 정말 많이도 마셨다. 학교 앞은 술집. 우리집은 술집 앞. 우리 때에는 취업 걱정이 지금만큼 심하지 않은 때였으니 시험 때만 벼락치기하고 그 외 시간은 많이도 먹고, 마시고, 놀았다. 수업은? 1교시 수업은 거의 땡땡이였다. 문제는 전공수업이 다 1교시였다는 사실. 정신을 차리기 시작한 건 같이 놀던 남자 친구들이 군대 간 3학년부터. 동시에 군대에서 복학한 선배들이 너무나 열심히 공부는 바람에 덩달아 나 또한 정신 차리고 공부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함께 나와 술을 마시던 그 친구들은 아직도 나의 소중한 친구들이다. 생일 때마다 스팸 문자가 아닌 유일한 생일 축하를 해주고, 가끔 실없는 농담으로 단체카톡방을 시끄럽게 만드는 친구들. 그 친구들이 있었기에 나의 대학 생활은 지금도 찬란한 시절로 남아있다.
그리고 대학원. 정말 많이도 마셨다. 생명공학과를 전공한 나는 밤늦게까지 실험할 때가 많았고, 밤샘 실험도 많아 당연한 듯 술과 함께했던 그 시절 그 공간이 아직도 머릿 속에서 맴돈다. 그리고 간혹 부딪히는 선배들과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밤늦게 실험이 끝나고도 꼭 한잔씩 해야만 했던 그 시절. 지금 와 생각해 보면 그 시절 나와 함께 미래에 대한 고민과 사람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누어주었던 그 시절의 인연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그 인연이 없었으면 나는 그 시간을 어떻게 견뎌 냈을까.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견뎌낼 만한 시간이었겠지만 그 시절 내가 얼마나 많은 고민에 파묻혀 살고 있었는지 기억 하고 있기에, 함께 그 시간을 견뎌내 준 그 인연에, 지금은 잠시 연락이 끊겼지만 그럼에도 항상 내 마음속에서 소중히 자리잡은 그 인연에 감사한다.
그리고 드디어 신입사원. 또 많이도 마셨다. 이 시절에는 윗분들이 마시라고 하면 마셔야만 하는 시대였기에 토하면서 마셨다. 물론 내가 마시고 싶어서 마시고 다닌 적이 더 많기도 하지만^^;; 취업만 하면 다 끝인 줄 알았지만, 주말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일들, 점점 괴롭힘이 극에 달하는 상사. 영원히 뼈를 묻고 싶었던 첫 직장을 결국에는 아무런 게획 없이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그때.
나의 알코올 홀릭은 두 번째 직장에서 지금의 신랑을 만나 결혼 후 임신하면서 끝이 났다. 아마 10년이 넘은 기간 평생 먹을 술을 다 먹은 것 같다. 그리고 평생 부릴 진상을 다 부린 것 같다. 술을 잘못 배웠는지 우는 게 술버릇이 되었고, 빈속에 술 먹는 게 편하게 되었고, 그러니 주량을 넘기게 되면 무조건 토할 수밖에. 위액이 어떤 맛인지 나는... 안다. 그래서 지금 나의 한 가지 철칙은 안 좋은 일이 있을 때는 술을 먹지 않는다는 것. 좋은 일이 있을 때,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할 것. 그게 마흔 살이 가까워지는 지금의 내가 지키고 있는 여전히 알코올은 사랑하지만, 알코올중독자에서 벗어난 나의 철칙이다. 그리고 이때 함께 한 친구들은, 사람들은 오랫동안 나와 함께 한다는 사실을, 안다. 비록 알코올은 나를 힘들게 했지만, 사람은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