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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솔 Aug 24. 2022

피터의 법칙

산골 일기 스물세 번째

미국의 교육학자 로렌스 피터(Laurence J. Peter)는 1968년 레이먼드 헐(Raymond Hull)과 함께 

피터의 법칙(Peter Principle : Why Things Always Go Wrong?)을 출간했다. 

그는 책을 통해 ‘왜 조직에는 무능한 고위층이 많은가?’라는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을 제시하여 

경영학의 트렌드를 바꿀 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다. 

그가 제시한 ‘피터의 법칙’이란 수직적 계층구조에서 모든 직원은 

자신의 무능이 드러나는 자리까지 승진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일정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조직의 고위층이 무능한 인재들로 채워지는 비극을 맞이하게 된다. 

책은 그 이유로 조직이 직책에 맞는 사람을 선택할 때 그 자리에 걸맞은 능력이 있느냐 라는 

판단기준보다 그가 하위 직책에서 이룬 실적으로 평가하기 되기 때문이라 말한다. 

다시 말해서 부장 시절에는 부장의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하여 실적을 남겼지만 

그 실적이 경영을 책임지는 이사의 역량과는 무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실적을 바탕으로 승진을 결정하고 

결국 직책의 그릇에 맞지 않는 무능함을 여실히 드러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지난 십 수년에 걸친 나의 조직생활에 비추어 보아도 공감과 수긍이 가는 정확한 분석이다. 

흔히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하지만 사실 엄밀히 말하면 자리는 그 사람의 됨됨이를 보여준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자리가 그 사람을 버려놨어’라는 평가를 종종 듣곤 했다. 

좋은 평판을 가진 사람이 어떤 자리에 오르더니 그만 거만해지거나, 

자기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의견에 귀를 막거나, 

자기와 친한 사람들만 발탁하여 패거리 문화를 만드는 부당하고 어리석은 일을 자행하는 것을 

얼마나 많이 목도했던가! 

그러면서 자신이 무얼 잘못하고 있는지조차 전혀 인지라지 못하는 경우를 또 얼마나 많이 봐왔던가! 

물론 특정한 지위에 올라 마치 딱 맞는 옷을 입은 듯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도 많이 보았다. 

그런 인재를 보면 얼마나 마음이 흐뭇했던지!      


조직에 몸담고 있든 조직 밖에 있든 살면서 느끼는 것은 

자기 위치에 걸맞은 사람들을 만나고 교류하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가 하는 것이다. 

삶의 가치 속에는 항상 사람들이 존재하기 마련이고 자기 위치에서 충분한 가치를 발휘하는 

동료와 이웃을 만나는 일은 정말 행복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은퇴를 하고 나니 오히려 더욱더 좋은 사람이 그립다. 

하지만 사람마다 다른 인품과 가치관, 덕목들을 간파하여 좋은 사람을 만나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진면목을 뒤늦게 깨달으면 결국 결별을 통한 지독한 배신감을 느끼게 된다. 

이런 생각은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변함이 없나 보다. 

진시황을 만들어낸 여불위라는 사람은 인재를 발탁할 때 

소위 육험론(六驗論)을 들어 인재를 시험하고 발탁했다고 전해진다.      


첫째. 그 사람을 즐겁게 하고 얼마나 깊이 빠져드는지 살핀다.

둘째. 그 사람을 기쁘게 하고 얼마나 자제하는지 살핀다.

셋째. 그 사람을 괴롭게 하고 얼마나 인내하는지 살핀다.

넷째. 그 사람을 두렵게 하고 얼마나 침착한지 살핀다.

다섯째. 그 사람을 슬프게 하고 얼마나 삭이는지 살핀다.

여섯째. 그 사람을 화나게 하고 얼마나 흔들리는지 살핀다.     


여불위처럼 사람을 시험하고 어떻게 행동하는지 간 보는 것이 반드시 옳은 방법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새겨들을만한 구석이 있다는 생각이다. 

사람의 성정이 어떠한지 첨예한 상황에 직면해 보아야 그 사람의 진면목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나의 경우는 언제부터인가 누군가를 판단할 때에 ‘그가 잔 욕심을 부리는가?’라는 기준으로 바라보는 

습관이 생겼다. 하나라도 더 가지려 하고, 남보다 앞서 선점하려 하고, 

자기 권리를 우선적으로 주장하는 사람들은 가급적 회피하려 애쓴다. 

그 결과 대부분의 경우는 내 판단이 맞았다. 

하지만 그런 기준으로 사람들을 가늠해 보아도 결국 서로 실망하고 결별하는 일들이 생기는 것을 보면 

좋은 사람 만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깨닫게 된다. 

정실에 얽매이지 않고 적재적소에 걸맞은 인재를 얻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 

또 인재를 알아보는 안목을 갖기도 쉽지 않다. 

우리가 익히 아는 것처럼 항우와 천하를 겨루던 유방이 천하를 재패할 수 있었던 것은 

자리에 걸맞은 인재를 등용한 때문이었다. 유방은 자기보다 출중한 기량의 인재를 질투하지 않고 

전투에 있어서는 한신을, 전략에 있어서는 장량을, 관리에 있어서는 소하를 발탁하여 

소신을 마음껏 발휘하게 하였다. 그 결과 그는 천하의 대권을 거머쥘 수 있었다.      


처세에 관한 책들의 흔한 조언 중 하나가 ‘사람과 친하려면 절대 충언하지 말라’는 것이다. 

세상에 아무리 인격이 고매해도 조언과 충언을 좋아할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특별히 상사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앞에서는 좋은 얘기 해줘서 고맙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뒤돌아서서 기분 좋을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진정한 리더는 자신의 귀에 껄끄럽더라도 마음의 귀를 열 줄 안다. 

어떤 조직이 성공할 것인지 실패할 것인지 예측할 때에 

나는 ‘윗사람과 반대되는 의견이 자유롭게 개진되는가?’라는 잣대로 판단하곤 했다. 

위계에 눌려 찍소리 못하는 조직의 미래는 없다. 

한 사람의 판단과 결정이 항상 현명하고 옳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충언이 통하지 않고 그저 불만으로만 받아들여지는 조직이라면 빨리 돌아서는 것이 맞다. 

그곳엔 혁신적인 진취가 절대 자라 오를 수 없기 때문이다.     


소위 깜이 아닌 사람이 지위에 오르면 조직이 흔들리게 된다. 

더 큰 문제는 자신이 깜이 아니라는 사실을 모르는 어리석은 자가 

과거의 실적이나 인맥이나 친분을 이용하여 지위에 오르는 일이다. 

그런 자가 결정권자가 되면 조직은 비극적인 파국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충성하는 자는 사라지고 아첨꾼이 늘 것이고, 

열정은 사라지고 자리보존과 승진 욕심만 넘치는 조직이 될 것이다. 

깜이 안 되는 사람이 지위에 올랐더라도 스스로 자기 역량을 아는 사람은 

부족한 자신의 역량을 채워줄 사람을 찾게 마련이다. 

그런 경우는 그나마 차선책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자신의 한계에 걸맞은 자리를 정하고 그 이상의 욕심을 버리는 일이다. 

나의 경우 직장생활 동안 딱 한번 상무 자리를 제의 받은 것이 있었다. 

상무가 된다는 것은 직장의 별이 된다는 것으로 누구나 열망하는 자리였지만 

그때 난 경영인의 자리에 오를만한 역량이 내게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장과의 독대 자리였지만 나는 정중히 제의를 거절했다. 

사장은 모두가 자리를 탐하는데 별 희한한 사람 다 보겠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물론 그 사장의 인품이 함께 일하기 어렵다는 판단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지만 나는 그 자리를 고사했다. 

덕분에 나의 무능이 탄로 나지 않은 채 무사히 정년퇴직을 했으니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작금에 이르러 나라가 어지럽다. 연일 시끄럽고, 연일 불편하고, 연일 개탄스럽다. 

자신의 무능이 드러나는 한계까지 오른 사람들의 무능함이 하늘에 가득한 먹구름처럼 어둡고 막막하다. 

이 세상에는 아직 삼고초려할 만한 인재들이 남아 있을까? 

붕어빵 찍듯 정형화된 인재를 찍어내기 바쁜 사회 시스템을 보면 

결국 우리 사회가 피터의 법칙에서 벗어나지 못하지 않을까 마음이 무거워진다. 


한낱 촌부에 불과한 내 가슴이 이토록 무거운데 늘 양심이 두근대는 식자들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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