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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곰천사 Oct 28. 2016

장거리 버스에서 보낸 하루

남미로 맨땅에 헤딩 -12

리우 데 자네이루 버스 터미널

리우 데 자네이루에서 포트 두 이구아수(Foz do Iguazú)까지는 버스로 23시간이 소요될 예정이다. 우리가 탈 버스 등급은 세미 카마. 일반적으로 남미의 버스 등급은 우리나라의 고속버스와 같은 일반, 의자가 120도 정도 뒤로 젖혀지는 세미 카마(Semi Cama), 좀 더 좌석이 넓고 의자가 거의 180도 정도로 젖혀지는 우등 석인 살롱 카마(Salon Cama)로 구분된다. 


땅덩이가 넓은 남미대륙의 맞춤형 버스 등급제. 스페인어로 침대를 뜻하는 카마(Cama)가 붙은 등급의 버스를 타면 최고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차내 화장실은 기본으로 설치되어 있고 정수기와 생수가 완비되어 있다. 제복을 차려입은 버스 종업원이 간식과 음식을 제공하며 최신영화와 신나는 음악도 곧잘 틀어준다. 야간이 되면 담요와 간이 배게도 주어진다. 또 장거리 운전을 하므로 운전기사도 2~3명이 탑승해 번갈아 운전하는 재밌는 광경을 볼 수 있다.


473 헤알, 우리 돈 17만 원에 달하는 버스비를 내고서 장거리 버스에 탑승했다. 앞으로 친숙해져야 할 남미의 필수 교통수단. 오늘처럼 버스 안에서 밤을 보내는 경우는 앞으로 허다할 것이다. 


차창 밖으로 광활한 브라질의 전원 풍경이 계속해서 지나갔고, 몇 번이나 자고 일어났음에도 똑같은 풍경에 금방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세미 카마 등급이라고 해도 장시간 좌석에 앉아 있다 보니 이곳저곳이 저리고 쑤시기 마련이다. 승객은 여행자 두어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현지인들. 장거리 여행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그들과 말을 섞게 된다.  

장거리 버스에서 만난 인연들 

“헤이, 하우 아 유?, 아임 오르한. 나이스 투 미트 유”


라며 조심스레 말 거는 친구가 있었다. 그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이구아수로 가는 중이었다. 뒷좌석에 앉은 독일인 친구의 이름은 오르한. 남미로 배낭여행을 왔다며 지도를 펼쳐 들더니 자신의 루트를 자랑하기 시작했다. 장거리 운행에 그도 매우 지루했나 보다. 시종일관 유쾌하게 떠드는 그는 왈가닥 기질이 다분했다. 오르한은 몇 시간을 떠들어도 지칠 줄 모르는 수다 기계였다. 약 2시간마다 들르는 휴게소가 보이자 도망치다시피 뛰어내렸을 정도였으니.  


버스 안에서 친해진 이들이 또 있었으니, 그들은 바로 어머니와 두 남매로 구성된 브라질 가족이었다.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남매는 낯선 동양인이 신기한지 산악인과 나를 몇 시간이고 훔쳐보더니 붙임성 좋은 오르한으로 인해 자연스레 친해지기에 이르렀다. 에두아르두라고 이름을 밝힌 남학생의 나이는 17살. 수줍음을 많이 타던 그 여동생의 이름은 아쉽게도 물어보지 못했다.


“하이(안녕)” 

“무초 구스토(만나서 반가워)” 

“부에 나스 노 체스(안녕-저녁 인사)” 

“챠우(또 봐)” 


영어로 물으면 스페인어로 대답했고, 스페인어로 물으면 또 포르투갈어로 대답이 돌아왔다. 3개 국어가 여기저기서 툭툭 튀어나와 정신없었지만 그래도 서로 내용은 쉽게 알아듣는다. 


“코모 쎄 야마 우스뗃?(이름이 뭐니?)” 


조용하던 산악인이 한마디 하니 저마다 자기 이름을 외친다. 


“에두아르두! 오르한! 리!” 


버스 안은 금방 시끄러워졌다. 게다가 이것도 기념이라며 저마다 카메라를 꺼내 서로 찍어대는 통에 잠잠했던 버스 안은 플래시로 여러 번 번쩍였다. 결국, 버스 기사는 정숙을 요청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 가족은 중간도시에서 하차했다. 이메일 주소와 페이스북 ID를 묻는 에두아르두는 많이 아쉬운 모양이다. 잠깐이었지만 유쾌했던 기억. 길 위에서 마주치는 이런 인연들. 여행이 좋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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