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을 든다.

언제 연필을 들까

by 회색고양이상점


연필을 놓지 못하고 계속 써내려야 간신히 하루를 버티던 때가 있다.

걸음걸음을 또박또박 옮길 수가 없어서, 연필에 의지해 휘갈겨 쓰여야 내일 아니, 다음을 약속할 수가 있던 때


한 걸음을 내딛지 못해서 너무나 천역덕스럽게 천 걸음을 내딛는 척


다음을 약속하지 말라던 연필의 예봉을 기어이 잡아 꺾어내고, 또박또박 옮길 수 없는 걸음을 사랑할 자신이 없어서 제자리에 주저 앉아, 오만한 가부좌를 틀어 감히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똬리가 틀린 채 세월 흘러도, 한 줌의 햇볕은 반드시 오금 사이를 파고, 틀어 맺힌다.


틀어 맺힌 빛이 벼려낸 연필 끝에 다시 쓰이는 걸음이 비록 곡예 가깝더라도,

비틀거림이라도 걸어야 걸음이라.

다시 연필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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