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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엘 Sep 14. 2018

27_네팔의 가을

하늘은 높고 소도 살찌는 계절

//2011년, 과거에서 데려온 이야기입니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트리부번 대학 네팔어 과정 가을학기가 시작됐다. 수업은 오전 9시부터 시작해서 1시까지다. 9시에 도착하기 위해 집에서 8시 반 정도 출발한다. 아내와 같이 스쿠터를 타고 달리면 20분 정도 걸린다. 


방학 내내 오전 시간이 한가로웠는데 먼지와 매연을 맞으며 학교에 가려니 벌써부터 가기가 싫어진다. 갈까 말까 마음속으로 천 번도 넘게 고민을 하다가 길을 나섰다. 그나마 우기의 막바지라 저녁에 내린 비로 먼지가 덜한 게 위안이다. 


네팔어 선생님도 같은 마음이었을까? 안 오신다. 교실에 앉아 30분 넘게 기다리자 그제야 조교가 와서 1교시 교수님이 몸이 좀 안 좋으셔서 못 오신다고 한다. 2교시부터 수업이 진행될 예정이라고 알려주고 간다. 네팔까지 와서 자율학습이구나.


시작부터 어수선한 마음은 2교시 수업이 시작되고 나서도 정리가 되지 않았다. 수업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고 애꿎게 창 밖만 바라본다. 소 풀 뜯어먹는 것도 구경하고, 네팔 CC들 데이트 모습도 지켜보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도 한참 바라본다. 시간은 참도 안 간다. 그러고 있기를 한참, 아침에만 해도 구름 가득했던 하늘이 조금씩 갠다. 오랜만에 보는 하늘색. 


'아... 저게 하늘색이었지. 좋다.'


파란 하늘을 보자 마음도 붕 떴다. 이렇게 좋은 날 교실에 앉아 있기가 싫어졌다. 휴강이라도 했으면. 콩밭에 간 마음을 부여잡고 수업이 모두 끝나는 1시만 기다린다.


'아저 예히썸머 호. 볼리 뻬똘라.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내일 만납시다.)"


마지막 강의 교수님의 마치는 멘트가 끝나자 신이 난 목소리로 인사를 하고 나왔다. 

"여보, 저기 하늘 좀 봐! 이제 가을인가 봐"

트리부번 대학이 있는 벌쿠 언덕에서 바라본 북쪽


네팔에도 가을이 있네. 


가을 맞다. 바람도 선선하고 하늘은 더없이 높고 푸르다. 우리가 아는 그 가을 맞다. 

"우리 드라이브 갈까?"

"응? 드라이브?"

"응, 가자. 이런 날 그냥 집에 가기 아깝잖아"

"어디로 가게?"

"글쎄, 오토바이로 가는 데까지 그냥 가보지 뭐"


한 없이 마음이 붕 떠서는 스쿠터를 몬다. 목적지는 카트만두에서 차로 1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너걸콧 Nagarkot. 카트만두에서 가장 가까운 히말라야 전망대로 유명한 곳이다. 링로드를 타고 공항 쪽으로 가다가 아라 니꼬 하이웨이로 접어든다. 박 다 뿔에서부터 시골길이다. 카트만두의 먼지도 매연도 사라지고 시원한 가을바람이 분다. 이런 맛에 오토바이를 타나 보다는 생각이 든다.

트리부번 대학에서 너걸콧가는 길


너걸콧은 해발 꼬불꼬불 한참 오르막을 오른다. 멀미가 스멀스멀 올라오려 하는 그쯤, 너걸콧 버스 정류장이 보인다. 더없이 푸른 하늘과 하얀 히말의 대비가 너무나 선명하다. 선명한 아름다움.

네팔의 가을엔 유채꽃이 만발이다.
너걸콧 올라가는 길에

달리다 보니 전망대 표지판이 보인다. 너걸콧 전망대. 한번 올라가 보기로 한다. 전망대에는 학생들이 소풍을 와있다. 가을 소풍. 오랜만에 보는 정겨운 풍경이다.

너걸콧 전망대로 소풍 온 학생들

사실 비 내리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기에 지난 몇 달간의 우기가 너무 힘들었다. 선선한 공기와 맑은 하늘이 너무나 그리웠다. 오늘 드라이브는 정말 좋은 선택이었어. 이럴 줄 알았으면 학교를 땡땡이치고 더 멀리 갈걸 그랬다. 쉬이 내려가지 못하고 해지는 것까지 바라본다. 

천문대도 보이네. 저기도 들어갈 수 있으려나?


슬슬 집으로 가야겠다. 

"갑시다"


온 길로 가는 건 지루할 것 같다. 다른 곳으로 가봐야지. 날마다 모험 아니던가. 온 길이 아닌 다른 길을 선택했다. 잠시 이어지던 포장길은 어느새 비포장 오프로드로 바뀐다. 돌아갈까 고민하는 대신 '와우, 이건 신나는데' 우리의 뇌구조는 어느새 이런 식이 돼버렸다. 덜컹덜컹, 길이 정말 너무 험해 스쿠터를 타는 게 아니라 거의 끌다시피 해서 내려간다. 아내는 그냥 내려서 걸으며 따라오고 나는 엄청난 덩치의 만취객을 모시듯 스쿠트를 지탱해가며 내려왔다. 너무 힘들어서 사진 하나 찍질 못했다. 해는 져가고 길을 모르니 어서 내려오느라 ㅎㅎ. 땅거미가 지고 별이 초롱초롱 해질 무렵 우리는 산 아래 마을 근처에 도착했고 그제야 스쿠터를 제 용도로 사용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먼 드라이브에 지쳐 둘 다 금세 쿨쿨. 즉흥적이었지만 멋진 가을 날의 여행이었다. 오늘도 이렇게 작은 모험 끝.




너걸콧 전망대에서 바라본 히말라야 파노라마

카트만두를 가실 일이 있으면 너걸콧을 들러보시는 것도 좋습니다. 멀리 가지 않고 네팔의 멋진 모습을 즐길 수 있으니까요. 저 사진에서 보듯, 동쪽의 에베레스트부터 서쪽의 안나푸르나까지 한눈에 들어옵니다. 둘 사이의 거리가 300km 정도 되는데요. 서울에서 대구 정도에 있는 산이 보이는 거니까 엄청난 웅장 함입니다. 세계의 지붕이란 말이 실감 납니다. 너걸콧엔 적절한 가격에 괜찮은 호텔들이 많이 있으니 하룻밤 지내면서 석양, 은하수, 일출을 모두 모두 즐겨보는 것도 추천드립니다. 아래 사진 같은 뷰를 바라보며 아침을 느긋히 즐기는 건 덤입니다. 

http://map.alleys.co/play/6ubnsM4fRB0zEzr29dMFgw?@=27.714146223596288,85.52124648372725


네팔 이야기 처음부터 보기

https://brunch.co.kr/@lsme00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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