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동대문 디자인플라자에서 개최된 학술대회에 참가한 적이 있었다. 점심 식사 후 가벼운 산책을 할 겸 흥인지문 공원에서 출발하여 서울 성곽길을 따라 낙산공원까지 갔다가, 다시 내려와 신호등 흐름을 따라 걷다 보니 디자인 플라자 건너편 쪽으로 걸어 내려오게 되었는데, 길가 작은 가게 가판대 옆에 골판지에 대충 편하게 쓴 글씨로 “길을 묻지 마시오, 힘듭니다. 물건을 사고 묻던지” 쓰여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저 안내 판을 쓰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지나며 길을 물었을까? 그리고 얼마나 자주 짜증이 나서 퉁명스러운 답을 하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미소를 짓게 되었다. ‘관광 안내소를 바로 저 자리에 설치해야 되겠네, 약도 보고 찾아야 하는 안내소들이 얼마나 많은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낯선 곳에 처음 가보는 곳을 찾아가려면, 특히 정해진 시간 내 가야 할 경우, 얼마나 많은 경우 우리 가슴 졸이곤 했는가? 길을 모르는 것만큼 답답한 일도 없다. 딱히 시간에 제한도 없이 정처 없이 뚜벅이처럼 걷는 것 자체를 즐기는 여행객이 아닌 다음에야. 요새야 내비게이션 기능을 갖춘 구글맵이 있으니 낯선 도시를 찾아갈 때에 미리 지도를 받아놓은 스마트폰을 보며 찾아가니 그리 심적 부담이 없지만, 그 전에는 묻고 또 묻고 길을 찾곤 하였다. 길을 묻는 것도 이젠 아득한 추억 거리가 될 셈이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곧 길이요, 실재요, 생명이니,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가지 못합니다. (요한복음 14:6)
일하는 곳이 원주로 이주하게 되어 사택에서 지낸 지 6개월이 넘었다. 사택에서 일터로 가는 길은 짧은 길이 걸어서 30분, 길게는 한정이 없다. 내가 걷고 싶은 만큼 다양하게 연장할 수 있다. 어떤 길을 걷게 되면 시간을 벌어주고 어떤 길을 걷게 되면 자연을 보며 운동을 하게 되어 건강을 벌어준다. 어떤 길로 가든 목적지가 일터면 되는 셈인데 어떤 길을 걷느냐에 따라 얻어지는 것이 다르게 된다.
한 여름 비가 많이 온 날에는 평소 보이지 않던 물길이 보인다. 도보 위로도 물들이 줄지어 흘러간다. 재잘재잘 거리며 졸졸 거리며 수다를 떨며 물들이 자신들의 길을 따라 흘러간다.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면 수풀 위로 바람길의 길이 보인다. 바람결을 따라 길이 열린다. 바다에도 대양에 흐르는 해류의 길이 있어 멕시코만에서 북유럽까지 해수의 길이 나 있다고 한다. 그리고 보니 수많은 길들이 있는 셈이다. 코로나로 인해 비행기의 길들이 줄줄이 막혔다는데, 평소 같으면 하늘에 수많은 길을 따라 비행기들이 오르고 내리고 하였을 터인데.
비가 온 후 길 옆 풀밭사이로 물길이 생겼다.
우리는 길을 걷는다.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죽는 날까지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어디를 향하여 그토록 한정 없이 걷고 있는 것일까? 우리의 길의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우리는 길을 가며 무엇을 얻고 있을까? 모르겠거든 길을 물어보자. 이 길이 어디로 가는 길이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