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터널이 뚫려 한번에 휙 통과하지만미시령고개를 굽이 굽이 넘어 속초에 가던 시절,한겨울에 저녁이 다되어 고갯마루에 진입하였을 때였다. 휴게소 주차장에 잠시 내려 차문을 열고 나온 순간 우린 너무 놀랐다. 저녁 하늘 별들이 쏟아져 내려, 온 하늘 전체에 촘촘히 빛나고 있었다.이렇게 별들이 많다니! 이 많은 별들이 내가 사는 지구상 온 하늘을 뒤덮고 있건만 별 하나 없는 듯 살아온 삶이었다.
사실 도시 생활은 하늘 볼 일도 별로 없지 않은가? 반복되는 일과와 놓을 수 없는 생활의 수많은 일들의 연속은 우리로 하늘을 보지 않고 살게 하지 않았는가?
그날 쏟아져 내려온 별들을 본 이후 그 광경이 잊히지도 않았지만, 그런 광경을 다시 보는 것도 쉽지 않았다. 도시의 밝은 야경은 수많은 별들을 감추기에 충분했고 몇몇 밝은 별자리들과 금성과 화성 정도 볼 수 있었을 뿐이었다. 그나마도 밝게 빛나는 것은 인공위성이란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어 저 빛나는 별 같은 것이 진짜 별인지 인위적인 것인지 얼핏 보기에 알 수 없었다.
뉴질랜드에서 밀포드 사운드 트래킹 때나캐나다 로키를 방문했을 때,미시령의그날의 별들과의 재회를 꿈꾸고 도전해 보려 했으나, 낮의 일정이 워낙 강행군이다 보니 저녁이 되면 쓰러져 자기 십상이었다. 결국 별을 볼 목적으로 따로 일정을 세우지 않으면 도시민이 별 보긴 힘든 삶을 살아가는 셈이었다.
이번 여름남반구에 위치한호주는 겨울인데, 딸네 방문 일정 중 SB자매님의 추천으로 사위와 딸과 함께 저녁 밤하늘 별을 보기로 일정을 잡았다. 무게라 호수(lake Moogerah)로 가서 은하수도 보고 사진도 찍기로 하였다. 저녁 기온이 섭씨 7-8도까지 떨어질 것이 예상돼 여러 벌의 옷을 입고 따뜻한 코코아도 보온병에 담고 사진 촬영을 위한 삼각대까지 갖추고 나름 만반의 준비를 다하였다. 이전과 다른 점은 '별 보러 간다'는 것이었다.
남반구 6월 말은 해가 짧아 6시를 넘어서니 벌써 어두워졌고 컴컴한 고속도로를 사위가 시속 100km로 질주했는데 조금 도시를 벗어나니 우리나라 80년대 영동고속도로 같았다. 중앙 분리대도 없고 길과 주변을 분리하는 별도의 구조물도 없어 캥거루나 왈라비라도 튀어나오면 대형사고가 날 것 같아 조마조마하였다.
시간반 남짓 달린 후 반달의 빛만 조요히 비취는, 인공조명이라곤 문 닫은 외딴 카페의 불빛외엔 없는 장소에 도착하였다. 처음 암순응되기전까진 두려울정도로 어둡더니, 점차 어둠에 적응해 나갈 무렵 여기저기 흩어져 밤하늘을 가리고 있던 구름들이 바람에 다 날아가 버리고 많은 별들, 선을 긋게 만드는 숱한 별자리들, 그리고 희미하게나마 은하수가 호수를 배경으로 밤하늘에 펼쳐지고 있었다.
드디어 별 볼 일 있는 날을 맞이한 셈이었다.반달이 중천에 떠오른 탓인지 미시령의 그날의 쏟아져내리는 별들만큼은 아니었지만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이토록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을 가진 우리가 평소 누리지 못하고,또한 있는지 조차인식하지 못한 채 살고 있다니. 땅의 이야기에만 연연하여 하늘을 잊는 과오를 범치 말고 맑은 하늘, 인위적 빛을 내려놓고 하늘에서 오는 빛을 받아들이는 삶을 잠시라도 사는 것이 사치이기만 한 것일까?
또한 우리에게는 신언자가 말한 더 확실한 말씀이 있습니다. 어두운 곳을 비추는 등불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처럼, 여러분은 날이 밝고 샛별이 여러분의 마음속에 떠오를 때까지, 이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좋습니다.베드로후서 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