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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철 Jan 05. 2022

한라산 등산

제주올레길 탐방

독서 모임에서 매주 대전의 계족산 둘레 걷기를 하면서 스페인 산티아고를 계획이 변경되어 하는 수 없이 제주올레길을 선택했다. 제주 도착 2일째는 한라산 등산악 코스로 정상을 가는 계획이었다. 우리가 머무는 기간에 제일 날씨가 좋은 날이 도착 이틀째되는 날인 월요일 3일이었다. 아침 6시에 나서서 7시에 성판악 주차장에 도착을 했는데 이미 주차장은 만차였다. 여기에 주차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 한 박사님이 차를 제주국제대학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택시로 다시 오는 것을 기다려 합류하였다. 주차관리하시는 분의 이야기에 의하면 새벽 5:50분이면 만차가 된다고 한다.


출발전의 사진이다. 겨울산, 특히 눈이 내린 겨울산의 필수 중의 필수 준비물은 아이젠과 스틱이다. 우리 일행 중에 이 장비가 준비되지 않는 분들이 계셨다. 우선은 아이젠 한쪽을 내가 빌려 드리고 아이젠 없이 출입구를 통과 못한다는 것을 한쪽을 빌려 드려서 겨우 출입을 하게 된다.

계족산 둘레길 산행에서도 마찬가지지만 한 박사는 여기 와서도 동행이라는 것을 몸소 실천하신다. 약하거나 뒤쳐지는 사람을 도와주거나 짐을 들어주건 페이스를 맞춰준다. 사진을 찍다 보면 나는 항상 제일 꼬랑쥐이다. 사진은 장소를 벗어나지 않기에 확인하고 찍고 확인하고 찍다 보면 대부분 늦게 뒤에서 따라간다.


등산을 하다 보면 이렇게 분실물을 가로 손잡이 밧줄에 걸쳐 두시는 분들도 계시고, 모자를 들고 주인을 찾을 때까지 들고 가시는 분들도 계신다. 그런 일을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데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 해줄 일이라고 생각하면 이렇게 몸소 실천에 옮길 수가 없다. 평범한 생각으로 비범한 사람들의 생각을 따라잡기가 그래서 곤란하고 그들을 이해할 수 없다.


동쪽에서 동이 트기 시작한다. 붉은 햇살의 기운이 눈이 덮인 설산의 나무 사이로 드리운다.



출발 1시간 17분째 비자림 숲속이 잠깐 펼쳐진다. 나무의 수종이 바뀌는 순간이다. 성판악코스는 총길이 9.6킬로미터 등반(올라가는 시간)은 4시간 30분이며, 하산은 4시간을 잡는다. 성판악 입구에서 첫 번째 대피소인 속밭대피소까지는 1:20분이다. 이 구간은 비교적 평탄한 구간이다. 속밭대피소에서 진달래밭 안내 까지는 1시간 40분이 소요된다. 진달래밭에서 백록담 정상까지 1시간 30분이 소요되며 제일 난 코스에 속한다.


누군가가 눈사람을 만들 놓았다. 올라가다가 본 눈사람은 내려올 때는 이미 누군가에 의해 넘어져 목이 부러져 있었다. 아니 저절로 넘어졌을까? 바람에 의해서...

봄이나 여름, 가을 산행보다 겨울 산행은 시간이 더 소요되고 더욱 힘들다. 길이 아닌 양쪽은 무릎 높이까지 눈에 쌓여 있기에 길이 아닌 곳을 지나갈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경사가 급하기 때문에 상당히 미끄럽다. 미끄럽기에 아이젠은 필수 중에 필수이다. 또한 양팔을 잡고 다리의 힘을 조절할 수 있는 스틱을 소지해야 한다. 우리들의 팀 여행계획서에 이 품목을 강조했고 소지하게 부탁을 하였었다.

비자림 숲은 돌아오면 이내 첫 번째 대피소 속밭대피소가 나온다. 여기에는 화장실이 있고 비나 눈 그리고 바람을 피할 수 있는 대피소가 있다. 중간중간에 화장실을 가는 습관을 둬야 한다.


우리의 제주도 올레길 모임에 새로운 멤버는 강신철 이사장님의 아드님이시다. 미국 음대에 재학 중이며 작곡과 작사를 하는 청년이다. 또한 가수이기도 하다. 강신철 이사장님이시자 독서모임의 대표, 그리고 교수를 역임하시고 작년에 정년퇴임을 하셨다. 당신은 65세가 넘어 경로우대증을 가지고 계시는 데 사모님과 함께 가면 항상 아드님이라 부르신다 한다. 나도 한번씩 같이 동행하다 보면 신분증을 요구받을 때 본인이 진짜 맞냐고 되물음을 하는 경우를 종종 보았다.

길을 잘 살펴보면 눈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가를 가름할 수가 있다. 며칠 전에 내린 눈이 쌓이고 쌓여 이렇게 두꺼워진다.

유클리드 회사의 CTO로 계시는 박 이사님께서 나의 아이젠과 스틱을 들고 계신다. 나는 겨우 아이젠 한쪽에 길을 맡기고 오른다. 수술을 하고 회복한 지가 한 달도 되지 않는 상태로 나는 이 산행에 합류하게 되었다.

우리가 산행한 날은 기상예보에 의하면 온통 햇살이 둥글게 표시된 날이었고 실제로 아침부터 점심까지 계속해서 이런 파아란 하늘이었다.

존경하는 우리 박 이사님께서는 한라산 정상을 가지 말고 내게 같이 둘레길을 걷자고 하셨다가 전날 급조하여 등산용품점에 가서 옷이며, 배낭이며 신발을 구매하였다고 한다. 단, 아이젠과 스틱은 빼고 구매하였다. 정작 제일 중요한 장비가 빠져 있었다. 이 스틱과 아이젠은 내가 차고 있었던  한 짝 중에 한 개였고  스틱도 2개 중에 하나였다.

오전 10시 14분 등산 시작으로부터 2시간 40분이 소요된 곳이다.


고도가 높을수록 눈이 쌓인 높이가 깊어진다.

오전 10시 44분 진달래밭 안내소이다. 거의 3시간이 소요되었다. 오른쪽에 돌 지붕으로 된 곳이 화장실인데 이미 화장실은 얼어서 한 두 곳이 터진 상태라 하는 수 없이 나중에는 여자 화장실과 함께 사용할 수 없는 상태라고 안내 방송이 나왔다. 대피소 여기에는 아무런 물품을 팔지도 않고 비치된 것은 없다. 우리는 컵라면과 햇반, 그리고 초콜릿과 사탕을 준비해왔다. 컵라면보다는 단팥빵과 김밥을 추천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로 된 음식들보다는 먹기에 편안 음식이 좋은 것 같다.

자칫 봉수대나 연화대처럼 생긴 곳이 화장실이고 들어가는 길목에 눈이 쌓인 것을 보면 어느 정도의 깊이로 눈이 내렸는지 짐작할 수 있다.

12시 30분까지 여기를 통과해야 한다. 우리가 여기를 통과한 시간이 11시 27분이다. 하산하는 시간을 고려하여 정상 마지막 코스를 향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정상인 백록담이 보이기 시작하는 곳에는 구상나무 군들이 보인다. 살아서 백 년 죽어서 백 년인 이 나무들이 앙상한 뼈대들도 있고 아직도 여전히 현역으로 자라나는 나무들도 보인다.

내가 가지고 있던 스틱 한 개는 교수님, 한 개는 박 이사님에게 이미 가 있었다.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쉽게 내가 가진 것을 준다. 그렇다고 사기를 당하거나 속임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좋으면 내가 가진 것을 쉬이 건네주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모습을 가진 내가 너무 초라해질 때가 많다 백록담을 올라가는 계단을 오르다 나의 머리가 돌아가지 않고 목에 통증이 느껴져서 조금 더 가면 좋아지겠지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무조건 단념하고 발길을 하산으로 돌렸다. 내려오는 길에 박 이사님과 한 박사님이 오르고 있었다. 나는 몸이 너무 안 좋아서 내려가겠다고 하고 아쉬움을 뒤로하고 내려왔다. 나의 몸은 수술 후 왼쪽이 오른쪽과 왼쪽이 불균형적이고 약해져 있는 상태인데 지팡이가 있어야만 나는 오를 수 있었다. 또한 아이젠 한쪽만 가지고 왼쪽 발에 무리가 오고 무게 중심으로 과도하게 한쪽으로 한 것이 화근 중에 화근이었다. 수술 수 대청댐을 돌다가 뒤로 넘어진 이후 물리치료사가 나의 팔과 다리가 균형이 맞지 않아서 넘어졌다고 하고 교정을 해주셨다. 조심을 해라고 당부를 하셨는데 다시 신호가 온 것이다. 이러다 죽을 수 있다 싶어 나는 아쉬움은 뒤로 한 채로 내려오고 있었다.


내려오는 길이 너무 눈부시게 푸른 날이었다. 정상에서 내려오는 가벼운 발길의 사람들이 부러워 보였다. 이내 나의 핸드폰에 알람이 표시된다. 먼저 가신 강 교수님이 정상에서 촬영한 백록담 동영상이었다. 이런 경우에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자신을 표현하고 어떻게 자신의 스탠스를 유지할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네가 좋아서 시작했으니 그것으로 된 것이고 처음부터 시작을 말아야 했다'는 말의 우문현답이었다. 스스로가 좋아서 시작했는데 싫어지기 시작하면 그만두는 것도 나 자신이라는 것이다. 나는 즐겁지 않으면 그만둔다. 또한 즐겁지 않은 사람들과는 거리를 둔다.

구이가 거[九夷可居]라는 말이 있다. 구이는 동이의 아홉 부족을 말한다. 공자는 일찍이 그곳에 군자가 있어서 살고 싶다는 피력을 했다. 공자에게 자한이 '거기는 누추할 건데 어떻게 하실 건가요?' 공자는 '군자가 살았는데 무슨 누추함이 있겠는가?'


구이경지[久而敬之]는 오래되어도 상대를 존경한다는 말이다. 안영(晏嬰)이라는 인물은 춘추 시대 제나라의 명재상이었고 자가 평중이고 영공, 장공, 경공을 차례로 섬긴다. 사람들과 사귈 적에는 오랫동안 공경하였고 논어 공야장에서 공자가 이르기를 '안평중(晏平仲)은 사람들과 잘 사귀도다. 오래도록 서로 공경하는구나(子曰; 晏平仲善與人交, 久而敬之)'

가깝고 친하다고 하여 내게 말을 놓고 하대하는 사람도 있고 형님, 동생 지간 하자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예전에는 형, 동생을 쉽게 생각했다. 나이게 되어서 이런 말을 꺼내는 사람을 스스로 극도로 경계한다. 가까워지면 나는 더 거리를 두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빠르게 많이 알게 되는 것을 좋아했지만 지금은 천천히 아는 것도 좋다. 다만 자식이든 부부지간이든 서로를 높이는 마음이 없으면 무시당하거나 자신을 얕잡아 본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다리가 처음부터 있었을 리가 만무하다. 많은 사람들이 발걸음을 걷다 보니 다리가 필요하게 되었고 그 다리를 걸어가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다리의 발판들이 쏴악 없어진다. 그 세월을 인내하고 파져 나가고 있었다.

융프라요흐를 오를 때가 생각난다. 스위스에 있는 알프스 최고봉 융프라요흐를 오르기 위해서는 아침 첫 번째 기차를 타라고 내게 충고를 주었던 벨기에 사람이 있었다. 융프라요흐 바로 아래 동네 그린데발트 유스호스텔에 머물다가 그 사람과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오전에 해가 뜨고 따뜻한 공기가 점점 아래에서 위로 올라 가는데 위로 올라왔을 때는 구름으로 바뀌고 오후에는 대부분 비가 온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다행히 첫차를 타게 되었고 구름 없는 푸른 융프라요흐를 볼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올라오는 기차를 보고 있을 때는 중간역에서 맥주를 한 잔 하는 여유를 가지고 있었다.

오후부터 하산을 하는 동안 눈구름이 이 중간지역을 휘감아 돌고 있었다.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 내는 눈길을 내려오면서 어린 아들과 함께 오는 엄마의 아들에게 '아들! 용기가 대단하고 훌륭하네요. 힘내세요!'라고 말하고 나는 내가 가진 에너지 초콜릿을 건네주었다. 두 번째는 부부와 함께 딸 초등생처럼 보이는 자매 둘이 하산하는데 막내딸이 내내 소리 지르고 울면서 내려왔다. 물론 바지 끝자락은 물에 젖어 있고 힘들다고 어리광 부리는 듯했다. 다시 에너지 초콜릿바를 건네면서 '따님 너무 대단해요. 조금만 가면 거의 다 왔으니 용기를 내서 파이팅해요'라고 말했다. 울먹이면서도 '고맙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인사를 어머니들이 더 크게 내게 말씀해주셨다. 나는 우리 집 아이들을 키울 때 왜 그런 말들을 못했을까? 더 많이 자주 해주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지금도 그때보다는 훨씬 많이 표현하고 격려해준다. 아무리 사소하고 작은 행동이라도...

한 박사가 이 순간에는 눈물겹게 고마웠다. 자신이 올라갈 때는 제일 뒤처져 있는 박 이사님을 모시고 올라갔고 내가 아프다는 말과 함께 자신이 제일 먼저 내려와서 내게 뭔가 쫑알쫑알 이야기한다. 나의 기분을 달래주려고 하는 제스처이다. 그러더니 내가 말은 안 하니 그냥 옆에서 앞에서 걷기만 한다. 나의 속도를 맞춰주면서. 이미 이 상태에서는 몸이 많이 안 좋은 상태였다.


한 박사가 운전을 하기 위해 아침에 세워둔 공영주차장으로 버스를 타고 가서 차를 끌고 왔다. 중문단지로 내려가는 길 내내 내게 그 건너편 노을이 이쁘지 않으냐고 묻는다. 노을이 이뻐서 내게 묻는 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노을 봐 형!' 그리고 '마음 풀어'라고 하는 말인 것을 나는 안다. 노을은 어디에서나 이쁘다. 그런 긍정적인 말을 둘러 둘러 이야기하는 한 박사의 마음이 노을보다 훨씬 이쁘다.


신영복 교수는 감옥으로 부터의 사색에서 이렇게 이야기 한다. 마음이 아픈 사람에게는 위로나 물질이 아니라 그 사람과 함께 아파하는 것이라고. 비가 오는데 비 맞고 있는 이에게 우산을 들어 주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아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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