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 그 극복에 관하여
<진이, 지니> - 정유정
1.
둘째가 생겼을 때 이름을 뭐로 할까 정말 오랜 시간 고민을 했다. 왠지 아들 이름과 비슷하게 짓고 싶어서 돌림자도 아닌 '진'을 넣어 이름을 짓자고 아내와 합의를 보고 온갖 글자를 넣어 조합을 해 보다가 이러다가 지쳐서 그냥 진숙이라고 짓고 말겠다는 생각이 들 때쯤 떠오른 이름이 이진이였다. 이. 진. 이. 앞으로 해도 이진이, 거꾸로 해도 이진이. 입에 착 감기는 것이 세상 누구라도 쉽게 발음할 수 있을 것 같은 이름이었다.
올 가을엔 처가 식구들과 장인어른 칠순 기념 해외여행을 계획하고 있어 얼마 전 진이 여권을 신청했다. 영어 스펠링을 Jinny로 할까 Jinnie로 할까를 고민하다가 왠지 Jinny는 너무 램프의 요정을 연상시키는 게 아닌가 싶어서 Jinnie로 신청을 했다. 소설 속 주인공-진이-의 스승이 보노보의 이름을 주인공의 이름을 따서 지니-영문으로 Jinny-로 지으면 어떻겠냐고 하는 장면을 읽다가 웃길 것 하나 없는데 혼자 웃음보가 터져 버렸다. 하마터면 소설 속 보노보 이름과 영문 스펠링까지 같아질 뻔했다.
소설의 제목이자 주인공의 이름인 '진이'는 단순히 주인공의 이름만은 아니다. 진이의 영혼이 지니의 무의식에 갇히는 것을 램프에 갇히는 것으로 표현을 하는데, 작가가 아마도 램프의 요정 지니를 염두에 두고 주인공의 이름을 정한 게 아닌가 싶다. 소설 속 주인공 역시 자신의 이름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듯한데, 주인공이 이렇게 말하는 부분이 있다.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나는 그가 내 이름을 불러주는 게 좋았다. 진이가 아니라, 이진이라고 온전하게 불러주는 게 더 좋았다. 수줍어하는 것처럼 입 안에서만 구르는 어감이 가장 좋았다. 그 어감을 간직하려고 나도 내 이름을 불러봤다. '이진이' "
일주일 후면 진이가 세상에 나온 지 삼 년째 되는 날이다. 진이가 이 소설을 읽고 이해하려면 얼마만큼의 시간이 더 흘러야 할까?
2.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위대한 사랑 이야기라는 평론가의 해설이 가슴 깊이 와 닿았다. 보노보를 끝내 구해내지 못했다는 트라우마로부터, 노인의 도움의 손길을 외면하고 지나갔다는 트라우마로부터 헤어나오지 못하고 살아가던 주인공들이 종내에는 진이의 죽음을 함께 가슴으로 받아들이면서 트라우마를 치유해 나가는 과정이 감동적으로 그려져 있다. 정유정 작가는 이를 '생의 가장 치열했던 사흘에 대한 이야기'라고 스스로 표현했다. 죽기 직전의 사흘이 생에서 가장 치열할 수 있다는 작가의 시선은, 중환자실 간호사로 근무했던 본인의 경험에서 우러나는 것임에 분명하다.
중환자실의 일분 일초는 그 시간, 그 장소에 존재하는 모두에게 치열하다.
1년차 겨울 무렵. 핑계를 대자면 일 년간의 외과 주치의 노릇에 나는 이미 충분히 지쳐 있었다. 이른바 번아웃(burn out)이었다. 도무지 의욕도 생기질 않고 틈만 나면 쉬고 싶은 생각 뿐이었다. 그동안 일해 온 관성으로 하던 일을 계속 하고는 있지만 어딘가에 걸려 넘어지기만 하면 관성을 잃고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될 것만 같았다. 어찌되었든 환자들은 수술 잘 받고 잘 나아서 퇴원했다. 그들은 굳이 내 손길이 아니어도 알아서 회복해서 퇴원할 환자들이었다. 나는 더더욱 타성에 젖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일주일 전 간문부담관암으로 수술을 받은 환자의 상태가 급격하게 나빠졌다. 하루 전부터 40도의 고열이 나더니 삽시간에 패혈성 쇼크로 진행하여 중환자실로 환자를 옮겨야 했다. 응급으로 시행한 CT는 복부와 흉부 모두 특이사항이 없어 쇼크의 원인이 뭔지를 특정하기조차 어려웠다. 기도삽관을 하고 항생제를 투여하고 투석을 하고 할 수 있는 조치는 다 했지만 환자는 호전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환자 상태는 시시각각으로 조치를 필요로 할 만큼 불안정했고, 나는 밤새 중환자실을 떠날 수 없었다.
새벽 두 시. 중환자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시야가 흐려졌다. 극심한 피로가 온 몸을 덮쳐 왔다. 이대로 깨어 있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담당 간호사에게 조용히 말했다. "저 조금만 잘게요. 깨우지 마세요." 그대로 팔을 베고 컴퓨터 책상에 엎드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나를 흔들어 깨운 것은 중환자실 간호사가 아닌, 담당 교수님이었다. 비몽사몽 시계를 확인하니 아침 일곱시였다. 책상에 엎드려 잠깐 눈만 감았다고 생각했는데 다섯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밤새 내 머리에 눌려 있던 오른팔이 저려왔다.
"그래서 환자 상태는 어떻노?"
다섯 시간을 푹 잤는데 시시각각 변하던 환자의 현재 상태를 알 리가 없다. 밤새 별 일이 없었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차트를 열며 말했다.
"네, 교수님. 밤새 비교적......"
뒤이어 하려고 했던 말은 '안정적'이었는데, 모니터에 뜬 환자의 피검사 결과를 보고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다섯 시간 사이 환자의 랩(laboratory test)은 조금씩이나마 더 나빠지고 있었다. 옆에서 시체처럼 잠들어 있는 외과 주치의를 굳이 깨워서 노티를 하기에는 나빠지는 정도가 다소 애매해서 얘를 깨워 말어 간호사들이 고민하는 사이에 다섯 시간이 지나가 버렸고, 전반적인 환자 상태는 분명히 악화 일로에 있었다. 깨우지 말라고 하고 잠든 나 자신을 원망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환자 상태가 자꾸 나빠지는데 너는 도대체 뭘 했니?"
"......죄송합니다."
그렇게 내가 약간의 안일함에 빠져 있는 사이 혼자서 죽음과 사투를 벌이던 환자는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별이 되었다.
전공의의 살인적인 근무강도라는 시스템의 문제가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날 그 기억은 전공의 시절은 물론 현재까지 내내 나를 괴롭히는 트라우마로 남았다. 생사를 가르는 것은 언제나 '약간'의 틈이다. 생명을 다루는 의사가 되려면 그 틈을 허용하지 못하는 완벽주의자가 되어야 하는데 나는 그렇지 못하다. 나는 오늘도 그 틈을 메우려 트라우마 속에서 허우적댄다.
<진이, 지니>를 읽다가 그 때 생각이 떠올라 가슴이 무거워졌다. 나는 과연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post-traumatic growth를 하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