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로우님은 언제까지 거기 계실건가요

by 로망버드

누구보다 객관화되어 있고 타인에게 기대하지 않는 나 또한 아이의 사춘기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누구보다 사랑했는데. 어쩌면 역설적이게도, 열렬히 사랑했기에 열렬히 실망한다. 열심히 사랑했기에 열심히 상처받는다.


어떤 이들은 주부들이 진작부터 글을 쓰고 여행을 다니고 나만의 세계를 구축해놓으면(!) 나중에 그 황망한 후폭풍을 잘 견딜수 있을 거라고 부추긴다. 서투른 살림이나 요리는 조금만 해도 된다고. 그러나 정말 그럴까? 어떤 두유 카피마냥 마음이 콩밭에 가있는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하기 싫고 낯선 공부를 늘 열심히 해야한다고 하면서,나는 서툴고 재미없다는 이유로 피하려고만 하는 것이 변명이 될까?혹여 나의 말이 너무 진부하게 느껴지는가? 그러나 언제나 진실이 우리를 가장 자유롭게 한다. 그 진실은, 바로 가장 기본적인 것이 가장 대단한 것이라는 것이다. 한 때 유행했던, 가장 일상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말인 것처럼.


욕심없는 사랑은 언제든지 그 자체로 보상이 되어 돌아온다. 열렬히 청소하고 열렬히 밥을 하고 나서 나는 텅 비었다고 실망이 더 커지는 듯 보이지만, 그 실망은 그래서 응당 당연한 것으로 보이지만, 어중간한 사랑만이 남을 탓한다. 애매한 사랑이 주변을 탓한다. 아이를 명문대에 보낸 어떤 주부가 말한다. "저는 공부하라 잔소리도 안하고 밥만 잘 챙겨줬을 뿐인데, 아이가 잘했네요." 정말 밥을 엄청나게 잘 해먹여서 아이가 잘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혹시 있을까? 밥만 잘 챙겨줬다는 것은, 아마도 아이의 역량 이상을 바라는 요행이나 욕심을 바라지 않고 주어진 본연의 일을 성실히 했음을 뜻하고 그것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장인까지는 아니더라도. 어쨌든 그래서(?)는 아니지만, 나는 이제 저녁에 쌀을 안쳐놓고 두부도 부치고 생선도 굽고 브로콜리를 데쳐 맛살과 볶기도 하고 배추를 절여 겉절이를 뚝딱 무쳐내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한번에 이루어진다. 워킹맘이었던 불과 몇년전에는 너무나 까마득하고 상상도 못할 일이었지만, 나는 이런 것들을 성취해내었다. 언제나 도망가려고만 궁리하지 않고, 언제나 '여기 아닌 다른 곳'이 내 자리라고 믿지 않았다. 왜냐하면 여기 아닌 다른 곳이 내 자리라면 나는 그 곳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또 한편으로 어떤 이는 빠른 은퇴를 권하고, 떠남을 종용해서 열심히 살아내는 사람을 일견 폄하하는 듯도 보인다. 그게 정말 타당할까? 우리가 단순히 너무 빠르게 사는 것 같다고, 아예 멈춰야할까? 빨리 걷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다. 문제는 속도가 아니라 방향인 것이다.

굳이 누룩을 띄워 간장과 된장을 만들어 먹지 않아도 잘못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전기가 터지지 않는 산골에 들어가야만 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언제나 완제품이나 밀키트보다는 각각의 재료를 사서 직접 해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것이 굳이 통나무집안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일상에도 모험은 널려 있다.

그토록 회자되는 '월든'의 소로우는 1년만에 월든 호수를 떠났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그야말로 근대판 1년살기였던 셈이다. 물론, 1년만이라도 그러한 삶을 직접 겪어보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 자체가 유일한 구원과 같은 목표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다시 한번, 중요한 것은 방향이고, 삶의 진실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