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키워준 것이 마을 도서관이었다는 빌게이츠처럼 유명한 사람은 아니지만 근처에 있던 도서관에 하루가 멀다하고 드나들던 어린 시절부터 도서관은 나의 로망의 장소였다. 회사를 그만두고 도서관 홈페이지를 뻔질나게 드나들던 그 때 게시판에 모집공고들을 심심치 않게 보게 되었다. 모집공고를 찬찬히 살펴보니 아르바이트든 뭐든 도서관에서 일을 하려면 사서 자격증이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 같았다. 마침 몇없는 사서교육원이 이 도시에 있어서, 나는 자격증을 따기 위해 관련 교육원에 지원하기에 이르렀고 1년여를 다녀 올여름 드디어 준사서 자격증을 땄다. 이것이야말로 로망의 현실화이다. 회사를 그만두고 코로나 3년을 거쳐 근 7년여만에 세상밖으로 나온 셈이다. 쓸고 닦고 씻고 널고, 창밖을 바라보기만 하던 단조로운 일상에 갑자기 시간왜곡이 생긴 듯 정신없이 보냈다. 입시 기차만큼이나 더 빠른 기차에 올라탄 느낌으로.
교육원은 일주일에 세번을 갔다. 교육원에 가는 날이면 집에만 있던 평소의 나는 통 사용할 일이 없던 선물받은 텀블러에 드디어 물을 가득 넣었다. 아이가 중학교때 쓰던 가방에 텀블러와 새 펜과 형광펜 몇개를 필통에 넣고 나를 위한 노트를 넣고 유독 무거운 책을 넣고 가방을 멨다. 요즘 학생들이 많이 신는다는, N사의 흰색 운동화도 샀다. 그 운동화를 신고 교욱원이 있는 대학교 교정을 걸으려고. 2시간여를 가야 도착하는 강의실이지만 오랫만에 나무가 가득한 캠퍼스 교정을 걸어가 책상에 앉아있는 그 기분 자체가 좋았다.
나는 지금껏 거의 단 한번도 공부할 책들을 가방에 넣으면서 기분이 좋았던 적은 없었는데, 억지로 해야하는 일이 아니어서 좋았다.
교육원에 가는 날은 오전에 집안일을 하고 아이들의 저녁을 다 차려놓고 후다닥 머리를 감고 2시간에 달하는 거리를 가야했다. 거기다, 시험도 본단다. 운전면허시험처럼, 절대 점수를 넘지 못하면 과락을 하는 시스템이다. 설마 과락이야하겠어? 랬지만 정말 오랜 시간만에 시험이라는 것을 보기 위한 책을 펼친 지 몇분 안되서, 나는 나의 두뇌에 대해 매우 관대한 평가를 내리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내가 기억하는 나와 다르게 집중력도 약하고 엄청나게 산만했다. 말하자면 나는 도수가 다른 현실의 안경을 쓰고 굴절된 과거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나는, 나는 아이들에게 시험에 대해서 말을 조심하기로 한다. 특히 시험보고 온 날, '시험 잘 봤어? 잘 봤겠지?' 란 말, 그리고 못봤다는 말에 '잘 봤겠지 뭐. 어려웠다면, 다른 아이들도 어려웠을거야.'라는 말들조차, 절대 하지 않기로 했다. 거꾸로 내가 들어보니 아무런 도움도 안되고 부담만 되는 말이었다. 실제로 겪어보지 않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동안 했던 말들이 또 얼마나, 얼마나 많을까? 미처 하지 못한 나의 비밀스러운 사과가 쌓이기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