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은 언제나 어렵다. 면접이란 단어 자체에 새로운 것을 맞닥뜨린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면. 언제나 접하는 것에 면접이라는 말을 쓰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다.
언제쯤 면접이 익숙해질까? 어른이란 건 익숙해짐이 많은 그 무엇도 아닐지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익숙하지 않은 모든 것에서 역시 같은 어린이가 되는 것, 단 어렵지 않은 척을 잘 하는 것이 어른일지도 모른다.
준사서 자격증을 따고 세 번의 면접을 보았다. 두 군데는 집근처 도서관이고, 지은지 얼마 되지 않았고 내가 못해도 일주일에 두번은 가는 도서관이다. 면접을 보는 날, 최대한 머리를 잘 말리고 끝을 감아올린다. 오래된 자켓들을 얼마전 모두 버려 어차피 없지만, 정장을 차려입어야할까? 신발은 너무 편한 것을 신으면 안되겠지? 그렇다고 십몇여년을 신지 않은 구두를 신어야할까? 몇번 신어보지 않았지만 왠지 버릴 수 없는 상징과도 같은 연한 베이지색 슈콤마보니 뾰족코 구두에 발을 넣어보니 발이 반밖에 들어가지 않는다. 너무 나이들어보이지도, 그렇다고 어울리지 않게 어려보이기도 싫은 애매함이 너무 어렵지만 그렇다고 애매하지 않은 때가 없었음을 상기해본다. 그 언젠가 딱 알맞은 때가 언제가 있었을까? 너무 늦지도, 빠르지도 않은 바로 그 때가. 잘 준비되고, 섣부르지 않고, 너무 가버리지 않은 충분한 때가. 그런 때란 없었다.
첫번째 면접날에는 비가 살짝 뿌렸다. 우산을 다시 가져오려 집에 들렀다 시간이 촉박하게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왠 할머니께서 말을 자꾸 거신다. 대답을 하는데 내 초조함이 스스로에게 느껴졌다. 속으로 '이건 면접에 좋은 신호일까, 나쁜 신호일까..' 나쁜 신호였나보다. 두번째 면접날 또한 비가 뿌렸고, 나는 우산을 미리 가지고 나갔고, 면접자중 가장 먼저 도착했다. 그때부터 일부러 눈을 동그랗게 힘주어 유지하느라 내심 힘이 들었다. 너무 일찍 가서,너무 힘을 주었나보다. 힘이 드는 이유는 힘이 많이 들어가서라는데-면접관이 '너무 떨지 마시라'고 말할 정도로 나는 달달 떨었다.
그렇게 두번째 면접까지 별 소득없이 끝났다. 면접이 끝날 때마다 나는 며칠을 머릿속으로 면접 기억을 떠올려보며 이불킥을 해야했다. 아무것도 되지 못할 거라는 무력감에 남몰래 울기도 했다. 그리고는 또 수순처럼, 앞으로 더 잘 되려고 이런 거야, 정신승리를 하며 평정을 되찾았다. 이 경험으로 가상의 수많은 취준생들과 동병상련을 나눈다. 아프니까 청춘이라지만, 일곱번 넘어져도 여덟번 일어나라지만, 말이 쉽지, 얼마나 힘들까? 입에 삼킨 수많은 조언들은 결국 내 차지였나,한다. 그 옛날 취업준비를 할 때 몇 번이고 면접을 봤고 떨어지고 회사를 옮겼던 내 청춘만의 진흙길. 몇년만에 남들 다 부러워하는 공기업에 입사했지만 그 막막함은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인생의 특별함이란 내일을 알 수 없는 그 막막함과 동량이긴 해도. 다시 재현하고 싶지는 않다.
삶에서의 새로운 순간과의 면접은 언제 어디서나 일어나고, 면접은 항상 어렵지만, 인생은 꿈만 꾸거나 꿈꾸지 않거나 둘중 하나. 그저 꿈꾸는 것이 행복이라는 말을 이제는 어렴풋이 인정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차피 꿈과 그 꿈의 성취사이에서 만족은 미세한 균열을 내며 미끄러지니까. 꿈을 꿀 때만이 느낄 수 있는 행복, 면접결과를 기다릴 때만이 느낄 수 있는 기대도 있는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