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는 결혼 20주년을 맞이하여 나의 로망, 이탈리아로 일주일간 배낭여행 아닌 배낭여행을 떠났었다. 우연히 블로그 이웃분과 일정이 겹치며 로마에서 갑자기 소나기 내렸던 기억마저 공유하게 되었다. 그렇다, 우리는 바티칸 나오는 길에 갑자기 쫄딱 비를 맞았다.
로마에 도착한 바로 다음날 우리가 바티칸 박물관을 본전을 뽑으려는 여느 관광객들처럼 다리 아픈 줄도 모르고 아니 다리아픈줄은 알았지만 중꺾마의 정신으로 거의 행군하다시피하고 오후 늦게 다시 거리로 나왔을 때 하늘에는 그 기세좋던 더위의 끝,먹구름이 잔뜩이었다. 걸어나오며 설마했는데 빗방울 몇개가 떨어지더니 급기야 소나기가 쏟아지고 말았다, 이태리어라고는 '그라치에','차오' '스쿠지(실례합니다 )'밖에 모르는 로마 한복판에서.
그 때 나는 건강문제로 화가 좀나있는 상태였는데 그야말로 불난집에 기름붓는 격이었다. 왜,왜,왜?!!! 비까지 이렇게 쏟아지냔말이다. 설상가상으로 내 핸드폰 배터리는 다 됐다. 회사일하다가 비행기탄 격인 남편은 이탈리아 택시나 버스같은 걸 어떻게 타는지 몰랐고,나는...,(MBTI의) 대문자 P였다. (이러다가 여름이었다, 처럼 P였다.하면 다 통하는 세상이 올지도 모르겠다)
비는 그라이데이션이 아니라 급작스럽게 쏟아졌다,아니 조금씩 오고 있었지만 택시를 잡는 법 따위를 검색하며 허둥대다가 차양이 있는 가까운 건물로 뛰어들어갔을때엔 치마가 반은 젖어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한두명 뛰어들어와 떨어지는 빗줄기를 같이 쳐다만 보았다.한국에서는 이럴 일이 별로 없다. 어디든 열려있는 곳으로 뛰어들어가거나 지하철로 들어갔을텐데, 여긴 로마였다. 우린 끝까지 로마에서 택시를 어떻게 잡는지는 알 수 없었다. 비가 언제쯤 그칠지도. 숙소로 어떻게 가야할지도.
비가 멈추길 기다리던 몇몇의 사람들 속에서 그저 비가 쏟아지는 거리를 바라다보고만 있을 때 구남친이 말했다, 저 버스 전광판에 termini 라고 써있었으니까, 다음에 저 버스를 타자!
그야말로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아니 테르미니로 통한다식 해법이었다.
다음에 그 번호의 버스가 가까이 오자 남편이 가자!고 외쳤고 정류장까지 굵은 빗속을 냅다 뛰었다. 낯선 그곳에서는 바보가 되어 버스는 어떻게 타는지 정확히 알지도 못했지만 일단 트래블월랫카드를 단말기에 대고는 '된 것 같아!'를 외쳤다. 갑자기 비가 와서 그런지 버스기사는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는듯했다. 그도 그럴것이 테르미니로 가는 그 버스는 금새 비를 더 맞기 싫어 일정을 앞당겼을, 배낭을 멘 관광객들로 가득 찼다.버스 통로는 빗물로 얼룩졌고 차창은 뿌얘졌다.
아기를 안은 흑인여자가 타자 한 젊은 여자가 무거운 베낭을 멨음에도 자리를 양보했다. 나는 그 아기를 보며 웃어주었다. 호기심많을 때인 돌남짓한 아기때문에 엄마는 연신 아기들 안아들었다놨다 했고 아기 배에 입방구를 불었고 자리를 양보한 사람과 몇개월이에요? 어디서 왔어요?같은 전세계 엄마 공용어로 대화를 했다.
빨간 버스는 베네치아 광장을 돌아 우리가 걸어온 익숙한 거리를 지나 우리가 아는 테르미니역에 도착했다. 무언가의 끝을 맞이하는 무사한 나른함을 배낭무게보다 무겁게 짊어지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속에 앉아있던 몇십분은 단순한 날씨 문제를 떠나 그 이상으로, 고아가 되었다가 빗속의 연인이 되었다가 갑자기 위아더월드가 된 그 강렬한 기억으로, 나는 소나기와 관련한 교훈을 더 추가한다. 아마도, 일이 생각만큼 잘 안풀린다거나 면접에 떨어진다거나 아이들과 트러블이 생겼다거나 할 때, 아, 세상이 나를 억까하나보다, 할 때 정말로 지금 인생의 소나기가 내리고 있구나,그러나 모두 지나가겠지,소나기가 언제 왔었는지도 모르고 잊고 살다가 가끔 불현듯 추억할거야.라고 한번쯤은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