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기억 만들기
엄마와 함께 지내면 큰일 없이 지내는 하루가 커다란 선물이 됩니다. 톱니바퀴처럼 시간이 굴러가면 마음에도 기쁨이 솟아납니다. 엄마와 내가 이렇게 잘 보내는 날이 많아지는 것은 지난 1년 서로 노력하고 훈련한 덕택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딪히는 적도 많고 가라앉는 날도 많지만, 잘 지내는 날도 많습니다.
- 아침맞이
언젠가부터 엄마께서는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힘들었는데 작년 겨울은 이래저래 더욱 어려웠습니다. 치매 증상뿐 아니라 다른 여러 질병이 같이 와서 더욱 어려우셨을 것입니다. 치매 증상 이외 다른 질병 관리에 대해서는 이전 포스트에서 설명하였습니다.
https://brunch.co.kr/@lucidveil/25
제가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 별로 힘들지 않은 편이라 엄마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면도 있었겠지만, 주간보호센터를 처음 다니시기 시작한 작년 이맘때는 아침마다 힘들었습니다.
“얘, 나 지금 너무 힘들어. 이렇게 힘든데 가긴 어딜 가니. 오늘 센터 못 가.”
아침에 엄마를 깨우려고 하면 엄마는 늘 힘들어서 센터를 갈 수 없다는 얘기를 먼저 하셨습니다. 가기 싫은 마음과 좋지 않은 몸의 상태를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엄마께서 주간보호센터에 정기적으로 가는 것은 매우 중요했습니다. 우선 낮에 점점 활동성이 떨어지는 엄마에게 주치의가 권고한 사항이었고, 저도 엄마와 떨어져서 일정 시간을 보내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그리고 일어나는 것이 힘들어서 그렇지 막상 준비를 시작하시면 집을 떠날 때쯤에는 괜찮아지셨습니다. 그런데도 엄마께서는 매일 아침 일어나는 걸 싫어하셨고, 몸이 안 좋아 센터에 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아침마다 반복되는 일에 지쳐갔습니다. 엄마께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적이 없는데, 시간을 알려드리는 것 이외에도 일어나기 싫은 엄마를 억지로 깨워야 하는 것이 생소했습니다. 며칠을 억지로 깨우다가 설득하기 시작했습니다.
“엄마, 어제도 그제도 힘들다고 했는데 막상 일어나서 세수하고 움직이면 괜찮아지잖아요. 자꾸 안 된다고 얘기하지 말고 우선 일어나보세요. 일어나서 같이 아침 먹고, 그다음에 얘기해요.”
“센터 가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아니?”
“자동차가 지하 주차장까지 와서 엄마 모시고 가고, 센터에서는 다들 도와주는데 뭐가 힘들어요?”
“니가 가 봐라. 안 힘든가.”
“구체적으로 힘든 부분을 얘기하면 내가 무슨 도움이 될지 고민할 수 있잖아.”
엄마는 입을 다무셨습니다. 원래 다른 사람들 얘기를 즐겨하시는 편이 아니기도 했고, 구체적으로 설명하기에는 엄마 머릿속이 많이 헝클어져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프신 여러 어르신과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는 게 불편하고 어려운 일인 건 분명하겠죠. 어떻게 잘 일어나실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엄마 침대 옆에 있던 오래된 온열마사지기를 권했습니다. 몇십 년 제대로 쓰지 않고 자리만 차지하고 있어서 버려야 하나 고민하던 물건이었습니다.
“엄마, 세라젬 예열했어요. 거기 일이십 분 누워 있다가 식사하러 나오세요.”
문제가 없어진 건 아니지만, 그래도 엄마 몸이 천천히 잠에서 깨어나 거실까지 나오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식탁에 앉으면 식사할 기운이 생기고, 식사를 하고 나면 씻을 기운이 생겼습니다.
엄마께서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 놓기도 하고, 날이 좋으면 좀 호들갑스럽게 부르기도 했습니다.
“엄마, 빨리 나와 봐. 커튼을 열었는데, 해가 뜨는 게 기가 막혀.”
엄마께서 아침에 힘든 것이 수면무호흡증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는 엄마를 깨우면서 숨쉬기를 부탁했습니다.
“엄마, 크게 숨을 다섯 번 쉬고 거실 나와서 물 한 잔 드세요.”
이제는 엄마께서 일어나기 좀 전에 거실과 안방에 보일러 온도를 올리고, 따뜻한 물이나 차를 한 잔 가져다드립니다. 엄마께서는 아침에 따뜻한 물 한 잔을 좋아하시고, 방이 춥지 않으면 좀 있다 스스로 일어나십니다. 계속 침대에 누워 계시면 따뜻한 옷을 입고 식사하러 나오시라고 권합니다.
엄마께서 식사를 잘하셔서 다행입니다. 자극적이지 않은 아침 식사를 끝내고 나면 기운을 차리십니다.
- 약 챙기기
아침, 저녁 드시는 약은 미리 일주일 약통에 넣어 놓고 엄마께 약을 드시라고 말씀드립니다. 이제 요일은 기억하지 못하시지만 제가 말씀드리면 잘 찾아 드시고, 나중에 복약을 확인하기도 수월합니다. 패치형 약을 매일 바꾸는 것을 확인하려고 달력형 약통도 샀는데 어머니께서 이용을 잘 안 하셔서 치웠습니다. 새로운 것이라도 엄마께서 쉽게 이용하는 것이 있지만 손에 익지 않은 물건도 있습니다. 꼭 필요한 물건이면 꾸준히 연습하고, 그렇지 않으면 치워 놓습니다.
- 외출 준비
엄마께서 언제부터인가 ‘네 속도하고 내 속도가 같니?’라고 하십니다. 서로 생각하는 속도와 움직이는 속도에 차이가 있다는 것이 당연한데도 처음에는 제가 엄마께서 외출을 위해 준비하는 시간을 짧게 잡아서 나가야 하는 시간에 급하게 서둘렀습니다. 이제는 적당히 시간을 가늠할 수 있고, 엄마께서 혼자 하실 수 있는 일은 되도록 계속 유지될 수 있도록 힘씁니다. 지나치게 얇거나 두꺼운 옷을 입으실까 봐 계절에 맞춰 아무 옷이나 꺼내도 입을 수 있도록 옷장을 정리했습니다. 같이 외출 준비를 하는 것이 의외로 복잡하고 힘든 일이라는 걸 깨달은 후 되도록 엄마께서 외출하신 후 제가 준비할 수 있도록 일정을 잡는 편입니다.
주간보호센터에 다니시기 시작할 무렵에는 제가 엄마와 같이 지하 주차장에 내려가고 오시는 시간에 맞춰서 기다렸는데, 어느 정도 익숙해지신 이후에는 엄마 혼자 이동하십니다. 예전에는 센터에서 오시는 분이 아침에 저에게 전화하면 엄마께 알려드렸고, 이제 전화도 직접 받으십니다. 혹시 제가 없더라도 변경 없이 일상이 가능하도록 세팅을 하고 싶었는데, 사실 엄마 혼자 계시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집니다.
- 저녁 시간
엄마께서 오후 다섯 시쯤 주간보호센터에서 돌아오시면 여섯 시쯤 조금 이른 저녁을 먹습니다. 조금 여유롭게 보내고, 저녁 투약, 샤워와 발 관리를 한 후 일찍 주무십니다. 날이 좋으면 산책도 합니다. 어머니께서 양압기를 사용하시는데, 일 년이 다 되어가지만 주무시기 전에 제가 확인하고, 밤에도 한 번 다시 확인합니다. 자다가 마스크를 벗기도 하고 화장실에 다녀오신 후에 제대로 장착을 못 하시기도 하는데, 양압기 없이 주무신 날은 아무래도 아침에 더 힘들어하십니다.
- 주말
일주일에 4번 주간보호센터를 이용하시는데, 센터에 가시지 않는 날도 되도록 비슷한 시간에 식사를 합니다. 기억이 흐릿해지고 몸이 약해지면서 바이오리듬을 관리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요일에는 아직까지 제가 불러드리는 택시로 혼자 교회에 가시고 돌아올 때는 언니나 지인분들의 도움을 받습니다. 몇 번 혼자 집에 오시려다가 고생하셔서 이제는 주위 분들에게 부탁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산책이 어려우면 실내에서 스트레칭이라도 하려고 노력합니다.
- 루틴(정해진 일상)의 힘
엄마께서 새로운 장소에 가거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에 점점 더 큰 부담을 느끼셔서 집중이나 판단이 어려워집니다. 그렇지만 매일 일상적으로 하시는 일은 아직 큰 어려움 없이 잘하십니다. 엄마의 뇌가 기억을 꺼내기 힘들다면 몸의 기억으로 일상을 어느 정도 지탱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감기에 걸렸거나 특별히 몸에 통증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주간보호센터는 정해진 날짜에 매일 가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치매 어르신의 일상이 평균대를 걷는 것처럼 조심스럽고, 일상에 옵션이 많이 생기면 다시 평균대에 오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냥 한 발 한 발 천천히 내디디면 걸을 만한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끔 여러 일들로 낙심이 되기도 하고,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엄마에게도 마찬가지지만 저에게도 루틴이 중요합니다. 오늘이 어려워도 내일 돌아갈 일상이 있으면 조금 더 깊이 잠을 잘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