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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 Aug 26. 2021

김장은 했냐는  다정한 질문

  살림을 시작한 지 9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김장은 나에게 미지의 영역이다. 수육을 삶을 때 곁들여 먹을 겉절이를 눈대중으로 만들어 보긴 했지만 본격적으로 김장을 해본 경험은 없다. 결혼 후에도 줄곧 엄마에게 부탁해 김치를 받아먹었으니 김장은 나의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갑자기 엄마에게 일이 생겨서 김장하기 어렵다는 연락이 오면 부랴부랴 인터넷을 뒤져 새김치를 주문하기 바빴다.


  다른 밑반찬에 비해 김장김치는 배추를 절이는 시간에서부터 양념을 만드는 재료의 장만까지 꽤 많은 정성과 노고가 필요하다. 누군가는 일 년 치 김장을 하면 마음이 부자가 된 것 같다고 하던데, 나는 그 부담감 때문에 김장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다행히도 남편이나 아들은 식탁에 김치를 올리지 않아도 별 불평하지 않을 만큼 김치에 무디다. 그 핑계로 나는 여전히 김장을 시도해 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11월 중순이 지나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동네에 생기가 돈다. 시골에서는 겨울이 시작되면 김장을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그즈음 오일장을 나가보면 배추에서부터 고춧가루, 새우젓까지 갖가지 재료가 즐비하다. 동네 마트에서도 김장용 대야와 매트를 판다. 로컬푸드 매대에는 다듬지 않은 신선한 속재료가 올라와 있다. 김장은 동절기에 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이벤트였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나와는 무관한 일이었다.

  

 몇 해 전 일이다. 김장철이 다가오자 복지관에서 만난 옥정 언니는 안부 인사처럼 “김장은 했어?”라고 다정하게 물었다. 나는 쭈뼛거리며 “우리 식구는 김치를 잘 안 먹어서 그냥 사 먹어요.”라고 대답했다.  결혼한 지 수년이 지나도록 김치 하나 담글 줄 모르는 ‘초보’ 딱지를 그대로 붙이고 있는 것 같아 어쩐지 목소리가 작아졌다.


  다음날 오후, 집에서 티브이를 보는데 갑자기 옥정 언니한테서 전화가 왔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전화를 받고 어쩐 일이냐고 물었다. 언니는 “지금 집 앞이니까 잠깐만 나와봐.”라며 전화를 끊었다. 나는 후다닥 밖으로 나가 언니를 맞이했다. 옥정 언니의 두 손에는 커다란 김치통이 들려있었다. “김장 안 했다는 소리 듣고 한 통 가져왔어. 우린 어제 했거든.” 언니는 마치 ‘오다 주웠어’하는 투로 쿨하게 김장 김치 한통을 내려놓고 사라졌다. 나는 김치를 받고 어안이 벙벙했다. 집에 들어와 김치통을 열어보니 새로 만든 신선한 김장김치가 가지런하게 담겨있다. 줄기를 찢어 입 안에 넣고 맛을 보니 확실히 사서 먹는 김치와 다른 감칠맛이 돌았다. 옥정 언니가 준 김치통을 집어넣고 오래도록 냉장고를 들여다보았다.  

  

  그 일을 시작으로 거의 매년 이웃 사람들에게 김장김치를 얻어먹었다. 부러 부탁하지 않았는데도 겨울철이 시작되면 한번 맛이나 보라고 몇 포기씩 주는 김장김치로 어느새 냉장고가 꽉 찼다. 미싱 수업에서 만난 어머님 연세의 어르신은 먹어보고 맛있으면 또 주겠다며 김치를 하얀 봉투에 꽁꽁 싸서 주셨다. 나는 그 김치를 반찬통에 옮겨 담으면서 가슴 한쪽이 찌르르해졌다. 엄마가 아닌 타인으로부터 받는 김치는 많은 생각이 들게 했다.


  한때는 시골 사람들이 더 무섭다는 소리를 믿으며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던 적도 있다. 그런데 막상 내가 시골 사람이 되고 보니 그것은 큰 오만이었다. 도시나 시골이나 사람이 사는 것은 매한가지고, 사람이 모여 살다 보면 어디에서든 갈등은 일어난다. 시골에서 산다고 타인에 대한 두려움이나 경계마저 없을까. 나 역시 한옥에서 살 때 무례하게 시골 인심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불쑥 마당에 들어와 집이 예뻐서 사진 좀 찍겠다며 허락 없이 남의 영역을 침범하는 낯선 사람들을 보고 공포를 느끼기도 했다. 미리 맡겨놓은 듯 인정을 요구하는 그들의 모습에 신경이 곤두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시골 사람이 더 무섭다’라는 오래된 괴담은 융화의 노력 없이 무조건적인 허용을 바라는 무례한 사람들이 만들어 낸 허튼 소문일 뿐이다. 사람이 무서운 건 맞지만, 시골 사람이라서 더 무섭지는 않다.          


  김장김치 이후에도 옥정 언니는 자주 음식을 나누어 주었다. 직접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계절마다 새로운 채소를 수확해서 신선한 재료를 한 보따리씩 가져다주었다. 용도가 분명하고 만들어 먹기 쉬운 채소는 바로 해 먹었지만 노각이나 여주, 열무 얼갈이처럼 평소 접하지 못했던 채소는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나는 언니가 가져다주는 그 귀한 농산물을 받고도 조리법을 몰라 냉장고에 오랫동안 묵혀두다가 아깝게 버린 적도 있었다.


  언니는 재료를 가져다줘도 제대로 해 먹지 않는 나를 눈치채고 언젠가부터 직접 반찬을 만들어 주기 시작했다. 종종 집으로 찾아와 “으이그, 전번에 보니까 어떻게 만드는지도 모르는가 보다 해서, 하는 김에 집이네 것도 만들어서 왔어. 입맛에 맞을랑가 모르겠네.” 라며 무심하게 반찬통을 건넸다. 나는 언니가 주는 음식을 받아 들며 부끄러움과 미안함 그리고 고마움을 동시에 느끼며 몸 둘 바를 몰랐다.


  직장을 다닐 때도 어르신들께 음식을 자주 얻어먹었다. (일 년 정도 영암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어르신들이 가져다주는 음식을 먹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일터에 출입하는 어르신들은 사과를 수확하면 햇사과를 맛보게 해 주셨고, 직접 농사지은 포도나 무화과, 감, 고구마도 수시로 가져오셨다. 양파나 파, 감자, 마늘 같은 농산물을 아예 트럭에 싣고 와서 현관에 던져놓고 가신 분도 있었다. (직장 사람들끼리 나누고도 많이 남아서 여기저기 퍼주어야 했다) 꽃을 넣은 전병이나 팥 수수떡, 짱뚱어, 어란처럼 평소라면 구경하기 힘든 생소한 음식도 어르신들 덕분에 처음 먹었다. 나에게  그분들의 음식은 단순한 맛을 넘어 새로운 경험이고 복잡 미묘한 감정이었다.


어르신들이 맛보여준 전병과 햇사과

  가깝게 사는 정다운 이에게 맛있는 음식을 나누어 주고 싶어 하는 따뜻한 마음은 사실 누구에게나 존재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을 행하느냐 행하지 않느냐는 마음의 거리에 따라 달라진다. 선한 의도가 있어도 받아들이는 사람이 부담스러워하는 인상을 주면 멈칫하게 된다. 어르신들은 내가 손사래를 치며 거절할 때마다 괜찮으니 그냥 먹으라며 인자하게 웃고 먼저 부담을 걷어주셨다. 그렇게 영암에서 살며 나는 자연스럽게 음식을 나누는 기쁨을 배웠다. 이젠 나도 서툰 솜씨로 반찬을 만들어 가까운 지인에게 음식을 주기도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는 마음의 거리가 상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에게 달렸다는 사실을 옥정 언니와 어르신들을 보고 깨달았다.  


  그동안 얻어먹은 만큼 음식 솜씨가 늘면 좋았겠지만, 지금도 나는 여전히 요리에 자신이 없다. 그래도 옥정 언니 덕에 값비싼 조미료보다 신선한 재료를 넣어 만든 음식이 가장 맛있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매 끼니 건강한 식단을 꾸려보려고 노력한다. 조만간 찬바람이 불면 겁나서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김장김치에 도전해 볼 생각이다. 먼 훗날, 재료 선택의 망설임 없이 갖가지 요리를 척척 잘하게 된다면 언니가 나에게 했듯이 좋아하는 사람들을 불러 배불리 음식을 먹이고 정답게 반찬을 나누어 주고 싶다. 이래서 보고 배운 게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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