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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Jun 28. 2024

남성 갱년기?




서서히 줄어드는 테스토스테론과 급감하는 에스트로겐 

“남성 갱년기요? 여성 갱년기야 잘 알지만, 남성도 갱년기가 있나요?”     


갱년기의 사전적 의미는 "성호르몬의 분비가 줄어들어 생리적 변화와 심리적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를 말한다. 남녀의 신체 변화와 정서 변화의 원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성호르몬의 변화다. 여성의 호르몬 변화는 40대 중반에서 50대 초반 사이에 집중적이고 격렬하게 감소한다. 이에 반해, 남성의 호르몬 변화는 30대 중반부터 시작해 70대 이후까지 감소한다. 이 차이 때문에 여성의 갱년기는 뚜렷한 증상을 보이지만, 남성의 갱년기는 표가 잘 나지 않는다. 이것이 마치 남성은 갱년기가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여성의 경우, 갱년기가 시작되면서 에스트로겐 수치가 급격히 감소한다. 그 결과 안면 홍조, 불면증, 골다공증, 그리고 질 건조증 같은 신체적 증상이 나타난다. 정서적으로는 우울감, 불안, 감정 기복이 심해지고 집중력이 저하된다.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성호르몬이 감소하는 남성과 달리, 여성의 에스트로겐 수치는 단기간에 급락하는 모양을 보인다. 그만큼 감정 변화와 신체 변화가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이 여성 갱년기의 특징이다.


증상이 뚜렷하고 대부분 여성에게 공통으로 나타나는 여성의 갱년기와는 달리, 남성의 성호르몬 감소는 개인마다 감소하는 정도와 시기가 다르다. 또한, 테스토스테론의 감소가 오랜 기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되기 때문에 남성의 갱년기를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람들은 흔히 갱년기라고 하면 여성의 갱년기만을 떠올린다. 그러나 남성 또한 여성 못지않게 다양한 갱년기 증상으로 고생하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50대에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성호르몬 감소는 남성의 쪼그라드는 가족과 직장 내의 위상과 맞물리면서 그들을 한없이 우울과 고통 속으로 밀어 넣는다.


테스토스테론은 남성의 근육, 뼈, 성기, 체모 등 인체의 여러 기관에 영향을 미친다. 근육의 신진대사뿐만 아니라 당과 지방의 신진대사에도 큰 역할을 한다. 30대 중반부터 감소하는 테스토스테론은 성욕과 성기능 저하, 전립선 비대, 뼈 기능 약화, 근육 손실, 체중 증가, 탈모, 체력 저하, 욱하는 성격과 잦은 우울감 등 급격한 기분 변화를 초래한다. 테스토스테론의 감소는 갑작스러운 피로감을 느끼게 하고, 운동 능력을 현저히 떨어뜨리기도 한다. 중년 남성의 처진 어깨는 단지 그렇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근육이 줄어들면서 나타나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50대가 되면 많은 남성의 몸에서 본격적으로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낮아진다. 흔히 마초의 상징으로 자부하는 성욕과 성기능의 감퇴는 남성의 자존심에 큰 타격을 준다. 남성성의 쇠퇴는 남자들을 초조하고 불안하게 만든다. 이 시기에는 아내와의 밤이 두려워진다는 남성들이 부쩍 늘어난다. 예전 같지 않은 몸 상태 때문에 자주 상실감과 우울감을 느끼고 자신감마저 추락하는 경험을 한다.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쳐, 전에 없던 외로움을 느낀다. 


남성의 몸에서 테스토스테론이 감소하면, 반대로 여성 호르몬이 상대적으로 증가한다. 사람의 몸에는 남성 호르몬과 여성 호르몬을 분비하는 두 개의 수도꼭지가 있다. 젊을 때는 남성 호르몬을 분비하는 수도꼭지가 왕성하게 활동하는 반면, 여성 호르몬을 분비하는 수도꼭지는 거의 잠겨 있다. 나이가 들면서 남성 호르몬이 감소하고, 반대로 여성 호르몬을 분비하는 수도꼭지는 꾸준히 활동한다. 이 때문에 목소리가 가늘어지고, 드라마를 보면서 시도 때도 없이 울컥 눈물을 쏟는 일이 일어난다.


중년의 위기

게다가 이 시기에는 회사나 조직 업무 스트레스가 극심하다. 튀어 오르는 부하 직원과 찍어 누르는 상사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절하게 몸부림치다 보면 사는 게 뭔지 회의감이 밀려온다. 그렇다고 가족을 생각하면 직장을 때려치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 보면, 스트레스를 온몸으로 받아낼 뿐이다. 그러니 퇴근 후 마시는 술에라도 의지하지 않으면 하루도 버티기 힘든 노릇이다. ‘먹고 마시고 피우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다 보면, 느는 것은 주량과 흡연량, 그리고 온몸 곳곳에 자리한 지방 덩어리다.     


문제는 기술 발전이 무척이나 빠르다는 데 있다. 자고 나면 첨단 기기가 나오고, 눈만 뜨면 신기술로 장착한 프로그램이 쏟아진다. 중년 남성들은 최신 기술에 적응하거나 습득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들은 직무 수행에서 뒤처지거나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 그뿐이면 다행이다. 조직에서는 젊은 세대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쏟아내고 톡톡 튀는 기발한 생각을 제안하면서 자리를 위협한다. 아직 경험이 부족한 그들에게 한마디 충고라도 하면, '꼰대' 취급받기 쉽다. 아날로그 지식은 어느새 쓰레기통으로 직행하고, 스피디한 디지털 기술만 존중받는다. 


이때쯤이면 돈 들어갈 일이 한둘이 아니다. 아이들의 대학 교육비를 생각하면 아찔하다. 대학을 졸업했다고 해서 취업이 쉬운 것도 아니다. 게다가 이때쯤이면 부모님의 건강도 예사롭지 않다. 큰 병에 걸리거나 혹시 치매라도 온다면 이는 큰 낭패가 아닐 수 없다. 다락같이 오른 물가는 내려올 기미조차 없는데, 바닥에 붙은 내 월급은 죽은 듯이 꼼짝하지 않는다. 사방팔방을 둘러봐도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고, 묘수가 담긴 비단 주머니가 없는 현실이 답답하다.


'중년의 위기'가 찾아온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을까 생각하게 된다. 열심히 일한 것밖에 없는데, 삶은 갈수록 막막하다. 아, 이 길을 택하지 말고 그때 그 꿈을 향해 도전할 것을. 성취하지 못한 목표나 꿈에 대한 후회가 밀려온다. 직장에서는 책임만 늘어나고, 가정에서는 자상한 아빠, 속 깊고 든든한 남편, 효자 아들의 역할을 기대한다. 돈도 잘 벌고, 가족들과 늘 대화하고, 부모님을 잘 모실 수 있다면 누가 그걸 마다하겠는가. 하지만 현실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사면초가다.


승진을 포기한 지 오래고, 젖은 낙엽처럼 회사에 딱 붙어 있을 생각이다. 그렇지만, 날이 갈수록 구조조정이란 이름의 조기 퇴직 압력은 커진다. 힘은 빠지고, 눈도 침침해진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미래는 너무 불확실하고 불안하다. 아이들은 자라 각자 자기들 세상에만 빠졌다. 오랜 세월 함께한 아내와의 살가운 대화도 사라졌다. 집으로 돌아가 넋두리하려 하면, 무슨 그런 약한 소리를 하냐며 핀잔 듣기 일쑤다.


여성의 갱년기는 증상이 뚜렷하고 무척 견디기 힘들다. 반면, 남성의 갱년기는 잘 표가 나지 않는다. 겉으로 드러내 아프다고 말하기가 힘들다. 기댈 곳이 마땅치 않은 중년 남성의 갱년기는 그래서 더 서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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