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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Jan 10. 2023

처음 그 느낌과 설렘으로

사진 출처 : https://www.edaily.co.kr/news/read?newsId=03119286609371544&mediaCodeNo=257


작년 8월 17일 처음 브런치에 글을 썼다. 그전에는 글을 끄적거리거나 블로그에 몇 편 올리긴 했지만, 브런치에 올린 것은 그날이 처음이다. 그날부터 본격적으로 글쓰기를 시작한 셈이다. 그동안 하루 한 편 이상의 글을 썼다. 지금은 서로 다른 주제로 매거진(magazine)을 몇 개 이어가고 있다. 그 가운데 몇 개 시리즈를 끝냈고, 어제 ‘빛과 색채의 아름다운 이야기 2’도 마무리했다. ‘숙성과 발효의 미학’도 이 정도에서 마무리하고, 새 매거진으로 '별난 침팬지의 브이라인 만들기'를 이어가는 중이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매주 그림 그리는 일이 뜸해졌다. 최근  몇 개월은 아예 손에서 붓을 놓았다. 가뜩이나 재주 없는 사람이 붓을 놓으니 그림 그리기가 더 힘들다. 새로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는 계기가 있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될까 곰곰이 생각했다. 그래서 그림일기를 써보자는 생각에 이르렀다. 처음 색과 그림을 만난 날의 그 느낌을 이야기해 보려 한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오전과 오후 별난 침팬지 이야기와 그림일기를 번갈아 올릴 생각이다.


이렇게 마음을 먹으니 다시 그리려는 의욕이 생긴다. 그간 몇 번의 상을 받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진짜 그림을 잘 그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진 적도 있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데 혼자 자뻑한 일이 참 민망하다. 반성하고 처음 배우는 자세로 그림일기를 시작하려 한다. 스케치부터 꼼꼼하게 챙기고, 그 과정을 일기로 남기기로 마음먹었다. 메거진 제목을 ‘글 짓는 그림일기’로 정하고, 그림을 그리게 된 동기부터 시작한다.


시작은 그림 그리기가 아니라 보기였다. 이미 한 번 소개했지만, 색과 그림을 시작한 계기는 가벼운 호기심이다.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만큼이나 아득한 옛날이야기다. 미국 출장 가는 길에 대도시 근교의 아웃렛(outlet)을 방문했다. 유명 명품 매장에 들렀다.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큰 호강이었다. 당시에 한참 유행하던 BENETTON. GUESS, GAP 매장에 진열된 옷을 보는 즐거움도 쏠쏠했다. 빨강과 파랑의 원색도 있고 파스텔톤(pastel tone)의 색의 향연이 펼쳐졌다.

     

출장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도 색채의 여운이 진하게 남았다. 이처럼 다양한 컬러를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 골똘히 생각했다. 그러다 불현듯 그림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전에도 그림 감상을 좋아해서 미술관을 다니기도 했지만, 본격적으로 미술관을 탐방하기 시작한 것이 이때부터다. 화가들이 그려내는 화려한 색의 다채로움과 질감을 보려 했다. 그 뒤로 해외 출장을 가면 꼭 그 도시의 미술관을 찾았다. 런던 내셔널 갤러리, 파리 루브르, 오르세, 퐁피두 센터, 뉴욕 현대미술관을 방문했다.     

     

방문한 미술관의 면면이 세계적 명성을 얻는 곳이다. 작품 수도 어마어마하고, 내로라하는 유명 화가들의 그림이 즐비하다. 그 많은 작품을 스치듯 구경한다는 것은 작품 감상의 예의가 아니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화가와 작품을 제대로 공부하고 미술관을 찾아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아웃렛에 진열된 옷의 화려한 색깔에서 출발한 호기심이 색채의 유혹에 빠지게 했다. 좀 겸연쩍긴 하지만, 처음에는 그런 동기로 그림과 색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살면서 우연으로 시작했다 숙명처럼 이어지는 만남도 있다. 내게 그림은 그런 인연이다. 처음부터 그림을 그리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건 미적 감각과 재능을 타고난 사람들의 이야기라 여겼다. 그저 보는 것만으로 만족했다. 미술관이나 전시회에 가서 그림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꽤 근사해 보였다. 지금 생각하면 다소 유치한 발생이지만 그때는 그랬다. 인상주의와 야수파 그림들에 눈길이 갔고, 차츰 장르를 넓혀 다양한 그림을 보기 시작했다. 색과 그림을 만났을 때의 처음 그 느낌과 설렘을 그대로 이어가고 싶다.


길은 아득해도

처음에는 멋모르고 낭만적인 마음으로 색과 그림 공부를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높은 수준에 도달하고, 꽤 멋진 그림을 그릴 것이라 기대했다. 무식한 사람은 자기 능력을 과대평가한다는 말이 맞다. 막상 시작하고 보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숲 한가운데서 길을 잃은 격이다.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길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산은 높고 숲은 깊었다. 마음이 처연해지고 막막했다. 자칫 마음의 끈을 놓칠까 두렵기까지 했다. 과연 길이 있기나 할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걷고 또 걸다 보면 길이 나오겠지. 그런 마음으로 미술 서적을 읽고 색채학 공부를 했다. 쉬지 않고 책을 읽었는데, 책 속에 또 책이 나온다. 책을 읽고 나면 그것이 끝이 아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읽을거리가 쏟아진다. 될수록 많이 읽으려 노력했지만, 늘 길은 아득하고 목적지는 보이지 않는다. 아, 그제야 제대로 전공한 사람이 우러러보였다.


문득 그림을 제대로 알고 감상해야 제대로 감동을 얻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당연한 이치를 늦게서야 깨달았다. 그림은 화가의 내면을 표현하고 대상을 화가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 한 사람의 내면은 살아온 삶의 과정과 시대적 상황이 농축되어 있다. 설핏 보고 그림을 이해하기는 참 어렵다. 하물며 초보자들이 화가의 작품을 단번에 이해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몇 번 미술관을 다녀왔다고 의기양양하고 겁이 없었다. 얕은 그림 지식으로 제법 아는 것처럼 소란을 떨었다.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마치 다 아는 양 말하는 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얕은 개울이 스쳐 지나는 소낙비에 요란한 소리를 내는 것과 같다. 수박의 겉만 보고는 속까지 다 본 듯한 티를 냈다. 나의 무식함이 낳은 착각이라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모르고 시작한 색과 그림 보기는 무지함을 확인하는 일이 되었다. 설렘으로 시작된 미술관 여행은 수도승의 고행길이나 다름없다. 사전 준비나 조사 없이 무턱대고 그림 앞에 섰기 때문이다. 아는 그림 한두 개를 빼면 작가의 의도를 짐작하지 못한다. 미술관에 그림이 좀 많은가. 시대적 배경도 모르고 화풍의 변화도 짐작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림을 보는 일은 묵언 수행과 다를 바 없다. 가끔 느낌이 오고 색감이 좋은 그림을 만날 때도 있지만, 알지 못하는 그림이 태반을 한참 넘으니 이만저만 고행이 아니다.      


초보자도 그림을 보고 그 자리서 감동 느낄 수도 있다. 화가의 그림이 워낙 유명해서 평소에 익히 알고 있는 그림일 것이다. 아니면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의 재능이 천부적이라는 뜻이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아는 그런 재주를 가진 사람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런 사람이면 초보자라 해도 그림 보는 눈이 남다를 것이다. 세상에 숨어 있는 그런 실력자를 만날 때면 늘 부러움을 느낀다. 그림을 잘 보는 것도 재능이고, 잘 그리는 것도 재능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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