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기다렸던 명절이
어젯밤은 날이 흐려서 둥근달을 볼 수 없었어. 오늘 밤 달은 지구의 반대편에서 태양 빛을 가장 환하게 받을 거야. 태양, 지구, 달이 한 줄로 놓이게 되면 둥근 보름달을 볼 수 있지. 반대로, 달이 태양과 지구 사이에 위치하면 달의 어두운 면만 보여. 이렇게 아주 어둡게 보이는 달이 그믐달이야.
1년 중 음력 8월 보름을 특별히 한가위라 불러. 설날과 함께 우리의 대표적 명절이야. 한가위에는 가족들이 함께 모여 가을의 풍요와 수확을 축하하는 날이야. 어제는 하루 일찍 둥근달을 볼 수 있을까 해서 기다렸지. 날이 바뀌도록 기다렸지만, 달은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았어. 하는 수 없이 늦게 잠자리에 들고 말었어.
어릴 때는 명절을 기다렸지. 단조로운 일상에서 그나마 설이나 추석이면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었어. 친척들이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하는 것도 나름 재미있었지. 친척 어른들이 손에 쥐어주는 용돈도 이때가 아니면 보기 힘든 횡재였어. 잘하면 설빔이랄까, 새 옷이나 신발이 얻어걸리는 기쁨에 명절을 사뭇 기다렸어.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점차 명절이 부담으로 다가오게 되었지. 마냥 받기만 하던 어린 시절이 지나고 어른이 되고 나서일 거야. 그때부터 명절이 오는 게 반갑기만 한 것은 아니었어.
"제사를 잘 모셔라! 조상께 정성을 다 해라!"
늘 듣는 말이지만 어느새 이 말이 마음 한구석에 무겁게 자리하기 시작했지. 조상을 잘 모셔서 나쁠 거야 없지만 꼭 이렇게 해야 잘 모시는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지. 지금은 아이들도 잘 먹지 않는 그 많은 음식을 장만하느라 며칠 전부터 부산을 떠는 것도 힘들었어.
옛날에는 그것밖에 먹을 것이 없었다 치더라고 지금은 얼마든지 더 맛난 것들이 많아. 그런데 왜 매번 같은 음식을 장만해야 할까. 이런저런 이야기를 수없이 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옛날부터 그렇게 했으니까’ 이야.
조상을 공경하고 집안 어른을 잘 모시는 풍습이 아름답다는 건 누구나 인정해. 그러나 시대가 바뀌고 사람들의 생각이 변하면 그에 따라 전통도 변하기 마련이야. 농사를 주업으로 하는 농촌에서 조상을 각별히 모시는 의식이 산업사회를 지나 AI가 세상을 뒤흔드는 지금까지 똑같은 모습으로 남아 있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아. 사람들이 살아가는 생활방식이 농경사회와 근본적으로 달라졌는데 명절 풍습은 그대로 남아 있으니 얼마나 막막한 일인가.
이제는 절로 가게 됐어
“올해는 제발 조금만 하자!”
“어머님이 불편해하실 텐데...”
해마다 아내와 이런 말을 되풀이했지만, 정작 제대로 실천한 적이 없어. 어머님 생각이 그렇다고 하면 그걸 감히 거슬러 주장하기가 쉽지 않지. 조상 모시기를 평생의 업으로, 그렇게 숙명으로 받들어 오신 분한테 갑자기 새로운 패턴을 강요하는 일이 마음에 내키지 않았어. 그러다 보니 명절 제사상은 바뀔 기미가 보이지 않았지.
그러다가 작년 어머님께서 과감하게 결단을 내리셨어. 조상의 위패를 인근 사찰에 모셨어. 당신이 신실한 불자이신 터라 절에 모시는 걸 내심 바라셨던 모양이야. 이거야말로 그동안 묵은 체증이 한순간에 내려가는 희소식이야. 물론 절에 모셨다고 그냥 넘어갈 수는 없어. 내가 대표로 직접 참관해야 한다는 단서가 붙었으니까. 그래도 그게 어디냐며 천리도 마다하지 않고 가는 거야.
절에서 모시는 제사라고 해서 그리 호락호락한 것은 아니야. 두 시간 가까이 스님의 독경과 축원을 들어야 해. 중간에 일어나서 절을 하고 예를 다하는 것도 빠뜨릴 수 없어. 몇 권의 불경을 암송하고 부처님께 예를 표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 돼. 스님의 목탁 소리가 자장가로 들려올 때가 되어야 제사가 끝나. 그러니 절에 모셨다고 그저 먹기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야.
어젯밤 달을 보지 못하고 괜스레 잠만 설쳤어. 이른 아침 일어나 서둘러 채비를 차리고 서울역으로 왔어. 이른 아침의 KTX를 타고 고향으로 가는 길이야. 더 정확하게 말하면, 제사를 모시러 고향 인근의 절(寺)로 가는 길이야. 제사 음식을 장만하지 않는 대신, 발품과 정성을 팔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