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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톨 Aug 14. 2024

생각에도 유연함이 필요했어.

이제야 들려온다.

고등학교 2학년 명절 전날 어머니와 함께 어시장에 가는 길이었다. 택시 뒷좌석에 탔다.

신호가 바뀐 찰나였다. 그때 왜 하필 뒤로 돌아보고 싶었던 걸까?

목고개가 뒤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큰 충격이 느껴졌다.


드라마의 한 장면이 눈 앞에서 펼쳐졌다.

카메라 무빙은 정신없이 이곳저곳을 비추었고 이리저리 내 몸이 부딪히고 택시는 사정없이 흔들렸다.

순간이었지만 길게 느껴졌다.

철없던 여고생이었던 나는 그 상황이 너무 신기하게 느껴졌다.

"엄마, 사고 난 거예요?"

라고 말하며 피식 웃었던 기억이 난다.

뒤에 일어났던 일들을 생각해 볼 때 그때 했던 내 행동은 분명 정신 나간 짓이었다.  


채소를 실은 트럭이 신호위반을 해서 달렸고 내가 타고 있던 택시와 충돌했던 것이다.  

목뼈 3개가 돌출되어 이후 나는 10년간 심각한 고통을 겪었다.

통증 없이 일상생활을 하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깨닫는 시간이었다.

유명하다는 병원을 다녔고 약도 먹고 교정도 받았다. 그러다 알게 된 것이 요가다.



요가 수업에 처음 참여했을 때의 충격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강사님이 선보이는 동작을 10퍼센트도 따라 하지 못했다.

허리를 세우고 다리를 쭉 뻗고 앉는 시작 동작 부터 안됐다.

온몸에 신경이 곤두섰다. 요가 수업은 내게 공포 그 자체였다.

'이번 동작은 또 얼마나 아플까?' '앗 숨이 안 쉬어지는데...'


시간이 흘렀다.

고문과도 같았던 요가 동작이 끝나고 몸이 가벼워짐을 어느 순간부터 느끼기 시작했다.  

통증을 느끼는 시간을 보낸 이후 일상에서 느꼈던 아픔이 점차 약해져갔다.

꾸준히 하지는 않았지만 완전히 요가를 멈추지는 않았다. 삶의 일부로 요가를 받아들였다.

그렇게 수련의 시간이 10년 정도 흐르고 통증은 거의 사라졌다.


중년이 된 지금, 요가 클래스에 등록하고 운동을 다시 시작했다.

참 이상한 것이...  전에는 들리지 않던 요가 선생님의 지시가 내게 인생의 가르침으로 다가왔다.   


자신에게만 집중하세요! 다른 사람의 시선에 신경 쓰지 마세요.

나의 20대와 30대는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신경 쓰며 살았다.

심지어 지극히 중요한 내면을 희생하면서 까지.


수련하느라 고생한 나 자신에게 주는 온전한 휴식시간,  사바 아사나(Shava-asana)

모든 수련을 끝내고 누워 한 호흡을 비워내고 매트에 눕는다.

이때는 움직임도 없고 온몸에 힘을 다 빼고 그야말로 모든 것을 멈추는 시간이다.

내게 얼마나 이런 시간을 주었을까?


통증을 느끼세요. 네, 맞아요.  통증이 깊어요.

성장과 발전에는 통증이 반드시 수반되는 것이다.

그래, 맞다. 힘들다. 통증이 깊다.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자.


긴장을 풀어내세요. 양 볼에 긴장을 매트 아래에 풀어버리세요. 목에 긴장을 풀어내세요. 어깨에도..

나에게 긴장이 있었나? 어떻게 긴장을 내려놓지?

나 자신도 모르게 몸에 생각에 힘을 잔뜩 주고 살고 있음을 느낀다.

난 왜 그렇게 나를 힘들게 했을까?


한 번만 더 뻗어보세요. 하실 수 있어요.

"창문 쪽으로 팔을 한 번 더 찔러보세요.  가슴을 더 천장 쪽으로 보게 조금만 더 움직여 보세요. "

"할 수 있어요. 꼼지락꼼지락"

더 할 수 있다는 말에 나는 조금 더 몸을 뻗어보고 버텨본다. 진짜 된다.

인생을 살 때 꼼지락꼼지락 움직여 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했던 걸까?

중년, 뻣뻣함이 몸에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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